| C01 |
요 1:3을 생겨난 세계 전체에 관한 진술로 읽으면 말씀 자신을 그 세계의 한 피조물로 넣기 어렵다. |
S01 요 1:1-3·14; S02 116-118쪽; S03 239-241쪽, 특히 240 |
Dunn도 여기서는 첫 피조물인 말씀을 배제하고 선재와 성육신을 인정한다. Carson은 인격적인 창조 매개를 읽는다. |
만물의 범위가 말씀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로 제한되지 않는다는 문맥 판단과, 자기 존재를 매개할 수 없다는 인과 전제가 있다. 이것만으로 성령의 지위까지 정해지지는 않는다. |
| C02 |
고전 8:6과 골 1:16-17의 보편적인 만물 관계와 그리스도의 개인적 선재를 구별하여 평가한다. |
S01 두 본문; S04 101-104쪽; S05 182-185·192-196쪽; S03 180-183·188-194쪽 |
Bauckham은 쉐마와 창조주 정체성을 연결한다. Gaston 및 Perry는 특정한 쉐마 재작성과 동일성 논증을 비판한다. Dunn은 쉐마 분할을 인정하면서 지혜의 현재적 구현을 제시한다. |
세 견해는 같은 대리자 모형이 아니다. 고전 8:6에는 창조 동사가 생략되어 있으며, 골로새서는 옛 창조와 권세들을 명시한다. Gaston 및 Perry의 논문은 우주 창조 매개의 전체 대안 모형을 전개한 자료가 아니다. |
| C03 |
히 1:10-12가 아들을 계속 부르는 읽기는 유력하며, 그 지위와 세계의 변화 방식은 별도 쟁점이다. |
S01 히 1:8-12; S06 56-58쪽; S07 “A New Proposal”; S08 282-283·286쪽 |
Pierce는 앞의 아들 지칭을 유지한다. Gaston은 발화 대상의 변경을 제안한다. Church는 아들을 창조주로 읽으며 우주의 갱신을 논한다. |
카이 자체가 대상을 필연적으로 고정하지는 않는다. Gaston은 정식 출판본이 아닌 공개 원고로 인용한다. Church의 갱신 해석은 창조주 지칭을 부정하지 않는다. |
| C04 |
고전 2:10-12의 중심은 하나님이 자기 영을 통하여 감추어진 구원을 알리시는 관계다. |
S01 고전 2:10-12, 문맥 2장; S09 256-259쪽 |
성령이 아시는 관계와 성령을 받아 신자가 알게 된 관계, 탐구와 자기 계시 주도권이 구별된다. |
하나님의 깊은 것을 특정한 형이상학적 속성 목록으로 정의하는 것은 이 문맥의 범위를 좁힌다. Thiselton 257쪽은 본성 번역에 유보를 둔다. |
| C05 |
성령의 앎과 활동에서 아버지와 구별되는 위격까지는 추가적인 관계 근거가 필요하다. |
S01 고전 2:11; 갈 4:6; 요 14:16-17; S09 257-259쪽 |
인간 비유의 영은 그 사람과 다른 한 사람으로 지정되지 않는다. 다른 보혜사와 보내심은 구별된 주체라는 해석을 보탠다. |
Thiselton이 성령의 인격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 단계의 제한은 비유의 범위에 관한 필자의 논증이다. 활동 동사가 곧 별도의 위격을 정의하지 않는다. 관련 연구: 보혜사 논증문·대조표에서 요 14:16-17·26절의 관계 근거를 더 다룬다. 교부 자료는 영어 번역을 따른다. |
| C06 |
성령의 자기 계시에서 동일 본질로 이어질 때에는 그 앎이 본성에 속한다는 판단이 더해진다. |
S10 XXIV.56; S11 II.6; S01 고전 2:10-12 |
Basil은 본래 선함과 앎 및 생명 수여를 피조물의 받은 참여와 구별한다. Origen의 영어 번역은 세 위격과 말씀을 통하여 존재 및 지혜를 받는 성령을 함께 설명한다. |
Origen 대목은 요 1:3의 수용이며 고전 2의 직접 주해가 아니다. 관련 연구: 바실리우스 논증문·대조표와 오리게네스 논증문·대조표는 존스턴 1892년판·롬마츠슈 1831년판·프라이셴 1903년판의 해당 그리스어 인쇄면을 대조한다. 오리게네스 74문단의 대명사구는 미확정이다. |
| C07 |
계 5:13은 하나님과 어린양을 공동 송영의 대상으로 명시한다. |
S01 계 5:13-14; S13 58-61쪽; S14 130-132쪽 |
모든 피조물이 두 대상에게 영원한 존귀와 영광을 돌린다. Dunn도 어린양의 예배가 하나님의 예배와 같은 성격이라고 인정한다. |
14절에는 경배의 목적어가 없다. 그 대상을 13절에 연결하는 것은 문맥 해석이다. Dunn의 견해는 보통의 인간 존경만을 인정하는 견해가 아니다. |
| C08 |
공동 예배의 신적 지위는 경배 동사 하나보다 전체 예배 구도에서 판단한다. |
S01 계 3:9·4:11·5:13-14·19:10·22:8-9; S13 58-61쪽; S14 131-132쪽 |
신자들 앞의 엎드림, 창조주 찬양, 천사의 예배 거절과 어린양의 공동 송영이 대조된다. |
Dunn은 묵시장르의 이미지와 존재론적 명제를 구별한다. 공동 송영의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모든 장면을 문자적인 형이상학으로 옮기는 것은 다른 판단이다. |
| C09 |
같은 신적 지위에서 동일 본질로 이어지는 결론은 불가분한 신성의 전제를 포함한다. |
S14 141-144쪽; S04 104쪽; S12 신적 활동 및 끝부분의 원인과 본성 문단 |
Dunn의 역할 비대칭성 비판, Bauckham의 한 인격과 한 하나님 구별, Gregory의 불가분한 활동을 대조했다. |
Gregory의 논증은 세 분의 신적 지위와 같은 활동을 전제한다. 계 5의 두 이름만에서 삼위 전체의 동일 본질을 독립적으로 도출한 직접 주해가 아니다. S12는 NPNF 영어 번역이다. 관련 연구: 그레고리오스 논증문·대조표에서 PG 45의 1863년판 활동 문단과 앞뒤 문맥을 그리스어로 대조한다. S12의 끝부분 원인 문단은 그레고리오스: 원인과 존재방식에서 다룬다. |
| C10 |
고전 15:28은 아들 자신이 복종한다고 말하며, 인성에 따른 해석은 가까운 문맥과 서신의 다른 진술을 함께 쓴다. |
S01 고전 15:21·24-28; S14 144쪽; S15 199-203쪽; S16 30.5-6 |
미래의 실제 복종과 아담 및 인간 메시아의 사명이 서술된다. Jamieson은 먼저 논증한 신적 그리스도론과 그 인간 사명을 같은 주체에게 귀속한다. |
28절에는 인성에 따라서라는 한정어가 없다. Jamieson의 읽기는 그 말의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문맥적·정경적 결합이다. 복종의 주어는 아들 자신이며 추상적인 역할이 아니다. |
| C11 |
요 17의 하나 됨과 영광 공유는 신자들에게도 실제로 귀속되어, 그 말만으로 같은 본질을 추론하는 논증을 제한한다. |
S01 요 17:20-26; S17 193-195쪽, 특히 194 |
Nygaard는 받은 영광과 보게 될 영광을 다른 종류로 나누지 않으며, 신자들의 실제 사랑·임재·사명 참여를 읽는다. |
공유라는 말 자체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기원을 같게 만들지 않는다. 그 참여는 같은 의견이나 행동의 협력에 그치지 않는다. |
| C12 |
아버지와 말씀의 본래 관계, 신자가 받아 참여한 관계의 차이는 창조와 성육신 판단을 함께 사용할 때 설명된다. |
S01 요 1:1-3·14; 17:22-23; S18 III.22-23; S12 원인 및 존재 방식과 본성 문단 |
Athanasius는 말씀의 본성적 동일성과 몸에 참여하여 하나가 되는 사람들을 구별한다. Gregory는 기원의 차이와 본성의 차이를 구별한다. |
비교 접속사만으로 본성의 동일성 또는 차이가 자동 확정되지는 않는다. 말씀의 창조주 지위와 신자의 피조성, 나뉘지 않는 신성이라는 존재론적 전제가 사용된다. 관련 연구: PG 26의 1857년 역사적 인쇄판 III.22-23과 앞 문맥 III.21의 그리스어를 NPNF 영어와 비교하면, 본성적 동일성은 III.22 첫 문장의 전제이고, 신자의 일치는 몸을 입은 말씀에 대한 참여와 받은 성령으로 설명된다. 비교 표현만으로 동일 본질을 독립 증명할 수는 없다. III.23 끝의 PG 복수형 ἡμῖν과 영어 단수형 차이는 원인이 미확정이다. 논증문 읽기 · 6개 주장 대조표 보기 · 문헌과 판본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