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고리오스는 한 신적 본성을 고백하면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구별한다. 『세 하나님이 아님에 관하여』 끝의 원인 논증은 이 두 판단을 함께 설명한다. 바로 앞 문맥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각각 하나님으로 불리지만, 신성 안에는 본성이나 활동의 차이가 없으므로 하나님을 하나라고 부른다고 서술한다. 신적 본성은 신적이고 단순하며 변하지 않는다는 고백도 이미 놓여 있다.1

이 고백에 제기되는 반론은 본성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위격이 뒤섞인다는 주장이다. 그레고리오스는 어떤 이가 그렇게 비난한다면 답하겠다는 조건문으로 반론을 제시한다. 답변에서는 본성의 동일함을 고백하면서도 원인과 원인에서 난 존재의 차이를 인정한다고 말한다.2 같은 본성을 고백한다는 이유로 아버지·아들·성령의 구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가 이 단락에서 제시하는 구별 기준은 원인 관계다. 하나는 원인이며 다른 하나는 그 원인에서 존재한다고 믿는 관계로 서로를 알아 구별한다. 원인에서 존재하는 쪽에도 다시 차이가 있다.3 이어 아들과 성령을 각각 설명하고 결론에서는 원인 없이 존재함과 원인에서 존재함을 구별하므로, 이 논증의 원인은 아버지이며 원인에서 존재하는 쪽은 아들과 성령이다. 여기의 원인 언어는 아버지가 아들과 성령과 맺는 관계를 서술한다. 앞선 신적 활동 논증에서 어떤 결론의 이유를 말할 때 쓰인 원인이라는 어휘와 용법이 다르다.

원인에서 존재하는 두 관계는 직접 기원과 직접 기원한 이를 통하는 관계로 나뉜다. 그리스어는 하나가 첫째에게서 직접, 다른 하나가 첫째에게서 직접 나온 이를 통하여 존재한다고 말한다. 첫째에게서라는 어구에는 원인이라는 명사가 다시 적혀 있지 않다. Wilson 영어의 첫 원인이라는 풀이는 앞의 원인 관계를 따른 번역이다. 뒤 문장은 이 구별이 아들이 독생이라는 점을 보존하고 성령이 아버지에게서 존재한다는 관계를 확실하게 한다고 설명한다.4

아들의 매개는 이 두 관계를 함께 설명한다. 매개를 주어로 삼은 속격 절에서 아들이 독생이라는 점을 보존한다는 분사와 성령의 아버지 관계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분사가 나란히 나온다. 후자의 목적어는 성령이고, 배제하지 않는 관계는 아버지와 맺는 본성에 따른 관계다.5 성령을 아버지와 분리된 존재로 놓는 설명과 다르다. 동시에 아들을 통한 관계도 실제로 서술되어 있다. 이 문장은 아들의 매개와 성령의 아버지 관계를 함께 유지한다.

이 관계가 본성의 차이를 뜻한다는 반론에는 이름이 가리키는 내용을 구별하여 답한다. 원인과 원인에서 존재한다는 말은 어떻게 존재하는가의 차이를 나타낸다. 그 이름으로 본성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며, 원인과 본성에 같은 정의를 줄 수 없다고 서술한다. 아들이 태어남 없이 존재하는 것도, 아버지가 태어남으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라는 두 부정이 그 관계를 구체화한다.6 아버지와 아들의 차이는 관계에 관한 실제 진술이지만, 여기에서 그것을 신적 본성이 나뉜다는 판단으로 바꾸지는 않는다.

이어서 무엇인가와 어떻게 존재하는가를 다른 질문으로 설명한다. 어떤 것이 존재한다고 먼저 믿은 뒤 그 존재방식을 살피며,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름을 말해도 그 존재가 무엇인지는 함께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7 태어나지 않음을 신적 본성의 완전한 정의로 삼으면 아들은 그 정의를 갖지 못한다는 결론이 따를 수 있다. 그레고리오스는 그 이름이 처음부터 본성의 정의를 주는 말이라는 전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무 비유는 이 구별을 예시한다. 농부에게 나무를 심었는지 저절로 자랐는지 묻고 심지 않은 나무 또는 심어 자란 나무라는 답을 듣더라도, 그 나무가 무엇인지는 아직 설명되지 않는다. 그레고리오스는 같은 방식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름에서 존재방식을 배우지만 무엇인지는 듣지 못한다고 말한다.8 비유가 설명하는 것은 질문의 차이다. 나무의 본성이 여전히 설명되지 않았으므로 이 사례만으로 삼위의 같은 본성을 입증할 수는 없다. 피조물의 생장 과정이 신적 태어남의 기제가 된다는 설명도 비유에 들어 있지 않다.

결론은 두 판단을 연결한다. 원인에 관한 설명은 거룩한 삼위일체의 위격을 구별하며, 신적 본성은 어떤 관점에서도 변하지 않고 나뉘지 않는다고 이해된다. 이 때문에 신성을 하나, 하나님을 한 분이라고 부르고 다른 신적 이름도 단수로 말한다.9 원인 관계의 차이만에서 한 신적 본성이 자동으로 따라온 결론이 아니다. 나뉘지 않는 본성이 별도 전제로 함께 쓰인다.

가장 강한 반론은 원인에서 존재하는 관계 자체가 다른 이에게 의존하는 존재를 뜻하므로 본성도 낮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레고리오스의 답변은 원인이라는 이름이 곧 본성의 정의가 된다는 연결을 끊고, 그 이름이 설명하는 태어남과 존재방식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나무 비유는 기원에 대한 답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대신하지 못한다는 점을 보강한다. 다만 그 구별만으로 신적 본성의 불변성과 불가분성이 새로 입증되지는 않는다. 그 판단은 앞 문맥의 고백에서 결론까지 유지된다.

이 답변이 직접 해결하는 문제는 동일한 본성과 구별되는 위격을 함께 고백할 수 있는가이다. 원인 관계는 위격을 구별하고, 나뉘지 않는 신적 본성은 한 신성을 말할 근거가 된다. 같은 본성 자체를 거부하는 상대에게는 그 본성이 나뉘지 않는다는 판단의 근거가 더 필요하다. 아들의 매개를 말하면서 성령의 아버지 관계를 유지하는 진술은 이 구별 안에서 읽힌다.

6개 주장과 가능한 반론 · 문헌과 판본

각주와 자료

  1. 닛사의 그레고리오스, 『세 하나님이 아님에 관하여』, Patrologiae cursus completus, Series Graeca, 45, J.-P. Migne 편, S. P. N. Gregorii episcopi Nysseni opera, II (Paris: J.-P. Migne, 1863), 그리스어 132D-133A의 앞 문맥. 133A의 μήτε φύσεως, μήτε ἐνεργείας 및 ἡ θεία τε καὶ ἁπλῆ καὶ ἀναλλοίωτος φύσι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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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같은 글, 133B. Εἰ δέ τις συκοφαντοίη와 μίξιν τινὰ τῶν ὑποστάσεων καὶ ἀνακύκλησιν, 이어 τὸ ἀπαράλλακτον τῆς φύσεως ὁμολογοῦντες. 앞의 것은 가상 비난이고 뒤의 것은 저자의 답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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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같은 글, 133B. τὴν κατὰ τὸ αἴτιον καὶ αἰτιατὸν διαφορὰν οὐκ ἀρνούμεθα, ἐν ᾧ μόνῳ 및 τὸ μὲν αἴτιον … τὸ δὲ ἐκ τοῦ αἰτίου. 구별 기준과 원인에서 존재하는 쪽의 다음 구별을 함께 서술한다. 끝의 무원인으로 존재함은 아래 주9의 결론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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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같은 글, 133B-C. Τὸ μὲν γὰρ προσεχῶς ἐκ τοῦ πρώτου, τὸ δὲ διὰ τοῦ προσεχῶς ἐκ τοῦ πρώτου와 뒤의 Μονογενὲς·Υἱοῦ·ἐκ τοῦ Πατρὸς εἶναι τὸ Πνεῦμα. H. A. Wilson 번역, NPNF Second Series 5 (Buffalo, NY: Christian Literature Publishing Co., 1893), New Advent 영어의 끝에서 세 번째 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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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같은 글, 133C. τῆς τοῦ Υἱοῦ μεσιτείας … φυλαττούσης … μὴ ἀπειργούσης 및 τῆς φυσικῆς πρὸς τὸν Πατέρα σχέσεως. 자연적 관계라는 어구 자체가 이 문맥의 동일 본성 판단과 같은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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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같은 글, 133C. οὐχὶ φύσιν διὰ τούτων τῶν ὀνομάτων σημαίνομεν, τὴν κατὰ τὸ πῶς εἶναι διαφορὰν ἐνδεικνύμεθα 및 μήτε τὸν Υἱὸν ἀγεννήτως εἶναι, μήτε τὸν Πατέρα διὰ γεννήσεω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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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같은 글, 133C-D. Ἄλλος οὖν ὁ τοῦ τί ἐστι, καὶ ἄλλος ὁ τοῦ πῶς ἐστι λόγος와 τὸ οὖν ἀγεννήτως εἶναί τι λέγειν. ἀγεννήτως·ἀγέννητον은 이 역사적 인쇄판의 철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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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같은 글, 133D. φυτευτόν·αὐτομάτως, ἀφύτευτον·ἐκ φυτείας, τὸ δὲ τί διὰ τῆς φωνῆς οὐκ ἠκούσαμεν. 본성에 대한 설명이 남아 있다는 저자의 답변이 비유의 한계를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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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같은 글, 133D 마지막 2행부터 136열 맨 위 6행의 저술 결론. τὰς μὲν ὑποστάσεις … ὁ τοῦ αἰτίου διακρίνει λόγος, ἡ δὲ θεία φύσις ἀπαραλλάκτως τε καὶ ἀδιαιρέτως … καταλαμβάνεται, διὰ τοῦτ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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