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장 | 실제 그리스어 어구 | 기존 영어의 핵심 어구 | 한국어 제안 | 지지·문법·유보 |
|---|---|---|---|---|
| A01. 말씀의 본성적 동일성은 먼저 서술됨 | Ὁ μὲν οὖν Λόγος τὴν ὄντως καὶ ἀληθῶς ταυτότητα τῆς φύσεως τῷ Πατρὶ ἔχει / ἡμῖν δὲ ἄρα τὸ μιμεῖσθαι πρόσεστιν | “identity of nature”, “imitate” | 말씀은 아버지와 실제로 같은 본성을 가지신다. 우리에게는 그 일치를 모방하는 길이 열려 있다. | 368열 §22 첫 문장. ἔχει는 말씀을 주어로 하는 현재 능동 3인칭 단수다. ἡμῖν은 모방이 가능하게 된 사람들이다. πρόσεστιν은 현재 3인칭 단수의 가능·허용 표현이며, 이 위치에 선물 수여 동사 δίδωμι가 인쇄된 것은 아니다. 자연적 동일성은 저자의 채택 진술로 비교어 해설보다 앞선다. 직접 지지; 동일성의 독립 증명은 별도 전제를 요구한다.1 |
| A02. 성육신한 몸과 같은 주님에게 받는 참여 | τὸ γὰρ ἡμέτερον ἐνεδύσατο σῶμα / ἐγὼ δὲ ἐν αὐτοῖς διὰ τὸ σῶμα / ἐκ τοῦ αὐτοῦ μεταλαμβάνοντες, ἕν γινόμεθα σῶμα | “our body”, “the Same” | 말씀은 우리의 몸을 입으셨고 그 몸 때문에 신자들 안에 계신다. 우리는 같은 분에게서 받아 한 몸이 되고 우리 안에 한 주님을 지닌다. | 368열 끝-369열 앞부분 §22. ἐνεδύσατο는 말씀을 주어로 하는 부정과거 중간태 3인칭 단수다. ἡμέτερον은 우리의 몸, αὐτοῖς는 신자들이다. διά와 대격은 몸 때문에라는 이유다. μεταλαμβάνοντες는 참여하는 사람들의 현재 능동 분사, γινόμεθα는 저자의 현재 중간태 1인칭 복수다. τοῦ αὐτοῦ는 남성·중성 속격 동형이며 같은 주님이라는 읽기는 뒤의 τὸν ἕνα Κύριον을 따른다. 몸과 참여의 관계는 직접 지지되며 특정 성찬 해석은 이번에 독립 검증하지 않았다.2 |
| A03. 가상 발언과 실제 비교, 본성의 거리 | Εἰ μὲν ἁπλῶς … ἵνα ὦσιν ἐν σοὶ ἕν / νῦν δὲ οὐχ ἁπλῶς εἶπεν / οὐ τόπῳ, ἀλλὰ τῇ φύσει | “one in You”, “as” | 그들이 아버지 안에서 하나 되게 하소서라고 조건 없이 말씀하셨다면이라는 가정과, 아버지·아들의 관계처럼 하나 되게 하소서라는 실제 인용을 저자가 대조한다. 이 논증에서 차이는 장소의 거리가 아닌 본성의 차이다. | 369열 §22 후반. εἰ의 가정은 저자가 반대자의 주장 가능성을 검토하려고 만든 발언이다. νῦν δὲ οὐχ와 실제 καθώς 문장은 그 가정과 대비된다. σοὶ는 아버지, αὐτοί는 신자다. οὐ가 공간적 거리를 부정하고 τῇ φύσει로 차이를 서술한다. 자연 차이의 직접 진술은 있으나 그것이 비교어 자체의 보편 의미라는 결론은 지지되지 않는다.3 |
| A04. 요나 사례의 제한된 대응 | οὐ ταυτότητα, οὐδὲ ἰσότητα … κατὰ τι θεωρούμενον / ὁμοιότητα δέ πως … διὰ τὸ τριήμερον | “identity”, “equality”, “three days” | 비교는 특정한 면에서의 모형을 제시한다. 요나와 구원자의 사흘은 대응하지만 두 분의 정체성이 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 369열 §22 말미와 §23부터 372열 앞부분. 그렇다는 비교와 전체 정체성·자격의 등치를 구별한다. 요나는 구원자와 같은 분이 아니라는 부정이 반복되고, 대응점은 τριήμερον이다. 직접 지지; 사흘이라는 속성의 일치까지 없어졌다는 주장은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καθώς가 동일성·동등성을 배제한다는 일반 문법 규칙으로 확대할 수 없다.4 |
| A05. 마음·정신의 합의와 아들의 자연적 내재 | ἐν τῷ φρονήματι καὶ τῇ τοῦ πνεύματος συμφωνίᾳ / φύσει γὰρ ὑπάρχει τοῦτο αὐτῷ / ἡμεῖς δὲ οὐκ ἔχοντες τὸ κατὰ φύσιν | “by nature”, “agreement of spirit” | 신자들은 마음과 정신의 합의로 서로 하나 된다. 아들이 아버지 안에 계신 관계는 본래 그분에게 있지만 우리는 그 관계를 본래 갖지 않는다. | 372열 §23. φρονήματι와 συμφωνίᾳ는 신자의 하나 됨을 서술한다. ὑπάρχει의 3인칭 단수 주어는 앞의 아들의 관계, αὐτῷ는 아들이다. ἡμεῖς의 οὐκ는 그 관계를 본래 갖는 것을 부정한다. PG는 이 구절의 πνεύματος를 소문자로, 뒤에 아버지에게 청하는 Πνεῦμά σου를 대문자로 표기한다. 이 표의 정신이라는 번역은 신자들의 합의 문맥을 따른 제안이며, 편집 대문자만으로 원래 지시 대상을 확정한 판정은 아니다.5 |
| A06. 성령의 선물과 온전함·하나님 참여 | δὸς αὐτοῖς τὸ Πνεῦμά σου, ἵνα καὶ αὐτοὶ ἐν τούτῳ ἓν γένωνται / θεοποιηθέντες ζῶσιν, ἐν ἡμῖν βλέποντες | “Your Spirit”, “deified”, “Me” | 아버지께 그들에게 성령을 주셔서 그 안에서 하나 되고 말씀 안에서 온전해지게 하시라고 청한다. 구원받은 이들이 신화(神化)되어 살아가며 서로 사랑으로 결속된다고 설명한다. | 372열 §23 끝. δὸς와 ἐνέργησον은 아버지에게 하는 2인칭 명령, αὐτοῖς는 신자들, τούτῳ는 받은 성령, ἐμοί는 말씀이다. δέδωκάς μοι τοῦτο φορέσαι는 아버지가 말씀에게 이 몸을 입는 일을 주셨다는 2인칭 완료 표현이다. 받는 대상과 관계를 구별하여 읽는다. θεοποιηθέντες는 사람들을 주어로 하는 부정과거 수동태 분사, ζῶσιν은 현재 능동 3인칭 복수다. 이 표현은 신자의 구원 후 변화를 서술하며, 말씀의 본성적 동일성이라는 첫 술어와는 주어·관계가 다르다. 하나님에 참여하는 생명이라는 풀이는 받은 성령과 성육신의 효과를 따른 해석이다. 이는 저자가 예수의 목소리로 풀어 쓴 기도이며 전부가 문자적 성경 인용은 아니다. PG의 ἡμῖν은 복수인데 영어 마지막 대명사는 단수다. 영어 기초 그리스어판을 별도로 대조하지 않아 차이의 원인은 미확정이다. 은혜라는 요약은 성령·성육신의 선물 관계를 따른 해석이다.6 |
화자와 인용 층위
| 위치 | 화자·기능 | 읽은 내용 |
|---|---|---|
| III.22 첫 문장, 368열 | 저자의 신학적 진술 | 말씀의 본성적 동일성과 신자에게 열린 모방을 구별한다. |
| III.22 요 17:23 인용 | 복음에서 인용한 예수 | 내가 그들 안에, 아버지가 내 안에, 그들이 하나로 온전해지도록이라는 문장. |
| III.22 σοῦ γὰρ εἰμι Λόγος부터 | 저자가 예수의 1인칭으로 풀이 | 아버지에게 자신의 말씀됨·성육신의 몸·신자의 온전함을 설명한다. 실제 요한복음의 문장과 구별되는 확장 발언이다. |
| III.22 Οἱ γὰρ πάντες부터 | 저자의 1인칭 복수 | 같은 대상에게서 받아 한 몸이 된 사람들에 자신을 포함한다. |
| III.22 εἰ μὲν … ἵνα ὦσιν ἐν σοὶ부터 | 저자의 가상 발언 | 실제 성경 문장을 바꾼 경우에 반대자의 주장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논박이다. |
| III.23 요나·마 12:40 | 예수의 인용과 저자의 사례 분석 | 이 인쇄판은 καθώς와 큰 물고기 안의 καρδία 표현으로 인용한다. 본문의 현대 비평판 형태로 교체하지 않았다. |
| III.23 ὅταν δὲ φησί부터 | 저자가 예수의 1인칭으로 기도 풀이 | 아버지의 성령 선물, 성육신과 완성의 효과, 하나님 참여와 사랑의 결속을 연결한다. |
실제 번호·판면과 편집 장치
| 그리스어 위치 | 범위 | PDF의 1부터 센 면·배치 |
|---|---|---|
| 365열 21절 표지-368열 22절 표지 전 | 필요한 III.21 문맥 | PDF 190 왼쪽 365열에서 PDF 191 오른쪽 368열로 이어짐 |
| 368열 22절 표지-369열 23절 표지 전 | III.22 전체 | PDF 191 오른쪽 368열 및 PDF 192 왼쪽 369열 |
| 369열 23절 표지-372열의 절 끝 | III.23 전체 | PDF 192 왼쪽 369열에서 PDF 193 오른쪽 372열로 이어짐 |
| 369-372열 주(1) | 편집 장치·긴 부가 문구 | 채택된 본문과 별개의 주석이며 PDF 192-193의 하단에 있음 |
따라서 라틴어 367·370·371열을 그리스어 인용으로 쓰지 않는다. 인쇄 열과 PDF 면은 실제 판면에서 확인했으며 JP2 leaf 번호로 바꾸지 않았다. 판본에는 본문의 행 번호가 없어 절 표지와 실제 첫 어구로 위치를 고정했다.
369열 주(1)은 일부 전승에 있던 긴 삼위일체 문구를 인용하며 그 문구가 난외주에서 본문으로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는 편집 판단을 기록한다. 거기에는 ὁμοούσιος가 나오지만 이 PG판의 채택된 III.23 본문에 포함되지는 않는다. 이 표는 주석의 긴 문구를 아타나시우스 자신의 본문 발언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원 사본이나 현대 비평판을 독립 대조한 결론은 아니다. 편집 장치 확대 및 369-370열 판면 · 371-372열 판면에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가능한 강한 반론과 추가 전제
- 비교어의 반론: 같은 사흘이라는 비교점은 정확히 대응할 수 있다. 따라서 비교어만으로 본성의 동일성이나 차이가 결정된다는 규칙은 성립하지 않는다. 저자는 κατὰ τι와 요나 사례로 제한된 대응을 설명한다.
- 신자의 일치에 관한 반론: 모방·정신의 합의만을 강조하면 성육신한 몸, 같은 주님에게서 받는 참여, 성령과 온전함·하나님 참여의 설명이 빠진다. 이 받은 관계도 실제적이고 변화를 낳는 관계다. 아들에게도 몸을 입는 일을 받았다고 서술하므로, 받은 것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본성의 차이가 결정되지는 않는다.
- 전제의 반론: 말씀과 아버지의 자연적 동일성을 처음부터 채택하면 요한복음 17의 비교는 그 교리 안에서 분류된다. 비교어만으로 그 교리의 진위를 독립적으로 증명하지는 못한다. 필요한 별도 근거는 말씀이 아버지에게 본래 속한 참된 말씀이며 인간은 그 관계를 본래 갖지 않는다는 말씀·인간 이해다.
기존 C12의 자연적 관계와 받은 참여의 구별은 이 인쇄본문과 맞는다. 다만 몸에 대한 참여라는 요약과 τοῦ αὐτοῦ의 구체적 목적어, 성찬의 구체적 해석은 같은 정도의 직접 명시로 세지 않는다. III.22-23만으로 창조주 지위와 나뉘지 않는 신성의 전체 논증을 새로 검증한 것은 아니다. 7
각주와 자료
-
아타나시우스, 『아리우스파 반박』 III.22, PG 26, J.-P. Migne 편, S. P. N. Athanasii opera omnia, II (Paris: J.-P. Migne, 1857), 그리스어 368열. 367-368열 판면. 영어는 John Henry Newman·Archibald Robertson 번역, NPNF Second Series 4 (1892), New Advent III.22-23.
-
같은 글 III.22, 368-369열. 367-368열 판면 · 369-370열 판면. σώμα, ἐνεδύσατο, μεταλαμβάνοντες, γινόμεθα와 1인칭 전환을 대조했다.
-
같은 글 III.22, 369열의 가상 발언부터 23절 표지 전. 369-370열 판면. 공간적 거리와 본성 차이를 구별한 원문을 읽었다.
-
같은 글 III.22 말미-III.23, 369-372열 앞부분. 369-370열 판면 · 371-372열 판면. 원문의 κατά τι 및 τριήμερον에 따라 비교 범위를 판단했다. 이는 이 논쟁 안의 해석과 평가이며 비교어 전체의 사전적 규칙이 아니다.
-
같은 글 III.23, 372열. 371-372열 판면. φρόνημα·συμφωνία와 아들의 φύσει, 우리가 갖지 않는 τὸ κατὰ φύσιν의 주체·부정을 대조했다.
-
같은 글 III.23, 372열의 기도 풀이부터 끝까지. 371-372열 판면. 이 PG판의 복수 ἡμῖν과 NPNF의 단수 지시를 기록하며 이유는 미확정으로 남겼다. 태·인칭과 선물 관계에 근거한 번역 제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