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우스는 성령의 선함, 앎, 생명 수여를 피조물의 선에 대한 참여, 계시 수용, 생명 의존과 비교한다.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처럼 본래 선하시며, 하나님의 깊은 것을 아시고, 하나님과 아들과 함께 생명을 주신다고 쓴다. 이 관계를 근거로 성령을 신성에서 떼어 피조물과 함께 분류하는 견해를 반박한다.1

앞의 55절에서 논쟁 상대는 성령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은 받아들이지만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거부한다. 바실리우스는 성령이 세례, 은사, 신자들의 삶에서 하나님과 아들 곁에 언급되며 피조물을 자유롭게 하신다고 답한다.2 56절은 이 영광의 문제를 선함, 앎, 생명 수여라는 구체적인 관계로 설명한다.

첫 문장의 φύσει는 선하다는 술어를 수식한다. 성령의 선함은 아버지와 아들의 선함에 비교되고, 피조물은 선을 선택하여 선함에 참여한다고 설명된다.3 본래 선함과 참여하여 얻는 선함의 구별은 바실리우스가 이 문단의 출발점에 둔 존재론적 판단이다. 앎과 생명 수여를 설명하는 다음 동사들에는 φύσει가 반복되지 않는다.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을 아시며, 피조물은 성령을 통하여 감추어진 것들의 계시를 받는다.4 존스턴은 바실리우스가 이 진술에서 고린도전서 2:10의 깊은 것 탐구와 2:11의 하나님에 대한 앎을 합쳤다고 설명한다.5 이 문단의 대비는 아는 성령과 계시를 받는 피조물이다. 그 앎을 본성에 속한 앎으로 읽는 판단은 선함과 생명 수여를 함께 다루는 문맥을 따르며, 아신다는 동사 자체에 본성이라는 부사가 붙은 것은 아니다.

바실리우스 자신의 생명 수여 진술은 성령이 하나님과 함께, 아들과 함께 생명을 주신다는 문장이다. 두 관계에 모두 μετά와 속격을 사용한다.6 이어 인용하는 로마서 8:11에서는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신 분이 신자들의 죽을 몸을 살리실 주어이며, 성령은 διά와 속격으로 표현된 매개의 관계에 놓인다.7 하나님·아들과 함께 생명을 주신다는 설명에는 이 인용 외에도 아들이 영생을 주신다는 요한복음 10:27-28과 성령의 생명 수여를 말하는 여러 구절이 함께 쓰인다.8

바실리우스는 고린도후서 3:6의 생명을 주는 성령, 로마서 8:10의 의 때문에 생명인 영, 요한복음 6:63의 살리는 영을 성령의 생명 수여를 뒷받침하는 인용 사슬로 사용한다. 로마서 8:10의 διά와 대격은 의 때문에라는 이유를 나타내며, 앞의 8:11에서 성령을 통한 관계를 나타내는 διά와 속격과 다르다. 요한복음의 육이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한다는 부정은 육에 걸린다.9 바실리우스는 이 인용 뒤 성령의 생명 수여 능력을 떼어낸 채 그분을 생명을 필요로 하는 본성에 속하게 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잭슨의 영어 번역은 이 본성을 생명 없는 본성으로 옮겼다.10 그리스어 ἐπιδεομένῃ τῆς ζωῆς는 생명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며, 이 문단에서는 생명을 받는 피조물의 조건을 설명한다.

성령을 신성에서 떼어 피조물과 함께 분류할 수 없다는 마지막 질문은 바실리우스 자신의 결론이다.11 그 결론은 성령의 본래 선함과 하나님·아들과 함께 생명을 주시는 활동을 피조물이 받은 참여와 생명에 대비시키는 전제를 포함한다. 성령을 통하여 계시와 생명을 받는다는 성경 표현에, 그 성령이 본래 선하시며 생명을 주는 신적 활동을 공유하신다는 해석을 더한 논증이다. 마지막 문장의 신성은 Θεότης이며, 같은 본질을 뜻하는 ὁμοούσιος는 56절에 나오지 않는다.

명제 C06은 바실리우스가 본래 선함, 앎, 생명 수여를 피조물의 받은 참여와 구별한다는 해석이다. 성령의 앎을 본성에 속한 앎으로 읽는 데에는 이러한 구별이 전제된다.12

6개 주장 대조표 · 판본·원문 이미지·출처와 확인 범위

각주와 자료

  1. 바실리우스, 『성령론』 XXIV.56, C. F. H. Johnston 편, The Book of Saint Basil the Great … On the Holy Spirit (Oxford: Clarendon Press, 1892), 112쪽 1-19행. 112쪽 인쇄면. 이 글은 해당 역사적 인쇄판을 사용한다. 현대 비평판은 읽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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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Johnston, XXIV.55, 110-111쪽, 특히 111쪽 1-20행. 110쪽 · 1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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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Johnston, 112쪽 1-3행. 112쪽 인쇄면. φύσει ἐστὶν ἀγαθόν과 ἐν τῇ ἐκλογῇ τοῦ ἀγαθοῦ μέτοχός ἐστι τῆς ἀγαθότητο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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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Johnston, 112쪽 3-5행. 112쪽 인쇄면. οἶδε와 λαμβάνει의 주체는 각각 문맥의 성령과 명시된 ἡ κτίσις이다. 해당 장치 주1은 일부 사본이 하나님의 깊은 것 뒤에 τὸ πνεῦμα를 보탠다고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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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Johnston, 112쪽 하단의 편집자 해설, “56. 3.” 표제 아래. 112쪽 인쇄면. 그의 고린도전서 두 구절 결합 설명을 직접 읽었다. 해설에서 인용한 에피파니우스 저술 자체는 이번에 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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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Johnston, 112쪽 5-6행. 112쪽 인쇄면. ζωοποιεῖ μετὰ τοῦ Θεοῦ … μετὰ τοῦ Υἱοῦ. 하나님은 만물을 살리시는 분, 아들은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설명된다. 여백의 성경 위치는 디모데전서 6:13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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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Johnston, 112쪽 7-9행, 로마서 8:11 인용. 112쪽 인쇄면. ὁ ἐγείρας가 ζωοποιήσει의 주어다. 인쇄문은 διὰ τοῦ ἐνοικοῦντος αὐτοῦ Πνεύματος ἐν ὑμῖν이다. 장치 주2는 신체 지칭의 ἡμῶν·ὑμῶν 차이를 기록한다. 현대 신약 비평장치는 이번 대조 범위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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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Johnston, 112쪽 9-13행의 성경 인용 사슬. 112쪽 인쇄면. 요한복음 10:27-28의 κἀγώ와 δίδωμι는 인용된 예수의 1인칭 발언이다. 이 판의 ἀκούει와 하단 주3의 복수형 차이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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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Johnston, 112쪽 10-13행. 112쪽 인쇄면. 각 성경 구절은 바실리우스가 인용한 인쇄문 형태로 읽었다. 표의 B05와 인용·화자 지도에서 고후 3:6, 롬 8:10, 요 6:63의 위치와 주체를 분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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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Blomfield Jackson 번역, NPNF Second Series 8 (1895), New Advent 『성령론』 XXIV.56, 성경 인용 사슬 뒤 첫 질문. 그리스어는 Johnston, 112쪽 14-15행. 112쪽 인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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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Johnston, 112쪽 13-19행. 112쪽 인쇄면. 마지막 질문의 τῇ κτίσει συντάξαι τὸ Πνεῦμα τῆς Θεότητος ἀποστήσας. 57절의 선물 논의는 112-113쪽에서 필요한 문맥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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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기존 C06 및 기존 논증문의 성령 단락과 주15. 영어 기반 진술과 이번 그리스어 대조의 비교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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