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 교회의 일부 사람은 죽은 이들의 부활을 부정했다. 바울은 그 주장을 받아들이면 그리스도의 부활과 복음, 믿음과 죄의 용서까지 무너진다고 논증한다. 20절에서 그는 실제 일어난 일을 선언한다. 그리스도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일어나셨다. 이제 그 부활이 신자들의 미래와 하나님의 통치에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한다.1
이 단락은 부활의 순서에서 시작하여 모든 권세와 죽음의 제거, 나라를 넘김, 아들 자신의 복종으로 이어진다. 그리스도가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는 진술과 아버지께 복종하신다는 진술이 같은 논증 안에 있다. 바울은 아들의 권한과 아버지의 우위를 모두 서술한다.
20절: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첫 열매다
“그러나 실제로 그리스도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일어나셨습니다. 잠든 사람들의 첫 열매이십니다.” (20절, 필자 번역)2
뉘니 데(Νυνὶ δὲ)는 앞에서 가정한 부활의 부재와 실제 사실을 대조한다. 티슬턴은 이 표현을 시간적인 지금만 가리키는 말보다, 가정과 다른 실제 상황을 선언하는 말로 읽는다.3 에게게르타이(ἐγήγερται)는 완료 수동형이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살리셨고, 그분은 부활하신 분으로 계신다.
첫 열매라는 아파르케(ἀπαρχή)는 같은 수확 가운데 먼저 거둔 몫을 가리킨다. 티슬턴은 먼저라는 시간 순서, 같은 수확을 대표함, 뒤따를 수확의 보증이라는 뜻을 함께 설명한다.4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분에게만 일어난 예외적인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분께 속한 사람들이 같은 부활을 누릴 근거가 된다.
잠든 사람들은 죽은 신자들을 가리킨다. 바울은 그들의 죽음을 부활과 함께 설명한다. 그리스도가 살리심을 받으셨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약속된 생명의 시작이다.
21-22절: 아담 안의 죽음과 그리스도 안의 생명
“죽음이 한 사람을 통하여 왔으므로, 죽은 사람들의 부활도 한 사람을 통하여 옵니다. 아담 안에서 모두가 죽듯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21-22절)
사람이라는 안트로포스(ἄνθρωπος)가 두 번 나온다. 바울은 아담과 그리스도를 인류의 운명에 관계하는 두 사람으로 놓는다. 티슬턴은 이 대조를 한 사람과 그에게 속한 사람들의 연대라는 관계로 설명한다.5 그리스도의 실제 인성이 이 논증의 출발점이다. 사람이 가져온 죽음을 사람이신 그리스도가 뒤집으신다.
생명을 얻을 것이라는 동사는 미래 수동형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그분께 속한 사람들의 부활 사이에는 시간 차이가 있다. 티슬턴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이전의 육체적 삶으로 돌아가는 소생과 구별하여, 새 창조의 삶을 시작하는 사건으로 읽는다.6 신자들은 죽음이 지배하는 조건으로 되돌아가는 것 이상의 생명을 기다린다.
두 번의 모두를 같은 범위의 명단으로만 읽으면 모든 사람이 같은 구원에 참여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은 각각 아담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라고 관계를 특정한다. 티슬턴은 뒤의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의 모두를 설명한다고 읽는다.7 피도 18절의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사람들과 첫 열매의 문맥을 근거로 같은 범위를 택한다.8 이 단락에서 직접 설명하는 부활의 약속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에게 주어진다.
23절: 그리스도와 그분께 속한 사람들의 순서
“그러나 각자 자기 순서대로입니다. 첫 열매는 그리스도이며, 그다음에는 그분이 오실 때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23절)
타그마(τάγμα)는 정해진 순서나 배치를 가리킨다. 군대의 대열에 쓰일 수 있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부활의 순서를 설명한다. 티슬턴은 이미 일어난 그리스도의 부활과 앞으로 일어날 신자들의 부활을 구별하는 표현으로 읽는다.9
바울은 그리스도와 신자들이 서로 다른 종류의 생명을 받는다고 설명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가 먼저 부활하셨으며, 그분이 오실 때 그분께 속한 사람들이 부활한다. 첫 열매와 수확의 관계가 그 시간 차이와 같은 생명을 함께 설명한다.
24절: 모든 권세를 없애고 나라를 넘기심
“그다음은 끝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없애고, 하나님이자 아버지이신 분께 나라를 넘기실 때입니다.” (24절)
텔로스(τέλος)는 여기서 끝이나 완성을 뜻한다. 티슬턴은 그 말을 나머지 사람들의 부활을 뜻하는 세 번째 무리로 읽는 해석에 반대한다.10 바울은 그리스도와 신자들의 부활을 설명한 뒤, 그 통치가 이루려는 목적의 완성으로 시선을 돌린다.
나라를 넘기시는 분은 그리스도이고 받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자 아버지다. 티슬턴은 이 구문을 하나님과 아버지라는 두 호칭이 같은 분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는다.11 그리스도가 맡으신 통치는 죽음을 포함한 모든 적대적인 권세를 제거하는 목적을 가진다.
통치와 권세와 능력에는 하나님께 대항하는 권세들이 포함된다. 티슬턴은 사람을 얽매는 영적 권세와 사회적인 악의 구조가 함께 고려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12 그리스도는 그 권세들과 협상하여 나라를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그 활동을 끝내신 뒤 아버지께 나라를 넘기신다.
25절: 모든 원수가 복종할 때까지 다스리심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원수를 자기 발 아래 둘 때까지 다스리셔야 합니다.” (25절)
다스리셔야 한다는 데이(δεῖ)는 하나님의 목적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함을 표현한다. 시편 110:1에서 하나님은 왕의 원수들을 발판으로 삼겠다고 말씀하신다. 바울은 그 시편의 통치를 그리스도에게 적용한다.13
발 아래 두는 동사의 주어는 해석이 갈린다. 시편의 주어를 따라 하나님으로 읽을 수도 있고, 현재 문장의 그리스도를 이어 주어로 읽을 수도 있다. 티슬턴은 문법과 인용 방식에 근거하여 그리스도 주어를 우선하는 읽기를 소개한다.14 위 번역도 그리스도의 통치와 그분이 적들을 복종시키는 활동을 함께 옮겼다. 27절은 그 통치권의 근원을 하나님에게 돌린다.
때까지라는 말만으로 그 이후 그리스도의 모든 통치가 사라진다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이 문장은 적들을 복종시키기 전까지 그분의 통치가 반드시 계속된다고 말한다. 티슬턴은 이 통치의 목적이 완성되는 것과 그리스도의 주되심 자체가 끝나는 것을 구별한다.15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자신이 시작하신 구원을 죽음의 제거까지 이루신다.
26절: 마지막 원수인 죽음을 없애심
“마지막 원수로 없어질 것은 죽음입니다.” (26절)
바울은 죽음을 원수라고 부른다. 부활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죽음은 여전히 사람들을 붙들고 있다. 죽음의 제거에는 죽은 이들의 실제 부활이 포함된다. 영혼의 평안이나 살아 있는 사람들의 도덕적 변화만으로 이 단락의 약속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카타르게이타이(καταργεῖται)는 현재 수동형이다. 티슬턴은 이미 시작된 죽음의 무력화와 앞으로 확실히 이루어질 제거라는 읽기를 검토한다.16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시작된 승리는 신자들의 부활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끝을 말하는 앞 절과 마지막 원수를 말하는 이 절이 함께 부활의 미래를 설명한다.
27절: 만물의 복종에서 제외되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 아래 복종시키셨기 때문입니다. 만물이 복종하게 되었다고 할 때, 만물을 그분께 복종시키신 분은 제외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27절)
시편 8:6의 사람이 받은 통치권이 그리스도에게 적용된다. 티슬턴은 바울이 사람에게 약속된 창조 세계의 통치를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결한다고 설명한다.17 시편 110편의 왕과 시편 8편의 사람이 이 그리스도에게서 함께 읽힌다.
만물에는 죽음도 포함된다. 죽음이 그리스도의 통치 밖에 있다면 만물이 복종한다는 말이 성취되지 않는다. 그러나 만물을 복종시키신 하나님은 그 만물에 포함되지 않는다. 티슬턴은 27절 후반과 28절이 하나님을 만물을 복종시키시는 분으로 특정한다고 읽는다.18
그리스도의 보편적인 권한은 하나님이 주신 권한이다. 이 구별은 그 권한의 범위를 축소하지 않으면서, 그리스도가 아버지를 대신하여 아버지 위에 서신다는 해석을 배제한다. 아버지는 그분이 다스리실 피조 세계에 속하지 않는다.
28절: 아들 자신이 복종하여 하나님이 만물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심
“만물이 그분께 복종하게 되면, 아들 자신도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시키신 분께 복종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만물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시게 하려는 것입니다.” (28절)
아들 자신이라는 아우토스 호 휘오스(αὐτὸς ὁ υἱός)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복종할 것이라는 휘포타게세타이(ὑποταγήσεται)는 미래 수동형이다. 만물이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고, 그 아들이 만물을 복종시키신 하나님께 복종한다. 바울은 그 아들의 행위를 종말의 순서 안에 명시한다.19
이 순서는 아들과 아버지 사이에 실제 차이를 둔다. 아들은 나라를 넘기고, 아버지는 받으신다. 티슬턴은 하나님이 구원의 근원과 목적이며 그리스도가 그 목적을 이루시는 관계가 여기서 끝까지 유지된다고 읽는다.20 아들은 아버지를 통치의 대상에 포함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만물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신다는 말은 죽음과 악의 저항이 제거되고 하나님의 통치가 완전히 이루어진 결과를 설명한다. 티슬턴은 이를 하나님과 세계를 동일한 실체로 만드는 범신론보다, 하나님에게서 시작하여 하나님께 이르는 구원의 성취로 읽는다.21 아들과 신자들이 하나님에게 흡수되어 사라진다는 문장은 아니다.
복종을 해석하는 현대 연구의 차이
매그래스는 그리스도가 모든 다른 것을 다스리면서도 하나님께 복종한다는 비대칭적인 관계에서 바울의 유일신 신앙을 설명한다. 하나님이 예수를 자기 대표자로 세워 통치하신다는 읽기다. 그가 강조하는 근거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에게 복종하지 않고 그리스도가 하나님에게 복종한다는 27-28절이다.22
피는 아들의 복종을 구원의 사명이 완성되는 관계로 읽으며, 기능적인 복종과 본질의 열등함을 구별한다.23 피의 읽기에서 24절의 나라 넘김과 28절의 복종은 같은 종말의 완성을 설명한다.
R. B. 제이미슨은 아담과 그리스도를 사람으로 대조한 21-22절, 시편 8편의 인간 통치, 나라를 넘기는 순서를 근거로 다른 해석을 제시한다. 아들의 복종은 인간 메시아로서 맡은 사명을 완성하는 행위이며, 같은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다른 진술을 지우지 않는다는 설명이다.24
사람으로 오신 바로 그 아들이 복종한다. 제이미슨의 주장은 바울이 같은 그리스도에게 신적 지위와 실제 인간의 행동을 함께 서술한다는 데 있다. 본문의 사람과 아들, 통치와 복종을 같은 주체의 서로 다른 관계로 설명한다.
교부들의 해석
크리소스토무스: 함께 다스리는 아버지와 아들
크리소스토무스는 『고린도전서 강해』 39에서 나라를 넘김을 통치의 완성으로 읽는다. 아버지가 그전에는 통치하지 않으셨고 아들이 그후에는 통치하지 않으신다는 뜻으로 읽으면, 아버지의 계속되는 활동과 아들의 영원한 나라를 설명할 수 없다는 논증이다.25
그는 25절에서 아들이 적들을 복종시키고 27절에서 아버지가 복종시키는 관계를 함께 읽는다. 빌립보서 3:21을 연결하여 아들이 만물을 자신에게 복종시킬 권능을 가지신다고 설명한다. 그에게 아버지와 아들의 활동은 같은 구원을 이루는 공통의 활동이다.26
복종에서는 빌립보서 2장의 성육신을 연결한다.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 종의 모습을 취하여 낮아지셨다는 설명으로 28절을 읽는다. 그가 강조하는 일치에는 아버지를 다른 통치의 적수로 세우지 않는 아들의 관계가 포함된다.27 이 해석에는 본문 간 연결과 성육신에 관한 신학적 판단이 들어 있다.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오스: 구원받은 사람들을 아버지께 데려가는 머리
그레고리오스는 『신학강론』 30.5에서 그리스도가 몸의 머리로서 사람들의 불순종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신다고 설명한다. 그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면, 그들을 데려가시는 그리스도의 복종도 완성된다.28 아들의 복종을 구원받은 공동체와 그 머리의 관계로 읽는 해석이다.
30.6에서는 말씀 자체와 종의 모습을 구별한다. 말씀의 본성에 복종과 불복종이라는 피조물의 관계를 적용하기보다,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가 인간의 순종을 이루신다고 설명한다. 하나님이 모든 것이 되신다는 결론도 아들이 아버지 안에 녹아 사라지는 뜻으로 읽지 않는다.29
크리소스토무스가 공동 활동과 성육신을 강조했다면, 그레고리오스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구원받는 몸의 대표 관계를 더 자세히 설명한다. 후자의 해석은 21-22절의 대표 관계와 연결되며, 신자들의 순종을 아들의 복종에 포함하는 데에는 교회의 머리에 관한 다른 본문도 사용한다.
앞선 본문과 함께 읽은 판단
고린도전서 8:6에서 하나님 아버지는 만물의 근원과 목적이고, 그리스도는 만물과 우리의 존재를 매개하시는 한 주다. 15:24-28은 이 관계를 종말의 성취로 설명한다. 만물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며, 그리스도는 아버지께 나라를 넘긴다. 하나님에게서 주어진 권한은 아버지의 뜻을 완성하는 데 사용된다.
빌립보서 2:5-11은 순종과 높임을 하나님과의 동등함 및 종의 모습을 취한 행위와 함께 서술한다. 골로새서 1:16-17은 만물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창조되고 그분 안에서 유지된다고 말한다. 에베소서 1:20-23은 하나님이 높이신 그리스도가 모든 권세 위에 계시며 교회에 주어졌다고 설명한다.30 각 본문은 그리스도의 의존과 권능을 함께 말하지만, 15장의 사람을 통한 부활과 메시아 통치가 그 의미를 구체화한다.
27절의 모든 것에서 아버지가 제외된다는 사실만으로 아들이 만물과 같은 피조물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는 없다. 여기서 만물은 아들에게 복종하는 대상이고 아들은 그 대상을 다스리시는 분이다. 그 아들이 창조에도 관계하신다는 8:6과 골로새서의 진술을 함께 읽으면, 아버지에게서 받은 통치와 창조주 지위를 양립시키는 해석에 근거가 있다. 최고 대리자라는 해석은 통치권의 수여를 잘 설명하지만 그리스도의 창조 참여와 보편적인 주의 고백도 설명해야 한다.
동일 본질의 논증은 같은 아들이 사람이 되셨다는 판단을 포함한다. 만물을 창조하시는 아들의 신성과 그 아들이 실제로 죽고 부활하며 인간의 순종을 완성한 일을 함께 고백한다. 아들의 신성을 별개의 피조된 능력으로 놓지 않고, 한 하나님 안의 나뉘지 않는 신성으로 설명하면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구별한다. 복종의 주체는 그 아들이며, 복종의 문맥은 사람이신 메시아의 사명이다. 이것은 부활과 복종을 신성의 열등함으로 바꾸는 해석보다 21절의 사람, 27절의 인간 통치, 28절의 사명 완성을 함께 설명한다.
이 단락에는 성령이 직접 언급되지 않는다. 세 분의 동일 본질에 관한 전체 판단은 다른 본문의 성령의 계시와 활동도 필요로 한다. 이곳의 기여는 아버지와 아들의 의존과 통치, 실제 인성과 종말의 순종을 하나의 구원 이야기로 제시하는 데 있다. 죽음이 제거되고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이 살아나는 때, 아들은 자신이 완성한 나라를 아버지께 넘기신다.
각주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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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hony C. Thiselton,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IGTC (Grand Rapids: Eerdmans; Carlisle: Paternoster, 2000), 1222-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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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ael W. Holmes 편, The Greek New Testament: SBL Edition (2010), 고전 15:20-28을 따른 필자 번역. 고정 커밋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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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elton, First Epistle,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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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elton, First Epistle, 1223-1224. 그가 인용한 드부르와 홀러먼의 연구는 이 주석의 소개를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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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elton, First Epistle, 1224-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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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elton, First Epistle, 1228-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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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elton, First Epistle, 1227,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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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rdon D. Fee,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revised edition, NICNT (Eerdmans, 2014), 830-833, 15:21-22 해설. 전자책(Perlego)에 표시된 출판사 인쇄 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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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elton, First Epistle, 1229-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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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elton, First Epistle, 1230-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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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elton, First Epistle,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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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elton, First Epistle, 1232-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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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elton, First Epistle, 1233-1234. 시 110:1은 칠십인역 시 109: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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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elton, First Epistle, 1233-1234. 바렛과 볼프는 하나님 주어를, 콘첼만과 피는 그리스도 주어를 우선하는 것으로 소개된다. 해당 학자들의 견해는 이곳에서는 티슬턴을 통한 확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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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elton, First Epistle, 1231,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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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elton, First Epistle, 1234-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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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elton, First Epistle, 1235. 시 8:6은 칠십인역 시 8:7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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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elton, First Epistle,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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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LGNT, 고전 15:28; Thiselton, First Epistle, 1236-1237. SBLGNT는 τότε 뒤의 καί를 포함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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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elton, First Epistle, 1236-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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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elton, First Epistle, 1239.
-
James F. McGrath, The Only True God: Early Christian Monotheism in Its Jewish Context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2009), 49-51, 특히 50. 전자책(Perlego)에 표시된 인쇄 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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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e, First Epistle, 841-842, 15:28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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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B. Jamieson, “1 Corinthians 15.28 and the Grammar of Paul’s Christology,” New Testament Studies 66, no. 2 (2020): 187-207, 여기서는 199-203. 출판사 원문. 사람으로서 맡은 사명의 완성이라는 그의 논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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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소스토무스, 『고린도전서 강해』 39.5-6, 11. 공개 NPNF 영어 번역의 번호를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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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글, 39.7-9. 고전 15:25와 27을 빌 3:21의 아들의 권능에 연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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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글, 39.7, 9-10. 빌 2:6-9, 요 5:21 및 16:15를 연결하여 성육신과 공동 활동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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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오스, 『신학강론』 30.5, 공개 NPNF 영어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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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글, 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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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LGNT, 고전 8:6; 빌 2:5-11; 골 1:16-17; 엡 1:20-23. 관련 원고는 고린도전서 8:4-6, 빌립보서 2:5-11, 골로새서 1:12-20, 에베소서 1:15-23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