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의 찬양문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복을 선택과 구속, 성령의 인침으로 설명했다. 이제 저자는 그 복을 받은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한다. 성령으로 인침받은 신자들이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그분의 부르심과 유업과 능력을 깨닫도록 구한다. 앞의 찬양과 뒤의 기도는 같은 구원을 서로 다른 자리에서 서술한다.1

15-23절은 헬라어에서 길게 이어지는 한 문장이다. 감사와 중보가 17절의 청원으로 이어지고, 18-19절은 신자들이 알게 될 내용을 설명한다. 20-23절은 그 능력이 그리스도의 부활과 높임에서 어떻게 드러났는지 서술한다.2 기도받으시는 하나님, 지혜와 계시를 주시는 성령, 높임받아 교회에 주어진 그리스도의 관계가 이 문장의 전개 안에 들어 있다.

15-16절: 신자들의 믿음과 사랑을 듣고 감사함

“그러므로 나도 여러분이 주 예수 안에서 지닌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듣고, 여러분을 위하여 감사하기를 그치지 않습니다. 나는 기도할 때 여러분을 기억합니다.” (15-16절, 필자 번역)3

그러므로라는 말은 앞에서 찬양한 하나님의 복을 가리킨다. 저자는 그 복이 수신자들에게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감사한다. 라킨은 주 예수 안에서라는 구문을 믿음의 대상만 가리키는 표현보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관계를 나타내는 말로 읽는다.4 믿음은 주 예수와의 관계 안에서 생겨나며, 성도들을 향한 사랑과 함께 서술된다.

15절의 사랑에는 이문이 있다. 일부 이른 사본은 사랑이라는 말을 생략한다. 바르트는 그 짧은 본문을 우선하며 피스티스(πίστις)를 주 예수와 성도들에게 보이는 신실함으로 읽는다.5 라킨은 같은 관사가 이어지는 곳에서 필사자가 중간 말을 빠뜨렸을 가능성을 들어 긴 본문을 택한다.6 SBLGNT는 사랑을 포함한다. 위 번역도 그 본문을 따라 주 예수 안의 믿음과 성도들을 향한 사랑을 구별한다.

감사하기를 그치지 않는다는 말은 수신자들을 향한 지속적인 관심을 표현한다. 파울은 감사와 중보가 하나님, 편지를 쓰는 사람, 수신자들을 연결한다고 설명한다.7 저자는 하나님께 그들을 맡기면서, 편지를 통해 그들을 위해 무엇을 구하는지도 알린다. 이미 복음을 믿는 사람들에게 계속 기도가 필요한 이유가 다음 청원에서 밝혀진다.

17절 앞부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곧 영광의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지혜와 계시의 성령을 주시어 그분을 알게 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17절)

하나님과 아버지는 같은 분이다. 두 명사가 모두 주격이고, 아버지가 하나님을 다시 설명한다. 라킨은 하나님을 주시다라는 동사의 주어로, 아버지를 그 하나님을 설명하는 동격으로 읽는다.8 기도를 받으시며 성령을 주시는 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다.

이 호칭은 3절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자 아버지라는 표현을 이어받는다. 예수는 신자들의 주이며,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과는 구별된다. 링컨은 이 호칭에 그리스도가 하나님께 의존하는 관계와 하나님을 그리스도의 관계로 특정하는 의미가 함께 있다고 읽는다.9 저자는 그 하나님께 성령의 선물을 구한다.

영광의 아버지라는 속격을 라킨은 영광스러운 아버지라는 뜻으로 읽는다.10 스티븐 파울(Stephen E. Fowl)은 영광의 근원이시며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이라는 함의도 살린다.11 앞의 찬양문에서 되풀이된 하나님의 영광은 이 기도에서도 하나님을 설명한다. 신자들이 알게 될 분은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자신을 알리시는 아버지다.

17절 뒷부분: 지혜와 계시의 성령을 주심

“여러분에게 지혜와 계시의 성령을 주시어 그분을 알게 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17절 뒷부분)

프뉴마(πνεῦμα)는 성령을 가리킬 수도 있고 사람의 영이나 마음가짐을 가리킬 수도 있다. 이곳에는 관사가 없다. 라킨은 지혜와 계시 가운데 계시의 내용이 인간의 영에서 생겨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성령으로 읽는다.12 관사가 없다는 사실만으로 지혜로운 인간의 마음을 뜻한다고 결정할 수는 없다.

앞의 13-14절에서 수신자들은 약속된 성령으로 인침받았고, 그 성령이 유업의 보증이라고 설명되었다. 파울은 그 문맥과 계시라는 말을 함께 고려하여 17절도 성령으로 읽는다.13 이미 성령을 받은 신자들이 같은 성령의 활동으로 하나님을 더 깊이 알도록 구하는 기도다.

바르트는 성령이 사람 안에 새로운 영과 사고를 일으키신다는 점을 강조한다. 지혜와 계시의 성령을 받는 일에는 계시를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는 인간의 변화도 포함된다.14 성령과 신자의 지혜로운 마음은 이 해석에서 원인과 결과로 연결된다. 저자가 구하는 선물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성령의 활동이다.

그분을 안다는 말의 대명사는 문법상 앞의 하나님 아버지로 읽힌다.15 신자들이 성령의 계시를 통해 아버지를 안다. 지혜와 계시는 하나님께 관한 새로운 정보의 양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이 기도는 그분이 신자들을 어떻게 부르셨고, 무엇을 이루셨으며, 어떤 구원을 약속하셨는지를 아는 데 초점을 둔다.

18절 앞부분: 마음의 눈이 밝아짐

“여러분의 마음의 눈이 밝아져서, 그분의 부르심이 주는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되기를 구합니다.” (18절 앞부분)

눈이 밝아졌다는 페포티스메누스(πεφωτισμένους)는 완료 수동분사다. 하나님이 밝히신 결과가 이어지는 상태를 표현한다. 라킨은 이 분사를 뒤의 여러분을 설명하는 말로 읽으며, 밝히시는 행위의 주체를 하나님으로 이해한다.16 사람의 가장 깊은 인식과 판단을 뜻하는 마음에 눈의 비유를 붙여, 하나님의 일을 알아보는 능력을 표현한다.

바르트는 이 밝아짐을 세례와 곧바로 일치시키는 해석보다 성령이 계속 이루시는 깨달음에 무게를 둔다.17 파울도 그리스도인이 될 때의 변화를 인정하면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이 그 한순간에 완결된다는 설명을 피한다.18 이미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이 그 관계의 의미를 알아가도록 구하는 기도다.

부르심의 소망에서 부르신 분은 아버지다. 소망은 신자들의 낙관적인 기분보다 하나님이 부르신 삶의 미래를 가리킨다. 라킨은 소망을 기다리는 구원의 내용으로 읽는다.19 하나님이 창세 전에 택하시고 복음을 통해 부르신 사람들이 그분의 구원을 완전히 누릴 것을 바라본다.

18절 뒷부분: 성도들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유업

“성도들 가운데 있는 그분의 유업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풍성한지 알게 되기를 구합니다.” (18절 뒷부분)

그분의 유업은 두 방향으로 읽힌다. 라킨은 하나님에게서 오는 미래의 구원으로 읽는다. 14절의 우리의 유업과 연결하여, 신자들이 성도들과 함께 받을 구원을 설명한다.20 이 읽기에서 하나님은 유업을 주시는 분이다.

파울은 링컨을 따라, 14절의 신자들이 받는 유업과 18절의 하나님이 소유하시는 유업을 구별한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자기 유업이라고 부르신 표현을 근거로, 18절을 하나님께 속한 백성으로 읽는다.21 그리스도 안에서 모인 성도들이 하나님의 풍성한 소유가 된다.

그분의라는 대명사는 문법상 유업의 근원과 소유자 양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서는 소유자의 뜻을 우선한다. 앞의 찬양문은 하나님이 신자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일을 설명했고, 18절은 그 백성이 하나님께 얼마나 귀한지를 서술한다. 성도들은 15절에서 사랑의 대상이 된 신자들과 같은 사람들로 읽는 것이 문맥에 맞는다. 이 해석에서도 그들이 받을 구원의 유업과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라는 관계는 서로 연결된다.

19절: 믿는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능력

“또 믿는 우리를 향한 그분의 능력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 알게 되기를 구합니다. 그 능력은 그분의 힘찬 권능이 활동하는 대로 우리에게 미칩니다.” (19절)

저자는 능력을 뜻하는 여러 말을 겹쳐 쓴다. 뒤나미스(δύναμις), 에네르게이아(ἐνέργεια), 크라토스(κράτος), 이스퀴스(ἰσχύς)가 이어져 하나님의 능력과 그 활동을 강조한다. 라킨은 실제 활동, 힘, 효과를 낼 수 있는 역량이라는 각 말의 뜻을 구별한다.22 파울은 이 문맥에서 그 차이를 세밀한 단계로 나누기보다 하나님의 능력이 다른 권세들을 압도한다는 표현으로 읽는다.23

그 능력은 믿는 우리를 향한다. 수신자들과 저자가 같은 구원에 참여한다. 카타 텐 에네르게이안(κατὰ τὴν ἐνέργειαν)은 믿음의 크기보다 하나님의 능력이 어떻게 활동하는지 설명한다는 라킨의 읽기가 문맥에 맞는다.24 신자가 얼마나 강하게 믿느냐를 기준으로 능력을 측정하는 문장이 아니다. 다음 절은 그 능력이 이미 행한 일을 제시한다.

20절: 그리스도를 살리시고 자기 오른편에 앉히심

“하나님은 그 능력을 그리스도에게 행하여, 그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일으키시고 하늘의 영역에서 자기 오른편에 앉히셨습니다.” (20절)

하나님이 계속 행위의 주어이고 그리스도는 일으킴과 높임을 받으신 분이다. 일으키셨다는 에게이라스(ἐγείρας), 앉히셨다는 카티사스(καθίσας)는 하나님이 그 능력을 어떻게 행하셨는지 설명하는 분사다.25 SBLGNT의 중심 동사 에네르게켄(ἐνήργηκεν)은 완료형이다. 라킨이 주해한 본문은 부정과거형 에네르게센(ἐνήργησεν)이지만, 두 읽기에서 부활과 오른편에 앉히신 행위의 주체와 대상은 같다.26

오른편은 시편 110:1의 왕권을 떠올리게 한다. 파울은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심을 그분의 권능에 참여하고 적들을 제압하는 영예로운 지위로 설명한다.27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통치와 무관한 자리에 앉으신 것이 아니라, 그 통치를 행사하는 지위를 받으신다.

하늘의 영역은 3절에서 신자들이 복을 받는 관계와도 연결된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높임은 신자들을 향한 능력을 구하는 기도의 근거다. 이어지는 2:5-6에서 하나님은 신자들도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일으키시며 하늘에 함께 앉히신다고 서술된다.28 그리스도에게 일어난 구원 사건에 교회가 참여한다. 링컨은 2:6에 오른편이라는 말이 없으므로, 그 권한이 그리스도에게 고유하게 주어진다고 읽는다.29

21절: 모든 권세와 모든 이름 위에 계심

“그분은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지배, 이 시대뿐 아니라 오는 시대에도 불리는 모든 이름 위에 높이 계십니다.” (21절)

통치와 권세, 능력과 지배는 그리스도에게 복종할 권세들을 열거한다. 라킨은 인간의 삶과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영적 권세들로 읽는다.30 파울은 그런 권세들이 당시 사람들의 종교와 사회적 삶에 영향을 미치는 관계도 설명한다.31 이 목록은 권세들의 체계를 완전하게 분류하려는 문장보다 그리스도의 우위를 빠짐없이 말하려는 문장이다.

모든 이름은 열거한 권세를 더 넓게 포괄한다. 그리스도와 겨룰 수 있는 이름이나 권위가 남아 있지 않다. 이 시대와 오는 시대를 함께 말하므로 그분의 우위는 현재에 한정되지 않는다. 파울은 그리스도의 통치가 이미 확립되었으나 완전한 성취는 기다리고 있다는 관계로 읽는다.32

이 절은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경쟁하는 또 하나의 권세로 서술하지 않는다. 앞 절에서 하나님이 그분을 자기 오른편에 앉히셨으며, 여기서는 모든 다른 권세 위에 계신다고 설명한다. 그 높임은 하나님에게서 받으신 것이고, 그리스도의 권한은 어떤 피조된 권세에도 제한되지 않는다.

22절: 만물을 복종시키시고 그리스도를 교회에 주심

“하나님은 만물을 그분의 발 아래 복종시키시고, 만물 위의 머리이신 그분을 교회에 주셨습니다.” (22절)

만물을 발 아래 복종시키셨다는 말은 시편 8:6을 그리스도에게 적용한다. 시편은 사람이 창조 세계를 다스리는 지위를 설명하고, 에베소서는 그 표현으로 그리스도의 보편적인 권한을 서술한다.33 20절의 시편 110편과 22절의 시편 8편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통치를 함께 설명한다.

주셨다는 동사의 목적어는 그리스도 자신이다. 라킨은 이 구문을 머리로 임명하셨다는 뜻으로 읽는다.34 파울은 하나님이 만물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교회에 선물로 주셨다는 뜻을 강조한다.35 두 읽기에서 하나님이 주신 것은 그리스도의 권한과 무관한 별도 선물이 아니다. 교회는 만물을 다스리시는 그분을 받는다.

만물 위의 머리와 교회라는 표현의 관계도 중요하다. 머리라는 말은 이곳에서 먼저 그리스도가 만물에 대해 갖는 권한을 설명한다. 파울은 그것이 교회와의 관계에서 지배의 뜻만으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으며, 4:15-16의 몸을 자라게 하고 함께 묶어 주는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고 읽는다.36 만물을 다스리시는 분이 교회의 생명과 성장에도 관계하신다.

23절: 그리스도의 몸과 충만

“교회는 그분의 몸이며, 모든 것을 모든 면에서 채우시는 분의 충만입니다.” (23절)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첫 진술은 분명하다. 뒤의 충만이라는 플레로마(πλήρωμα)는 그 몸을 다시 설명한다. 라킨은 이 명사를 몸의 동격으로 읽으며, 교회를 그리스도로 충만한 공동체로 이해한다.37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는 머리가 몸에 생명과 질서를 주고 몸이 그 머리에게 속하는 관계다.

마지막 분사 플레루메누(πληρουμένου)는 같은 형태를 중간태와 수동태로 모두 읽을 수 있다. 라킨은 타 판타(τὰ πάντα)를 직접목적어로 읽어, 그리스도가 만물을 자신을 위하여 채우신다는 중간태를 택한다.38 바르트도 서신의 우주적 통치와 그리스도가 만물을 채우신다는 4:10을 근거로, 그리스도가 교회와 세계를 채우시는 읽기를 우선한다.39 위 번역은 이 해석을 따른다.

링컨은 명사 충만을 그리스도로 채워진 교회라는 수동적인 뜻으로, 분사는 만물을 채우는 그리스도의 활동으로 읽는다. 라킨과 달리 자신을 위하여라는 중간태의 뜻을 특별히 강조하지 않는다.40 이 해석에서 그리스도는 자신의 현존과 통치로 만물을 하나님이 정하신 목적에 이르게 하신다.

파울은 수동태를 우선한다. 타 판타 엔 파신(τὰ πάντα ἐν πᾶσιν)을 모든 면에서라는 부사적 표현으로 읽고,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충만하게 하신다고 설명한다. 교회는 하나님에게서 충만함을 받은 그리스도의 충만이다.41 이 읽기에서 하나님은 부활과 높임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충만에도 행위의 주체가 된다.

파울은 만물을 채우시는 그리스도라는 중간태 해석도 가능한 읽기로 인정한다. 두 해석은 각각 하나님이 주신 선물과 그리스도의 우주적 활동에 무게를 둔다.42 수동태 해석은 중간태 용례의 희소성과 앞 문장의 주어인 하나님을 근거로 삼는다. 중간태 해석은 타 판타의 목적어 구문과 4:10의 명시적인 그리스도 주어를 근거로 삼는다. 여기서는 같은 서신 안의 가까운 표현을 따라 그리스도가 만물을 채우신다는 읽기를 우선한다.

충만을 교회가 그리스도의 부족을 채운다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바르트는 교회가 자라고 세워진다는 서신의 설명과, 그리스도가 몸의 생명을 주신다는 방향을 근거로 그 해석에 반대한다.43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성을 완성해야 그분이 충만해진다는 뜻은 앞의 만물 통치와도 맞지 않는다. 교회는 그분이 주시는 충만을 누리는 몸이다.

라이오넬 윈저는 충만을 1:10의 때의 성취와 연결한다. 땅의 여러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목적을 이루는 몸이라는 해석이다.44 이 읽기는 교회가 하늘의 머리와 연결되면서 땅에서 살아가는 관계를 잘 설명한다. 다만 1:10에서 때가 찬다는 뜻이 1:23의 충만을 전부 결정하지는 않는다. 그리스도가 만물을 채우신다는 마지막 구문도 함께 설명해야 한다.

교부들의 해석

크리소스토무스: 성령의 앎, 높임받은 인성과 교회의 참여

크리소스토무스는 『에베소서 강해』 3에서 성령이 하나님의 깊은 것을 아시기에 신자들에게 그분을 알리실 수 있다고 설명한다. 고린도전서 2장을 연결하여, 계시를 주시는 성령을 피조된 천사들과 구별한다.45 이 논증은 성령의 수여와 신자들의 앎을, 성령 자신의 하나님에 대한 앎에 근거시킨다.

그는 부활과 높임을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인성에 적용한다. 말씀은 본래 창조물 위에 계시며, 이제 그분이 취하신 인성이 높임을 받았다는 설명이다.46 17절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라는 호칭도 이 성육신한 관계로 읽는다.

교회의 충만에서는 머리와 몸이 함께 이루는 전체를 강조한다. 손과 발 같은 각 지체가 모여 몸이 완성되며, 머리도 그 몸과 결합한다는 해석이다.47 그리스도의 신성이 교회의 보충을 기다린다는 설명보다,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여러 신자가 함께 이루는 몸의 완성에 초점이 있다.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오스: 그리스도의 하나님과 영광의 아버지

그레고리오스는 『신학강론』 30.8에서 17절을 직접 인용한다. 그리스도의 하나님은 성육신한 말씀의 인성에, 영광의 아버지는 말씀의 신성에 관계한다고 설명한다. 두 본성을 가진 같은 그리스도에게 두 호칭을 적용한다.48

그의 읽기에서 영광은 하나님의 아들을 가리킨다. 오늘의 문법적 주해는 영광의 아버지를 영광스러운 아버지 또는 영광의 근원으로 설명한다. 그레고리오스는 그 속격을 영광이신 말씀과 아버지의 관계로 읽어,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을 가지신다는 진술에 답한다. 이 결론에는 성육신의 두 본성에 관한 이해와 영광을 아들에게 적용하는 해석이 들어 있다.

세 분의 관계, 동등한 신적 지위와 동일 본질

이 단락에서 아버지는 기도를 받으시고 성령을 주시며 그리스도를 살리고 높이시는 분이다. 성령은 신자들이 하나님을 알도록 지혜와 계시를 주신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에게서 높임을 받아 만물을 다스리시며 교회에 주어진다. 세 분은 같은 구원에 관계하면서 각기 다른 행위와 관계로 서술된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하고 권한을 받았다는 진술은 그분의 의존을 분명히 말한다. 동시에 그분은 모든 권세와 이름 위에 계시며, 교회가 받은 만물의 머리다. 이 보편적인 권한은 일반적인 천사나 한 지역의 통치자와 구별된다. 파울은 그리스도가 피조된 권세들 위에 계신다는 설명을 골로새서 1:15-16의 창조 참여와 연결하여 아들의 고유한 지위로 읽는다.49

그러나 하나님이 세우신 최고 대리자도 광범위한 통치권을 받을 수 있다. 이 단락의 높임만으로 그리스도가 창조주와 같은 본질이라는 결론까지 얻기는 어렵다. 신자들도 2:6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고, 3:19에서 하나님의 충만을 받는다. 하늘의 지위와 충만을 받았다는 표현만으로 그 참여자의 본질이 하나님과 같아지지는 않는다.

그리스도의 고유한 지위는 참여를 받는 교회와 만물을 채우는 주님의 차이에서 더 선명해진다. 4:10에서 만물을 채우는 행위의 주어는 하늘 위에 오르신 그리스도다. 골로새서 1:16-17은 모든 권세를 포함한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창조되었고 그분 안에서 유지된다고 말한다. 요한복음 1:1-3은 그 창조의 말씀을 하나님이라고 부르면서, 말씀을 통해 생겨난 모든 것과 구별한다.50 이 본문들을 함께 읽으면 그리스도의 통치는 창조주의 활동에 참여하시는 분의 통치로 설명된다.

동일 본질은 이 창조주 지위와 한 하나님에 대한 고백을 함께 설명한다. 만물을 창조하고 유지하시는 아들을 하나님과 별개인 또 하나의 신으로 세우면 한 하나님이라는 서신의 고백과 충돌한다. 아들을 피조물로 놓으면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창조되었다는 포괄적인 진술과 충돌한다. 아버지와 구별되면서 나뉘지 않는 하나의 신성을 지니신다는 설명은 이 두 진술을 함께 보존한다. 이 판단은 에베소서의 높임을 다른 신약 본문의 창조와 신성 진술에 연결한 교리적 추론이다.51

성령에 관해서는 아버지가 성령을 주신다는 문법만으로 본질을 판단할 수 없다. 이 단락은 성령이 하나님을 알리시는 계시의 근원이라는 관계를 제시한다. 고린도전서 2:10-11을 연결하면 그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을 아시며, 사람의 영이 자기 일을 알듯이 하나님의 일을 아시는 하나님의 영이다.52 크리소스토무스가 피조된 계시의 전달자와 성령을 구별한 논거도 바로 이 앎이다.

하나님이 알려 주신 것을 전달하는 천사와 하나님 자신의 깊은 것을 아시는 성령은 앎의 관계가 다르다. 성령의 앎을 하나님의 자기 앎으로 이해하고, 하나님의 생명과 앎을 분리된 여러 신성으로 나누지 않는다면 성령은 아버지와 같은 신적 본성에 속한다. 여기에 아들의 창조주 지위를 함께 연결하면 세 분의 구별과 한 신성을 설명할 수 있다. 성령의 계시를 하나님의 자기 앎에 연결하는 해석과, 하나님의 신성은 나뉘지 않는다는 신론이 이 결론을 이끈다.

그리스도의 하나님이라는 호칭은 이 설명 안에서도 그대로 유지된다.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일어나신 분은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이며, 그분은 아버지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신다. 교부들은 이 구원의 관계를 인성의 높임으로 설명했다. 본문의 직접적인 강조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이 교회에도 미친다는 데 있다. 성령이 신자들의 마음을 밝히시는 목적은 이 하나님과 그 구원을 알게 하는 것이다.

각주와 자료

  1. Stephen E. Fowl, Ephesians: A Commentary, New Testament Library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12),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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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William J. Larkin, Ephesians: A Handbook on the Greek Text, Baylor Handbook on the Greek New Testament (Waco: Baylor University Press, 2009), 17-18; Fowl, Ephesians,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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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성경 번역은 Michael W. Holmes 편, The Greek New Testament: SBL Edition (2010), 엡 1:15-23을 따른 필자 번역이다. 고정 커밋의 헬라어 본문. 15절은 사랑을 포함하고, 20절은 완료형 ἐνήργηκεν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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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Larkin, Ephesians,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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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Markus Barth, Ephesians: Introduction, Translation, and Commentary on Chapters 1-3, Anchor Yale Bible 34 (New Haven and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2008; original Doubleday edition 1974), 146-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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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Larkin, Ephesians, 18-19. 바르트도 긴 본문의 경우 같은 관사 사이에서 생긴 필사상의 생략을 가능한 설명으로 제시한다. Barth, Ephesians,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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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Fowl, Ephesians, 5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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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Larkin, Ephesians,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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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Andrew T. Lincoln, Ephesians, Word Biblical Commentary 42 (Zondervan, November 2017 ePub edition; copyright 1990 Thomas Nelson), 56. 전자책(Perlego)에 표시된 인쇄 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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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Larkin, Ephesians,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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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Fowl, Ephesians,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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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Larkin, Ephesians,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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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Fowl, Ephesians, 5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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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Barth, Ephesians,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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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Larkin, Ephesians,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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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Larkin, Ephesians,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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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Barth, Ephesians, 149-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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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Fowl, Ephesians,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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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Larkin, Ephesians,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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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Larkin, Ephesians,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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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Fowl, Ephesians, 58-59; Lincoln, Ephesians, 5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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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Larkin, Ephesians,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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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Fowl, Ephesians,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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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Larkin, Ephesians,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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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Larkin, Ephesians,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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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SBLGNT, 엡 1:20, ἐνήργηκεν; Larkin, Ephesians, 23, ἐνήργησεν. 두 자료의 동사 형태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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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Fowl, Ephesians,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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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SBLGNT, 엡 2:5-6; Fowl, Ephesians,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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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Lincoln, Ephesians, 6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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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Larkin, Ephesians,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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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Fowl, Ephesians, 6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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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Fowl, Ephesians,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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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Fowl, Ephesians, 62. 시 8:6은 칠십인역 시 8:7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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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Larkin, Ephesians,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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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Fowl, Ephesians, 6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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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Fowl, Ephesians, 6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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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Larkin, Ephesians, 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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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Larkin, Ephesians, 26. 수동태를 택하는 해석은 τὰ πάντα를 직접목적어로 읽지 않고 부사적인 대격으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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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Barth, Ephesians, 157-159, 205-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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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Lincoln, Ephesians, 75-78. 명사 πλήρωμα의 수동적인 뜻과 분사 πληρουμένου의 중간태 해석을 구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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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Fowl, Ephesians, 63-64. 그가 인용하는 Gregory W. Dawes의 논거는 이 주석의 소개를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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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Fowl, Ephesians, 6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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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Barth, Ephesians, 206-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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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Lionel J. Windsor, “Corporate Metaphors in Ephesians 2 as Models for Pluralistic Reconciliation: Body, Human, Temple,” Biblical Research 68 (2023): 74-93, 여기서는 79-81. 저자가 공개한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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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크리소스토무스, 『에베소서 강해』 3, 엡 1:17 해설. 고전 2:14와 성령이 하나님의 깊은 것을 아신다는 논증을 연결한다. 공개 NPNF 영어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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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 같은 글, 엡 1:20-22 해설과 권면 도입부. 말씀 자체와 그분이 취하신 인성의 높임을 구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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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같은 글, 엡 1:23 해설. 여러 지체가 모여 몸을 이루고, 그 몸과 머리가 함께 완성된다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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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오스, 『신학강론』 30.8. 같은 그리스도의 두 본성에 하나님과 아버지라는 호칭을 각각 연결한다. 공개 NPNF 영어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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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Fowl, Ephesians, 61-62. 골 1:15-16을 연결하여 피조된 권세들과 아들을 구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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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SBLGNT, 엡 4:10; 골 1:16-17; 요 1:1-3. 관련 본문별 연구는 골로새서 1:12-20, 요한복음 1:1-18에서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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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 이 문단은 엡 4:6의 한 하나님, 골 1:16-17의 창조와 유지, 요 1:1-3의 말씀의 신성을 연결한 필자의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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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 SBLGNT, 고전 2:10-11. 성령의 계시를 이 본문에 연결하는 수용은 크리소스토무스, 『에베소서 강해』 3의 1:17 해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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