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은혜와 평화를 기원한 뒤, 하나님을 찬양한다. 저자는 하나님이 주신 복을 선택과 자녀 됨, 죄의 용서, 뜻의 계시, 유업과 성령의 인침으로 설명한다. 그 복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다.

3-14절의 헬라어는 길게 이어지는 하나의 찬양문이다. 라킨은 영광을 찬양한다는 반복을 따라 아버지의 선택, 그리스도 안의 구원, 성령의 인침이라는 세 부분으로 설명한다.1 링컨은 삼위적 요소를 인정하면서도 하나님의 뜻과 영광,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라는 반복이 더 뚜렷하다고 읽는다.2 세 분의 관계는 이 반복과 구원받는 사람들의 삶 안에서 구체적으로 서술된다.

3절: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자 아버지를 찬양함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자 아버지를 찬양합니다. 그분은 하늘의 영역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 모든 영적인 복을 주셨습니다.” (3절, 필자 번역)3

찬양받으실이라는 에울로게토스(εὐλογητός), 복을 주셨다는 에울로게사스(εὐλογήσας), 복이라는 에울로기아(εὐλογία)가 한 문장에서 반복된다. 바르트는 같은 어근이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과 하나님이 주시는 복에 쓰였다고 설명한다.4 하나님이 복을 주셨기에 교회가 그분을 찬양한다.

하나님과 아버지는 같은 분을 가리킨다. 라킨은 뒤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라는 속격이 두 명사에 모두 관계한다고 읽는다.5 이 표현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구별하면서 그분을 예수의 하나님이자 아버지로 부른다. 아버지라는 이름에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명시된다.

영적인이라는 프뉴마티케(πνευματικῇ)를 스티븐 파울(Stephen E. Fowl)은 성령의 사역에 속한 복이라는 뜻으로 읽는다.6 하늘의 영역은 그리스도가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신 곳이면서 권세들이 활동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파울은 이 복을 그리스도의 구원이 이루어진 천상적 관계에서 설명한다.7 그 복을 받은 교인들은 여전히 땅에서 살아가며,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그것을 누린다.

바르트는 3절의 복을 여러 부분으로 쪼갤 수 없는 전체로 읽는다. 선택과 구속, 성령의 선물은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같은 복의 여러 내용이라는 설명이다.8 아버지는 그리스도 안에서 교인들에게 복을 주시며, 교인들은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그 복을 누린다.

4절: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심

“그분은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여, 우리가 그분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이 살게 하셨습니다.” (4절)

선택하셨다는 엑셀렉사토(ἐξελέξατο)의 주어는 앞의 하나님이다. 선택의 대상은 복수인 우리이며, 그 선택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다. 라킨은 이 표현을 선재하신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이루어진 선택으로 읽는다.9

창세 전이라는 시간 표현은 하나님의 선택에 붙는다. 링컨은 그리스도의 선재와 그분 안의 선택이 연결되었을 개연성을 인정하면서, 창세 전에 있었던 것은 교회의 실재보다 교회를 택하신 하나님의 결정이라고 설명한다.10 신자들이 세상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설명과 하나님의 선택이 창세 전이라는 진술은 다르다.

그 선택에는 목적이 있다. 거룩하고 흠 없이 그분 앞에 서는 삶이다. 파울은 이 표현을 이스라엘을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신 선택과 연결하며,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이방인들도 그 부름에 참여한다고 읽는다.11 선택은 하나님이 사람들을 어떤 삶으로 부르셨는지를 함께 설명한다.

4절 끝의 사랑 안에서라는 말은 다음 절의 예정에 연결될 수도 있다. 라킨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라는 문맥을 따라 뒤의 예정에 연결한다.12 파울은 거룩한 삶의 사랑과 예정의 원인인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 읽힐 수 있다고 본다.13 위 번역은 그 말을 5절의 하나님이 사랑으로 예정하신 일에 연결했다.

5-6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녀로 받아들이심

“그분은 사랑으로, 자기 뜻의 기쁨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자기 자녀로 받아들이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그분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양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분은 사랑받는 분 안에서 우리에게 그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5-6절)

미리 정하셨다는 프로오리사스(προορίσας)는 앞의 선택을 설명하는 분사다. 선택과 예정은 같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일이다. 라킨은 자녀로 받아들임을 구원과 유업의 관계를 표현하는 말로 읽는다.14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의 자녀가 되며, 뒤에서 그 자녀들이 받을 유업이 나온다.

파울은 로마의 입양에서 이전 가정의 권한과 관계를 떠나 새 아버지의 가정에 속하게 되는 배경을 읽는다.15 이 비유에서 교인들은 새로운 소속과 삶을 받는다. 그들에게 주어진 자녀의 지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사랑받는 분이라는 표현은 완료 수동분사(ἠγαπημένῳ)를 명사처럼 사용한 것이다. 라킨은 사랑하시는 행위의 주체를 아버지로 읽으며, 일부 서방 본문에 그분의 아들이라는 설명이 추가되었다고 기록한다.16 SBLGNT의 6절에는 아들이라는 명사가 직접 나오지 않는다. 사랑받는 분은 앞에서 아버지와의 관계가 밝혀진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 자녀 됨의 목적은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이다. 파울은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이 찬양의 목적이기도 하다고 읽는다.17 하나님이 기뻐하신 뜻은 교회가 그분의 은혜를 누리고 찬양하는 삶으로 나타난다.

7-8절: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구속과 넘치는 은혜

“그분 안에서 우리는 그분의 피를 통하여 구속, 곧 죄의 용서를 누립니다. 이는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의 풍성함을 따른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그 은혜를 넘치도록 베푸셨습니다.” (7-8절 앞부분)

사랑받는 분 안에서라는 말이 그분 안에서라는 관계대명사로 이어진다. 구속은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주어졌다. 라킨은 피를 폭력적인 죽음을 표현하는 말로 읽고, 죄의 용서를 구속의 구체적인 내용으로 설명한다.18 교인들이 누리는 해방은 그리스도의 실제 죽음과 연결된다.

우리가 누린다는 에코멘(ἔχομεν)은 현재형이다. 바르트는 창세 전의 선택에서 십자가의 사건으로, 그리고 교회가 지금 누리는 구원으로 서술이 이어진다고 읽는다.19 하나님의 결정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거쳐 현재의 교회에 이루어졌다.

같은 절의 두 그분은 지시 대상이 다르다. 그분의 피는 그리스도의 피이며, 그분의 은혜는 문맥에서 아버지의 은혜다. 라킨은 6절과 8절에서 은혜를 베푸시는 주어가 하나님이므로 이 은혜도 아버지에게 돌린다.20 아들의 죽음과 아버지의 은혜는 교인들을 구속하는 같은 사건에 연결된다.

8절 끝-9절: 자기 뜻의 비밀을 알리심

“그분은 모든 지혜와 분별로 자기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정하신 그분의 기쁜 뜻을 따른 것입니다.” (8절 끝-9절)

지혜와 분별이라는 말이 무엇을 설명하는지에는 차이가 있다. 라킨은 이 구문을 하나님이 비밀을 알리시는 행위에 연결하여, 하나님이 지혜롭게 알리셨다는 뜻으로 읽는다.21 파울은 교인들에게 주어진 지혜와 실제 삶의 분별로 읽으며,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게 한다고 설명한다.22 위 번역은 라킨이 제시한 문장 연결을 따른다.

비밀의 내용은 다음 절에서 밝혀진다. 하나님이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모으시는 뜻이다. 파울은 이 비밀이 그리스도 안의 구속과 유대인 및 이방인이 한 몸이 되는 일을 포함한다고 읽는다.23 은혜를 받은 교회는 하나님이 무엇을 이루고 계시는지도 알게 된다.

10절: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모으심

“이는 때들이 충만해질 때에 그 뜻을 실행하여,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곧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모으시려는 것입니다.” (10절)

오이코노미아(οἰκονομία)는 관리하고 맡은 일을 수행하는 활동을 표현한다. 라킨은 여기서 고정된 계획 자체보다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는 활동을 읽는다.24 바르트는 그 활동을 그리스도에게 맡겨진 관리와 통치의 사역으로 읽는다.25 두 해석 모두 하나님의 뜻이 역사와 창조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설명한다.

하나로 모으다라는 아나케팔라이오사스타이(ἀνακεφαλαιώσασθαι)는 여러 내용을 하나의 총괄로 묶는 말이다. 라킨은 이것을 구원의 목적을 밝히는 절정의 진술로 읽는다.26 바르트는 한데 모음과 한 머리의 통치를 연결하여, 그리스도의 통치로 분열과 적대가 해소되는 관계로 설명한다.27 만물의 범위에는 교회 밖의 하늘과 땅도 포함된다.

이 통일의 시점에는 해석이 갈린다. 링컨은 그리스도의 높임과 교회의 일치에서 이미 실현된 우주적 총괄을 강조하면서도 미래의 완성을 유지한다.28 반 아르더는 그리스도의 현재 주권과 아직 진행 중인 만물의 통일을 구별하며, 교회를 그 통일이 나타나고 복음으로 참여하는 공동체로 읽는다.29

이 찬양문은 현재 누리는 구속과 미래의 완성을 함께 서술한다. 7절에서는 죄의 용서를 이미 누리고, 14절에서는 유업의 보증을 받는다. 그리스도 안의 구원이 지금 교회의 삶을 이루면서 하늘과 땅의 완전한 일치를 향한다. 때들의 충만은 그 전체 목적과 연결된다.

11-12절: 유업을 받은 우리와 먼저 둔 소망

“그분 안에서 우리도 유업의 몫을 받았습니다. 자기 뜻의 결정에 따라 만물을 이루시는 분의 목적을 따라 우리가 미리 정해졌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미 그리스도께 소망을 둔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찬양하며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11-12절)

엑레로테멘(ἐκληρώθημεν)은 몫을 배정받는 것과 하나님의 소유로 선택되는 것으로 읽혀 왔다. 라킨은 교인들이 유업을 받았다는 뜻을 택한다.30 바르트는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차지하셨다는 뜻을 선호한다.31 유업을 받는 백성과 하나님의 소유인 백성이라는 관계가 이 두 읽기에 각각 강조된다.

만물을 이루시는 분은 앞의 목적과 뜻의 주체인 하나님이다. 그의 목적을 따라 교인들은 유업에 참여한다. 11절의 하나님의 뜻과 활동은 9-10절에도 이어졌던 주어를 유지한다. 그리스도를 집중적으로 말하는 구간에서도 아버지의 선택과 실행이 계속 서술된다.

먼저 소망을 둔 우리와 13절의 여러분에도 해석의 차이가 있다. 바르트는 우리를 유대인 신자들, 여러분을 이방인 신자들로 읽는다.32 반 아르더도 먼저 유대인이, 이어 이방인이 같은 구원에 들어오는 관계로 설명한다.33 이 해석에서 14절의 우리의 유업은 두 집단이 함께 누리는 것이 된다.

라킨은 우리를 모든 신자들로 읽고, 여러분을 편지의 수신자에게 초점을 좁히는 말로 설명한다.34 링컨도 같은 읽기를 택하며, 소망을 먼저 두었다는 말에서 이미 그리스도께 소망을 둔 신자들의 상태를 강조한다.35 본문은 우리의 복과 여러분의 인침을 같은 우리의 유업에 연결한다. 수신자들도 같은 성령을 받아 그 유업을 누리는 이들이다.

13절: 복음을 듣고 믿어 약속된 성령으로 인침받음

“그분 안에서 여러분도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어, 약속된 성령으로 인침을 받았습니다.” (13절)

하나님이 목적하신 구원은 복음이 전해지고 사람들이 듣고 믿는 사건으로 그들에게 이루어진다. 엔 호(ἐν ᾧ), 곧 그분 안에서라는 구문이 두 번 반복되어 그리스도와 인침의 관계를 강조한다. 라킨은 하나님을 생략된 행위 주체로 읽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인치신다고 설명한다.36

믿었다는 분사와 인침받았다는 동사의 시간 관계도 중요하다. 링컨은 이 문맥에서 믿음과 인침을 같은 때의 사건으로 읽는다.37 그의 해석에서 믿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인 이들은 성령을 받아 하나님께 속한 사람으로 드러난다. 문서나 소유물에 찍는 인장처럼, 인침은 소속과 보존을 표현한다.

약속된 성령은 성령이 앞으로 어떤 약속을 한다는 뜻보다 하나님이 보내기로 약속하신 성령으로 읽힌다. 링컨은 이를 성경에서 약속된 성령이라는 셈어적 표현으로 설명한다.38 파울도 예언자들과 예수의 성령 약속에 연결한다.39 성령의 현재 임재는 하나님이 하신 약속이 교회에 이루어진 사건이다.

인침의 선물은 성령 자신이다. 교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속하게 되고, 성령을 받음으로 그 소속을 지금 누린다. 이 관계에서 아버지, 그리스도, 성령은 구별되며 같은 구원 사건에 함께 관계한다.

14절: 성령 자신이 유업의 보증이 되심

“이 성령은 우리 유업의 보증이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온전히 구속하시고 그분의 영광이 찬양받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4절)

아르라본(ἀρραβών)은 계약의 첫 지불금이나 보증을 가리키는 말이다. 링컨은 성령이 장차 올 구원을 현재에 미리 누리는 첫 몫이며 전체 구원이 이루어질 보증이라고 읽는다.40 성령이 별도의 물건을 보증으로 주셨다는 진술보다, 성령 자신을 그 보증으로 부른다.

본문에는 지금과 장래가 함께 있다. 성령은 지금 주어졌고, 유업은 완성을 향한다. 파울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한 구속을 끝까지 이루실 신실하심의 약속으로 이 비유를 읽는다.41 현재의 성령과 장래의 완전한 구속을 잇는 비유다.

하나님이 자기 소유로 삼으신 백성의 구속은 11절의 유업과 연결된다. 라킨은 이 구속을 성령으로 인치신 행위의 목적이라고 읽는다.42 파울은 이미 하나님에게 속한 백성이 완전히 구속되는 관계로 설명한다.43 교회가 받은 유업과 하나님께 속한 소속은 함께 드러난다.

14절의 관계대명사는 SBLGNT에서 중성형 ὅ이며, 바르트가 사용하는 본문은 남성형 ὅς다. 바르트는 두 형태 모두 앞의 성령을 가리킨다고 설명한다.44 라킨은 중성형이 선행사인 프뉴마(πνεῦμα)의 성별과 일치하고, 남성형은 뒤의 술어 명사 아르라본의 성별에 끌렸다고 설명될 수 있음을 밝힌다.45 이 이문은 그 문장의 대상을 그리스도와 성령 가운데 어떻게 식별할지에 관계된다.

마지막도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목적에 이른다. 아버지의 은혜,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 성령의 선물이 교회의 찬양에 함께 놓인다. 교인들은 같은 성령을 받았으며, 같은 유업을 기다리는 백성으로 하나님을 찬양한다.

교부들의 해석

크리소스토무스: 성육신한 주님의 하나님과 말씀의 아버지

크리소스토무스는 『에베소서 강해』 1에서 하나님이자 아버지를, 사람이 되신 분의 하나님이며 하나님이신 말씀의 아버지라는 관계로 설명한다.46 같은 예수에게 인성과 신성에 관한 관계를 함께 적용하는 해석이다.

5절에서는 아버지가 예정하시고 그리스도가 사람들을 하나님 가까이 이끄신다고 읽는다. 그리스도는 피조된 종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독생자로서 이 일을 행하신다는 설명이다.47 아버지와 아들의 행위는 구별되며 하나의 자녀 됨을 이룬다.

2강해에서는 성령의 약속을 예언자들의 말씀과 아들이 하신 약속에 연결한다. 성령을 받은 삶은 장래의 구원을 미리 맛보는 경험이며, 아들의 피와 성령은 하나님이 평화와 구원을 보증하시는 선물이라고 읽는다.48 그의 설명은 현재의 성령과 미래의 완성을 같은 하나님의 약속에 놓는다.

암브로시우스: 인침의 주체와 성령의 신적 본성

암브로시우스는 『성령론』 1.6.78-80에서 에베소서 1:13-14를 고린도후서 1:21-22에 연결한다. 인치시는 분은 하나님이며 성령이 보증이다.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형상과 생명에 참여한다는 설명이다.49

1.5.75에서는 피조물들이 성령의 은혜를 받는 반면 성령은 그 은혜를 주시는 분이라는 구별을 사용한다. 그가 아버지와 아들에 성령을 함께 놓는 이유에는 이 성화의 근원이 되는 지위가 있다.50 이 논증은 같은 목적에 참여하는 일을 성령의 신적 본성과 연결한다.

그는 물과 피와 성령이 하나라는 다른 진술도 다루지만, 그것은 같은 구원의 사건에 속한다는 뜻이고 세 대상의 본성이 같다는 뜻은 아니라고 설명한다.51 따라서 세 이름의 병렬이나 하나의 목적만이 그의 동일 본질 논증은 아니다. 성령이 피조물에게 생명과 거룩함을 주시는 분이라는 판단이 그 논증에 함께 쓰인다.

세 분의 관계와 동일 본질의 근거

이 찬양문은 아버지를 구원의 결정과 선물의 주체로 서술한다. 그리스도는 아버지가 사랑하시는 분이며, 사람들이 그분을 통하여 자녀가 되고 그분의 피로 구속된다. 성령은 약속되어 주어지는 분이며, 현재의 교회가 미래의 완성을 누리도록 보증이 되신다. 세 분은 구원의 관계에서 식별된다.

아버지, 그리스도, 성령에게 각각 몇 절씩을 배정하면 주요 초점은 드러난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과 은혜는 7-12절에도 계속 서술되고,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은 선택부터 성령의 인침까지 이어진다. 13절에서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인치신다. 이 구원은 세 분이 나누어 맡은 서로 독립된 구원들을 모은 결과보다, 서로 관계하며 이루시는 하나의 구원으로 설명된다.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도 이 관계 안에서 평가된다. 아버지의 선택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고, 만물은 그리스도 안의 일치를 향한다. 신자들은 자녀의 지위를 받으며, 그리스도는 그 자녀 됨을 매개하는 사랑받는 분이다. 이 단락에서 신자들의 자녀 됨과 그리스도가 아버지와 맺는 관계는 같은 방식으로 서술되지 않는다.

성령은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이들에게 주신 분이며, 자신이 그 유업의 보증이 되신다. 이 서신의 4:30에서는 바로 그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하며 구속의 날을 다시 언급한다. 인침의 관계는 교인들과 관계를 맺는 성령의 사역으로 이어진다.

동일 본질의 판단에는 이 관계와 함께 아들과 성령의 신적 지위를 설명하는 근거가 필요하다. 암브로시우스도 같은 사건에서 작용하는 물과 피에 성령을 연결했다고 해서 본성이 같다고 읽지 않았다. 그는 성령이 성화의 근원이며 피조물이 그분에게서 은혜를 받는다고 논한다. 그 관계에서 성령을 아버지와 아들에 속한 신적 사역의 주체로 읽었다.52

신약의 다른 진술은 이 판단의 내용을 구체화한다. 요한복음 1:1-3은 말씀을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다고 말한다.53 고린도전서 3:16-17은 성령이 교회에 거하시는 일을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관계로 설명한다.54 사도행전 5:3-4에서는 성령을 속인 일이 하나님을 속인 것으로 서술된다.55 아들과 성령을 하나님 자신의 창조와 임재에 속한 분들로 읽는 근거들이다.

이 근거들을 에베소서의 구원 관계와 함께 읽으면, 아버지가 외부의 피조된 두 보조자에게 구원을 맡기신다는 설명보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한 하나님의 신적 생명과 활동을 공유한다는 설명이 잘 맞는다. 아버지는 그리스도를 사랑하시는 분이며, 그리스도는 그 사랑받는 아들이다.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의 자녀로 받아들여진다. 성령은 그 신자들에게 약속되어 주어지는 분으로 구별된다. 한 분의 이름만 바꾸어 부르는 설명도, 독립된 세 신이 같은 목적에 협력한다는 설명도 이 관계를 충분히 유지하지 못한다. 동일 본질은 구별되는 세 분이 하나이며 분할되지 않는 신성을 온전히 지니신다는 판단이다.

아버지가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교회는 죄의 용서를 누리고 성령을 받았다. 현재 주어진 성령은 그 백성이 장차 누릴 구속의 완성을 보증하신다. 교인들은 같은 구원 안에서 그리스도께 소망을 두며 지금 받은 은혜를 함께 찬양한다.

각주와 자료

  1. William J. Larkin, Ephesians: A Handbook on the Greek Text, Baylor Handbook on the Greek New Testament (Waco: Baylor University Press, 2009), 5, 11,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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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Andrew T. Lincoln, Ephesians, Word Biblical Commentary 42 (Zondervan, November 2017 ePub edition; © 1990 Thomas Nelson), 15-16, 43. Perlego 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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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SBLGNT, 에베소서 1:1-23. 고정 판본의 에베소서. 성경 인용은 필자 번역이며, 4절 끝의 사랑 안에서를 5절에, 8절 끝의 지혜와 분별을 9절에 연결했다. © 2010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and Logos Bible Software, CC BY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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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Markus Barth, Ephesians: Introduction, Translation, and Commentary on Chapters 1-3, Anchor Yale Bible 34 (New Haven and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2008; first published by Doubleday, 1974), 7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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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Larkin, Ephesians,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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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Stephen E. Fowl, Ephesians: A Commentary, New Testament Library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12),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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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Fowl, Ephesians, 3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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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Barth, Ephesians 1-3,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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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Larkin, Ephesians,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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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Lincoln, Ephesians, 22-24. 그는 그리스도의 선재와 선택의 연결을 개연적 해석으로 제시하며,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상적으로 선재한다고 설명한 대상은 교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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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Fowl, Ephesians, 3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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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Larkin, Ephesians,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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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Fowl, Ephesians,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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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Larkin, Ephesians,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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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Fowl, Ephesians, 41-42. 그가 인용한 로마 입양법 자료들의 원전을 별도로 읽은 인용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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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Larkin, Ephesians, 9. 그리스도의 아들 호칭을 설명하는 서방 본문의 추가에 관한 기록을 사용했으며, 해당 사본들을 독립적으로 대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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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Fowl, Ephesians, 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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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Larkin, Ephesians,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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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Barth, Ephesians 1-3,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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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Larkin, Ephesians,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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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Larkin, Ephesians,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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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Fowl, Ephesians, 4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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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Fowl, Ephesians,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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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Larkin, Ephesians,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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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Barth, Ephesians 1-3, 8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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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Larkin, Ephesians,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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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Barth, Ephesians 1-3, 8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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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Lincoln, Ephesians, 3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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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Timothy van Aarde, “The Use of οἰκονομία for the Missional Plan and Purpose of God in Ephesians 1:3-14,” Missionalia 43, no. 1 (2015): 45-62, 특히 50-55. 출판사 레코드, 공개 원문. DOI: 10.7832/43-1-43. 50쪽에서 부정과거 부정사 자체에 부여한 계속 진행 중이라는 의미는 그 동사형의 문법적 의미와 다르다. 인용한 내용은 그의 문맥적 통일 과정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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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Larkin, Ephesians,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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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Barth, Ephesians 1-3, 9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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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Barth, Ephesians 1-3, 9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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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Van Aarde, “The Use of οἰκονομία,” 5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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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Larkin, Ephesians,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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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Lincoln, Ephesians, 3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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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Larkin, Ephesians,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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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Lincoln, Ephesians, 3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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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Lincoln, Ephesians,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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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Fowl, Ephesians,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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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Lincoln, Ephesians, 4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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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Fowl, Ephesians, 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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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Larkin, Ephesians,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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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Fowl, Ephesians,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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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Barth, Ephesians 1-3, 9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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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Larkin, Ephesians,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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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 John Chrysostom, Homilies on Ephesians 1, 1:3의 하나님과 아버지 해설, 공개 영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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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Chrysostom, Homilies on Ephesians 1, 1:4-5의 아버지와 그리스도, 독생자와 자녀 됨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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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 Chrysostom, Homilies on Ephesians 2, 1:13-14의 약속과 성령, 보증과 미래의 구원 해설, 공개 영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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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Ambrose, On the Holy Spirit 1.6.78-80, 공개 영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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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Ambrose, On the Holy Spirit 1.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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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 Ambrose, On the Holy Spirit 1.6.7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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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 Ambrose, On the Holy Spirit 1.5.75; 1.6.7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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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 SBLGNT, 요한복음 1:1-3, 14. 같은 고정 판본에서 대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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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 SBLGNT, 고린도전서 3: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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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 SBLGNT, 사도행전 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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