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약속에 따른 상속자라고 말했다(3:29). 4장의 처음에는 아직 자기 몫을 행사할 수 없는 어린 상속자가 나온다. 그가 관리인 아래에 있는 기간은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다. 바울은 이 비유를 가져와 하나님의 구원이 언제 어떻게 사람들에게 이르렀는지 설명한다.1

4절 상반: 때가 차자 아들을 보내심

“그러나 때가 차자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4절 상반, 필자 번역)2

때가 찼다는 선언은 앞의 아버지가 정한 때에 대응한다. 마틴은 이 표현에서 인간 사회가 점차 성숙하여 구원을 받을 만해졌다는 뜻보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종살이를 끝내셨다는 뜻을 읽는다.3 3절이 묘사한 사람들의 처지는 종살이였고, 4절의 변화는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신 데서 시작한다.

보내신다는 동사의 주어는 하나님이고 목적어는 자기 아들이다. 바울은 아들이 하나님의 계획과 무관하게 세상에 들어오셨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 아들의 오심에 이루어진다. 마틴은 이 보내심을 하나님의 구원이 인간 세계 바깥에서 이 세계에 들어온 사건으로 설명한다.4

이 아들과 신자들의 관계에는 차이가 있다.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셨고, 신자들은 그 아들을 통해 자녀의 지위를 받는다. 바울이 같은 아들 호칭을 쓴다고 해서 모든 아들이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의 아들인 것은 아니다. 3:26-29에서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입고 그분께 속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이며 상속자다.

4절 하반: 여자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에 계심

“그 아들은 여자에게서 태어나셨고 율법 아래에 계셨습니다.” (4절 하반)

여자에게서 태어나셨다는 말은 아들의 실제 인성을 가리킨다. 마틴은 이 표현을 욥기 14:1과 마태복음 11:11의 사람을 일컫는 용례에 연결한다.5 이 문장은 어머니의 이름이나 출생 과정의 세부를 설명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이 인간의 태어남과 삶을 겪으셨다는 사실이 강조된다.

율법 아래에 계셨다는 말은 예수의 유대인 삶과 관련된다. 마틴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율법을 종살이하게 하는 세상의 요소 가운데 하나로 읽고 모든 사람이 붙들린 지배에 아들이 들어오셨다고 설명한다.6 이 해석은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공통된 해방을 강조한다. 율법 아래의 삶이라는 구체적인 표현은 예수가 이스라엘의 율법에 따른 삶을 실제로 사셨다는 사실도 포함한다.

더 부르는 두 분사절을 아들의 실제 인성과 인류의 종살이에 참여하신 표현으로 읽는다.7 여자에게서 태어나셨다는 말에 동정녀 탄생의 과정까지 담겨 있다고 설명하지는 않는다. 두 표현은 아들이 구원할 사람들의 처지에 참여하셨다는 점에서 연결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분이 율법 아래에서 사셨다. 그 보내심은 사람들의 사정과 동떨어진 방문이 아니라 그들의 삶에 들어온 사건이다.

5절: 속량하여 자녀의 지위를 받게 하심

“이는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속량하시고, 우리가 자녀로 받아들여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5절)

엑사고라조(ἐξαγοράζω)는 값을 치르고 풀어 주는 속량을 표현한다. 바울은 같은 동사를 3:13에서 그리스도가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는 진술에 썼다. 마틴은 4:4-5의 보내심과 3:13-14의 십자가를 같은 구원을 전하는 두 설명으로 읽는다.8 율법 아래에 들어온 아들은 그 아래에 붙들린 사람들을 풀어 주신다.

문장에는 목적을 나타내는 히나(ἵνα)가 두 번 나온다. 속량과 입양은 서로 이어진다. 마틴은 하나님이 사람들을 종살이에서 풀어 자기 가정에 받아들이신다고 설명한다.9 바울의 해방은 주인을 떠난 사람이 혼자 살아가는 상태로 끝나지 않는다. 그 사람에게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가 주어진다.

휘오테시아(υἱοθεσία)는 자녀의 지위를 받는 입양을 뜻한다. 앞의 어린 상속자는 이미 가정의 아들이었다. 여기서는 실제로 종살이하던 사람들이 자녀로 받아들여진다. 마틴은 바울이 이 대목에서 첫 비유의 범위를 넓힌다고 지적한다.10 브래들리 트릭은 입양을 헬레니즘의 법률 용어로 읽는다. 그는 갈라디아서의 구체적인 표현에 출애굽이나 다윗 언약을 가리키는 연결이 약하다는 이유로 헬라 및 로마 사회의 가족과 상속을 더 가까운 배경으로 택한다.11 신자들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본래 아들이었으나 성인이 될 때만 기다렸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들의 구원으로 그들에게 자녀의 지위가 주어진다.

6절 상반: 우리 마음에 아들의 영을 보내심

“여러분이 자녀이므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에 보내셨습니다.” (6절 상반)

4절의 보내셨다는 동사가 같은 형태로 되풀이된다. 하나님이 보내신 대상은 이번에는 자기 아들의 영이다. 아들과 아들의 영은 각각 보내심의 대상이며, 두 보내심은 자녀의 관계에 함께 관여한다.

더 부르는 여러분이 자녀이므로라는 구문을 신자들이 먼저 자녀의 자격을 성취해야 성령을 받을 수 있다는 시간표로 읽지 않는다. 3:1-5에서 바울이 확인한 성령의 경험이 그들의 자녀 됨을 증명한다는 설명이다.12 아들의 구원과 성령의 선물은 그들이 이미 받은 같은 구원에 속한다.

여러분은 자녀이고 성령은 우리 마음에 보내졌다. SBLGNT의 본문은 이 인칭 변화를 그대로 가진다.13 마틴은 바울이 이방인 갈라디아 신자들과 자신을 같은 자녀의 공동체로 묶는 표현이라고 읽는다.14 사도가 받은 성령과 갈라디아인들이 받은 성령은 다른 신분에 따른 두 종류의 영이 아니다.

마틴은 이 성령을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자기 영과 구별한다. 바울이 말하는 영은 하나님의 아들에게 속한 영이며, 신자들이 그 아들의 가족으로 받아들여진 관계를 확증한다.15 성령은 하나님이 그 마음에 보내신 분이다. 더 부르는 성령을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아들의 계속되는 현존과 활동을 표현하는 다른 이름으로 읽으며, 두 보내심을 엄격하게 차례를 나눈 사건보다 같은 구원의 활동으로 연결한다.16 이 해설은 성령과 그리스도의 활동이 신자의 삶에서 얼마나 가까운지를 강조한다.

6절 하반: 아바, 아버지라고 외치시는 영

“그 영은 아바, 아버지라고 외치십니다.” (6절 하반)

외치신다는 크라존(κρᾶζον)은 중성 단수이며, 중성 단수인 영을 수식한다. 이 구절에서 외침의 문법적인 주체는 아들의 영이다. 마틴은 성령이 신자들의 입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신다고 설명한다.17 사람이 기도하는 일과 성령이 그 기도를 일으키시는 일이 같은 외침에 있다.

로마서 8:15에서는 신자들이 성령 안에서 아바, 아버지라고 외친다. 여기서는 성령 자신이 외치신다. 두 표현을 함께 읽으면 성령이 사람의 기도를 대신하여 사람을 침묵시키는 뜻보다, 그 사람이 아들의 아버지를 자기 아버지로 부르도록 하시는 뜻이 분명해진다. 자녀로 받아들여진 사람의 부름에는 아들의 영이 활동하신다.

아바는 아람어이고, 호 파테르(ὁ πατήρ)는 그에 대응하는 헬라어 부름이다. 마틴은 헬라어를 쓰는 공동체에도 아람어 부름이 남아 있는 예배의 언어로 설명한다.18 바울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신자들의 실제 기도를 자녀 됨의 근거로 제시한다.

7절: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자녀와 상속자

“그러므로 당신은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자녀라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7절)

바울은 복수형 여러분에서 단수형 당신으로 바꾼다. 공동체에 말한 자녀의 관계가 각 사람에게 적용된다. 하나님의 구원은 그 공동체 안의 한 사람에게도 종살이를 끝내고 상속자의 지위를 준다.

마지막 구문은 디아 테우(διὰ θεοῦ), 하나님으로 말미암아라는 형태다. 마틴은 하나님이 입양하신 행위가 상속의 근거라고 읽는다.19 3:29의 아브라함의 약속에 따른 상속과 4:7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상속은 같은 논증의 시작과 끝을 이룬다. 그 지위는 신자가 율법 관습을 더 받아들여 얻어 낼 자격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교부들의 해석

크리소스토무스는 『갈라디아서 강해』 4의 4-5절 해설에서 성육신의 두 결과를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되는 일과 자녀의 지위를 받는 일로 설명한다. 6-7절에서는 그리스도를 입는 일과 입양의 성령을 받는 일이 자녀 됨을 확증한다고 읽는다.20 아들의 구원과 성령의 선물이 같은 가족 관계를 이루는 해석이다.

아타나시우스는 『아리우스파 반박』 II.59에서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에게 은혜로 아버지가 되신다고 설명한다. 사람들은 참되고 본래적인 아들의 영을 받아 자녀가 된다. 그는 II.61에서 사람이 은혜로 자녀가 되는 것과 말씀이 인간의 몸을 입으신 것을 함께 설명한다.21 사람에게 주어진 자녀의 호칭과 아들의 본래적인 관계는 서로 바뀌지 않는다.

이 논증에는 아들이 모든 피조물의 창조주라는 다른 본문들이 함께 사용된다. 아타나시우스는 같은 책 II.58-60에서 창조된 것의 시작과 태초부터 계신 말씀을 구별한다.22 갈라디아서의 입양 언어는 이미 확인한 그 구별 속에서, 신자들이 아들의 신성에 참여하는 선물을 받는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두 보내심과 동일 본질의 논증

마틴은 아들이 보내졌다는 동사 자체가 인격적인 선재를 반드시 함축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한다. 모세와 예언자들도 보내졌다. 그는 동시에 아들이 온 세상을 속량하도록 보내졌고 바울은 그 아들을 전하도록 보내졌다는 차이를 강조한다.23 더 부르도 이 동사를 구원의 사명을 맡기신 뜻으로 읽는다. 그는 선재와 조화를 이루는 읽기를 인정하면서 보내심 자체가 그 선재를 진술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한다.24 하나님의 아들은 사도보다 더 넓은 구원의 대상과 권한을 지니신다.

이 네 절에서 하나님, 아들, 아들의 영은 서로 다른 관계를 가진다. 하나님이 보내시고 아들이 사람들의 처지에 들어와 속량하며, 아들의 영이 그 마음에서 아버지를 부르신다. 보내심과 속량, 기도를 같은 인격이 모습을 바꾸어 수행한 것으로 읽으면 문장이 실제로 구별한 관계를 설명하기 어렵다.

반대로 서로 협력하는 여러 신으로 읽으면 모든 관계의 시작과 상속의 근거를 같은 하나님에게 두는 바울의 설명이 흐려진다. 아들의 영이 바로 그 아들의 아버지를 부르도록 하시고, 하나님이 그 사람을 자기 상속자로 받아들이신다. 신자들의 삶에서 누리는 것은 세 신에게 각각 받은 별도의 가족 관계가 아니다.

동일 본질을 논증하려면 그 관계를 아들과 성령의 신적 지위에 연결하게 된다. 앞선 창조 본문들은 아들을 피조물의 계열 밖에 두고, 고린도전서 2:10-11은 성령을 하나님의 자기 앎에 관계하시는 분으로 설명한다. 그 지위와 하나님의 유일성을 함께 읽을 때 아들과 성령에게 귀속된 구원은 한 하나님 자신의 생명과 앎을 사람들에게 주는 일이다. 세 분이 나뉘지 않는 하나의 신성을 지니신다는 설명은 이 연결을 표현한다.

입양은 신자와 하나님 사이의 차이도 설명한다. 아들의 영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만, 아들을 보내거나 같은 영을 나누어 주는 분으로 바뀌지 않는다. 아들은 자녀의 지위를 얻게 하시는 분이고, 사람들은 그분께 속하여 그 지위를 받는다. 같은 가족에 받아들여지는 선물과 신성을 본래 지니신 관계를 구별할 때, 자녀의 호칭 때문에 아들의 신적 지위를 모든 신자와 같은 수준으로 낮추는 문제가 풀린다.

바울이 갈라디아인들에게 확인해 주는 것은 그들이 이미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녀라는 사실이다. 그 아버지는 아들을 보내 종살이를 끝내셨고, 같은 아들의 영을 보내 그들의 기도를 이루신다. 그들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상속자이며 그 관계를 율법 관습으로 다시 사들일 이유가 없다.

각주와 자료

  1. J. Louis Martyn, Galatians: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Anchor Bible 33A (Doubleday, 1997; Logos의 Anchor Yale Bible 재판), 384-388. 실제 Logos 표제지는 Yale University Press, 판권은 1997 Doubleday와 2004년 첫 보급판을 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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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Michael W. Holmes 편, The Greek New Testament: SBL Edition (2010), 갈 4:4-7을 따른 필자 번역. 고정 커밋 본문. 6절의 ἡμῶν과 7절의 διὰ θεοῦ를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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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Martyn, Galatians, 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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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Martyn, Galatians, 388-389, 407-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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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Martyn, Galatians, 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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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Martyn, Galatians, 390, 401-406. 요소를 대립하는 종교적 구분으로 읽는 마틴의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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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Martinus C. de Boer, Galatians: A Commentary, New Testament Library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11), Perlego 전자책 쪽수 표지 263-264, “4:1-7 The True Heirs of the Promise,” [4-5] 해설. 실제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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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Martyn, Galatians, 390, 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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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Martyn, Galatians, 385-387, 390-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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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Martyn, Galatians, 386, 390-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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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Bradley R. Trick, Sons, Seed, and Children of Promise in Galatians: Discerning the Coherence in Paul’s Model of Abrahamic Descent (PhD diss., Duke University, 2010), 255-259, §3.2.3. 고든컨웰 도서관에서 연결된 DTL / ProQuest 실제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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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de Boer, Galatians, 전자책 쪽수 표지 265, [6-7]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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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SBLGNT, 갈 4:6. 마틴도 우리 마음과 여러분의 마음이라는 이문을 논한다. Martyn, Galatians, 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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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Martyn, Galatians, 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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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Martyn, Galatians, 387, 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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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de Boer, Galatians, 전자책 쪽수 표지 266, [6-7]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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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Martyn, Galatians, 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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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Martyn, Galatians, 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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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Martyn, Galatians, 387, 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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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크리소스토무스, 『갈라디아서 강해』 4, 4-7절 해설, 공개 NPNF 영어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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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아타나시우스, 『아리우스파 반박』 II.59, 61, 공개 NPNF 영어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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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아타나시우스, 『아리우스파 반박』 II.58-60, 위 공개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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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Martyn, Galatians, 406-408. 인격적 선재를 인정하는 읽기와 선재 없이 읽을 가능성을 모두 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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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de Boer, Galatians, 전자책 쪽수 표지 263, [4-5]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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