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제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고후 13:13, 필자 번역)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이 축복으로 마친다. 오늘날에도 예배에서 익숙하게 듣는 문장이지만, 편지 속에서는 갈등을 겪은 교회에 보내는 마지막 기원이다. 바울은 이 공동체에 필요한 선물을 그리스도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 성령의 교제로 함께 말한다. 이 세 분이 교회를 위해 어떤 관계에 있는지 읽는 데서 이 구절의 삼위일체적 의미를 살필 수 있다. 영어 성경 여러 번역에서는 같은 구절을 13:14로 표기한다.

갈등을 겪은 교회를 위한 축복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서 바울은 자신의 권한이 교회를 무너뜨리기보다 세우기 위해 주어진 것이라고 설명한다(13:10). 그는 회복과 일치와 평화를 권하고, 사랑과 평화의 하나님이 함께하시기를 말한다(13:11). 성도들 사이의 문안을 당부한 뒤 마지막 축복을 전한다. 축복의 끝에 나오는 여러분 모두는 이 공동체 전체를 가리킨다. 바울에게 우호적인 사람들만 골라 기원하지 않는다.1

축복은 앞의 권면을 뒷받침한다. 교회가 회복되고 평화를 이루려면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 성령의 교제가 필요하다. 바울이 세 분을 함께 언급하는 이유를 그의 목회적 관심과 연결해 읽을 수 있다. 동시에 그 목회적 관심은 신학적 판단을 포함한다. 교회의 삶이 누구에게 의존하는지를 바울이 이 세 분과의 관계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세 표현의 문법은 비슷하다. 은혜, 사랑, 교제라는 명사에 각각 그리스도, 하나님, 성령을 가리키는 소유격 표현이 붙는다. 그리스도의 은혜는 그리스도가 베푸는 은혜로,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이 베푸는 사랑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다. 축복의 문맥에서 바울은 교인들이 계속 누리기를 바라는 선물을 말한다.

여기서 하나님은 성부를 가리킨다. 편지의 첫인사에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나오고(1:2), 이어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찬양한다(1:3). 마지막 축복에서도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구별된다. 그러나 이 문장의 하나님이라는 호칭이 성부를 지칭한다는 사실만으로 그리스도의 신적 지위에 관한 판단까지 끝나는 것은 아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함께 어떤 자리에 놓는지도 살펴야 한다.

머리 해리스는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축복의 자리에서 결합하는 방식에 주목한다. 유일신 신앙을 가진 바울이 교회 전체를 위해 기원하는 복을 그리스도와 하나님 모두에게 연결한다는 점에서 그리스도의 높은 지위를 읽는다.2 이는 문법적 관찰에 근거한 신학적 해석이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이 나란히 언급된다는 사실과, 그 결합이 무엇을 뜻하는가에 대한 판단을 연결한 것이다.

성령의 교제라는 표현

성령의 교제는 두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성령이 신자들 사이에 이루시는 교제일 수도 있고, 신자들이 성령에 함께 참여한다는 뜻일 수도 있다. 코이노니아(κοινωνία)가 교제와 참여를 모두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성령이 이루시는 교제로 읽는 데에는 문장의 병렬이 힘을 보탠다. 그리스도가 은혜를 베풀고 하나님이 사랑을 베푸신다면, 세 번째도 성령이 교제를 이루신다고 읽는 것이 자연스럽다. 교회의 화합을 권하는 앞의 문맥도 이 해석과 잘 맞는다.

성령에 대한 공동의 참여로 읽을 근거도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피와 몸에 대한 참여를 말할 때 코이노니아 뒤에 소유격을 쓴다(고전 10:16). 같은 구조에서 소유격이 참여의 대상을 가리키는 것이다. 모든 신자가 한 성령을 마셨다는 표현도 신자들이 성령을 함께 받는다는 이해를 뒷받침한다(고전 12:13). 해리스는 두 해석의 근거를 비교한 뒤 성령에 대한 참여를 조금 더 선호한다.3

여기서는 성령에 함께 참여한다는 해석이 더 설득력 있다. 코이노니아의 용례와 바울이 말하는 성령의 공동 수여를 함께 설명하기 때문이다. 이 해석에 따르면 교인들 사이의 교제는 같은 성령을 받는 데서 생겨난다. 문법적으로 성령은 참여의 대상이며, 신자들 사이의 교제는 그 공동 참여가 낳는 결과다.

어느 해석을 택하든 성령의 자리는 교인들의 친밀감 정도로 축소되지 않는다. 성령이 교제를 이루신다고 읽으면 성령은 공동체를 묶는 주체가 된다. 성령에 참여한다고 읽으면 교인들이 공유하는 삶의 근거가 성령이다. 문법적 판단은 달라도, 교회가 성령과 맺는 관계가 이 축복의 내용이라는 점은 같다.

크리소스토무스의 해석

요한 크리소스토무스는 『고린도후서 강해』 30.3에서 이 축복을 교인들이 서로 결합할 뿐 아니라 하나님과도 결합하도록 하는 기도로 읽는다. 이어 성령이 편지 첫인사에 자주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성령의 신적 지위를 낮추는 주장을 반박한다. 마지막 축복에서는 성령이 성부와 성자와 함께 언급되며, 다른 구절에서도 어떤 한 분을 명시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4

그는 은혜와 사랑과 교제를 세 분의 배타적인 역할로 나누지도 않는다. 바울은 성령의 사랑을 말하고(롬 15:30), 아들과의 교제를 말하며(고전 1:9), 하나님에게서 오는 은혜도 기원한다. 크리소스토무스는 이런 교차 사용을 근거로 세 분의 선물을 갈라놓기 어렵다고 논증한다. 그러면서 위격들의 구별과 본질의 일치를 함께 고백한다.

이 해석은 축복 한 구절에 머물지 않는다. 바울이 다른 곳에서 같은 단어를 누구와 연결하는지 대조한다. 특히 은혜는 성자만, 사랑은 성부만, 교제는 성령만 담당한다는 독해의 약점을 잘 드러낸다. 바울 자신의 다른 표현들이 그처럼 배타적인 구분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별되는 세 분과 함께 받는 선물

이 구절을 역할 분담표로 읽으면 세 표현의 관계를 오해하기 쉽다. 바울은 성부가 사랑을 맡고 성자가 은혜를 맡으며 성령이 교제를 맡는 구조를 설명하지 않는다. 지금 교회를 위해 기원하는 선물들을 세 분과 연결하고, 그 모든 선물이 교회 전체와 함께하기를 빈다. 다른 본문에서 이 선물들이 서로 다른 분에게도 귀속된다는 관찰은 이러한 이해를 뒷받침한다.

그리스도, 하나님, 성령이라는 순서도 위계의 순서로 보기 어렵다. 바울이 편지 끝에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원하는 것은 익숙한 표현이다. 여기서는 그 기원에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제를 함께 놓았다. 해리스가 설명하듯, 이 배치의 의미는 하나님 안의 존재 순서를 정하는 데서보다 교회가 받는 구원의 선물에서 찾는 것이 적절하다.5

크리소스토무스의 논증에는 두 판단이 이어진다. 신적 선물들을 세 분 사이에 배타적으로 나눌 수 없다는 판단은 바울의 용례로 직접 뒷받침된다. 여기서 본질의 일치로 나아가는 판단에는 그 선물과 활동이 세 분의 존재를 어떻게 드러내는지에 관한 이해가 더해진다. 같은 일을 한다는 사실만으로 언제나 같은 본질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므로, 후자의 판단은 신적 행위의 성격과 다른 본문들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고 이 축복의 삼위일체적 의미가 세 이름의 단순한 병렬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교회가 그리스도와 하나님과 성령 모두에게 의존한다고 말한다. 세 분을 구별하면서 이들의 선물을 함께 기원하고, 교회의 삶을 그 선물들에 연결한다. 세 분의 관계를 설명하는 신학에는 이 내용이 실제 근거가 된다.

이 본문에 관한 종합 판단은, 바울이 교회의 은혜로운 삶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관계 안에서 이해한다는 것이다. 축복문 자체에 한 본질과 세 위격이라는 정의는 없지만, 교회를 하나님과 연결하는 복에 그리스도와 성령이 함께 들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 관계를 본질의 일치와 위격의 구별로 설명하려는 교부의 해석은 그 연결을 해명하려는 신학적 응답이다.

바울의 축복은 한 분의 선물을 다른 분의 선물과 경쟁시키지 않는다. 갈등을 겪은 교회 전체가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에 대한 참여를 함께 누리기를 바라는 기도로 편지가 끝난다.

성경 번역은 Michael W. Holmes, ed., The Greek New Testament: SBL Edition (2010)을 기준으로 했다. SBLGNT, CC BY 4.0.

각주와 자료

  1. Murray J. Harris, The Second Epistle to the Corinthian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IGTC (Grand Rapids: Eerdmans, 2005), 930-941, 특히 934-937, 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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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Harris, Second Epistle to the Corinthians, 937-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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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Harris, Second Epistle to the Corinthians, 939-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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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John Chrysostom, Homilies on Second Corinthians 30.3. 영어 전문, New Advent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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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Harris, Second Epistle to the Corinthians, 938. 이 쪽에서 은혜, 사랑, 교제를 배타적인 속성으로 배분하는 독해도 검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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