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고린도 공동체를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부른다. 그 편지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마음에 쓰였다(3:3). 사도들의 일할 능력도 하나님에게서 왔다. 그들을 새 언약의 일꾼으로 삼으신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생명을 주신다는 선언 뒤에, 모세의 얼굴에 비친 영광과 새 언약의 영광을 비교하는 설명이 나온다.1
7-8절: 죽음의 직무와 성령의 직무
“돌에 글자로 새긴 죽음의 직무도 영광 가운데 이루어져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영광 때문에 그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습니다. 그 영광은 사라져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직무는 더욱 영광 가운데 있지 않겠습니까?” (7-8절, 필자 번역)2
죽음의 직무라는 말은 돌판의 율법과 그 율법을 전한 모세의 일을 가리킨다. 해리스는 죄에 대한 율법의 판단이 죽음으로 이어지는 관계를 이 호칭의 배경으로 설명한다.3 같은 문장이 그 직무에 영광이 있었다고 말한다. 바울의 비교는 옛 언약의 하나님이 다른 신이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과 그것을 전한 얼굴에 실제 영광이 있었다.
출애굽기 34:29-35에서는 하나님과 말한 모세의 얼굴이 빛나고 백성이 가까이하기를 두려워한다. 바울은 그 사건을 새 언약의 직무를 설명하는 근거로 삼는다. 해리스는 출애굽기의 서술에는 모세 얼굴의 영광이 사라져 간다는 말이나 수건의 목적이 직접 설명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4 바울은 그 장면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두 언약의 관계에 적용한다.
사라져 가는이라는 카타르구메넨(καταργουμένην)의 뜻은 없어짐과 효력을 잃음 사이에서 논의된다. 해리스는 얼굴의 빛을 직접 가리키는 7절에서 사라져 가는 뜻을 우선하고, 그 얼굴의 영광이 모세 언약 전체의 일시적인 성격을 표현한다고 읽는다.5 조지 거스리는 이 동사를 효력이 막히는 뜻으로 읽는다. 모세의 얼굴에 남은 빛이 점차 약해진다는 설명보다, 수건이 그 빛을 백성에게 드러내지 못하게 하는 관계를 강조한다.6 위 번역은 해리스의 읽기를 따르며, 두 해석의 차이는 빛 자체의 소멸과 그 빛을 볼 길의 차단에 있다.
성령의 직무는 그보다 더 큰 영광을 가진다. 해리스는 이를 성령의 선물과 활동으로 특징지어지는 새 언약의 직무로 설명한다.7 돌판에 새긴 명령을 전하는 사도라는 주장보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사람의 마음에 생명을 이루신다는 주장이 새 직무의 근거다.
9-11절: 의를 주는 직무와 계속되는 영광
“정죄하는 직무에 영광이 있었다면, 의를 주는 직무에는 훨씬 더 풍성한 영광이 있습니다. 이 점에서는 영광을 받았던 것이 더 뛰어난 영광 때문에 영광을 잃었습니다. 사라져 갈 것이 영광 가운데 있었다면, 계속되는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습니다.” (9-11절)
정죄와 의라는 대조는 앞의 죽음과 성령을 다른 말로 설명한다. 해리스는 여기서 의를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지위로 읽는다.8 퍼니시도 이 대비를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주어지는 의와 생명에 연결한다.9 바울이 전하는 새 언약은 죄를 드러내는 판단에 머물지 않고 사람을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세운다.
더 뛰어난 영광 때문에 이전 영광이 영광을 잃었다는 말에는 비교의 기준이 있다. 하나님이 모세의 얼굴에 비추신 빛을 바울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서술하는 것은 아니다. 퍼니시는 실제 영광이 있었다는 진술이 더 큰 영광의 논증을 가능하게 한다고 설명한다.10 먼저 주어진 영광을 인정하면서 그보다 뛰어난 새 언약을 말한다.
11절의 계속되는 것은 앞의 성령과 의의 직무를 가리킨다. 해리스는 새 언약과 그 직무가 하나님이 이루시는 구원의 지속적인 질서를 표현한다고 읽는다.11 얼굴에서 사라지는 빛과 비교한 이 지속성은 성령의 새 언약이 사람들의 마음에 이루는 생명과 연결된다.
12-13절: 담대하게 말함과 모세의 수건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소망을 가지고 크게 담대하게 말합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사라져 가는 것의 끝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자기 얼굴에 수건을 씌웠던 모세처럼 하지 않습니다.” (12-13절)
바울이 말하는 담대함은 새 언약의 직무에서 나온다. 퍼니시는 이를 고린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자기 사도직을 수행하는 공개적인 행동으로 읽는다.12 바울은 사도의 능력을 스스로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았고(3:5), 이제 그에게 맡겨진 일의 영광 때문에 거리낌 없이 말한다고 설명한다.
모세의 수건은 그 공개적인 행동과 대비된다. 출애굽기의 모세는 하나님 앞에 들어갈 때 수건을 벗고, 백성에게 말씀을 전한 뒤 얼굴을 가린다. 퍼니시는 바울이 수건의 목적을 옛 직무의 영광이 끝날 것이라는 자기 논증에 연결했다고 읽는다.13 그 수건을 사람들을 속이려는 모세의 거짓 행동으로 설명하지는 않는다.
끝이라는 텔로스(τέλος)를 읽는 데도 차이가 있다. 해리스는 백성이 얼굴의 빛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 바라보는 것을 막았다는 뜻을 우선한다. 그는 그 장면에 옛 언약의 영광이 끝날 것을 표현한 의미가 함께 있다고 설명한다.14 거스리는 끝을 영광이 백성에게까지 이르러야 할 완성으로 읽는다. 백성의 굳어진 마음과 수건이 그 영광의 확산을 막았다는 제안이다.15 해리스가 얼굴의 빛이 끝나는 때를 우선하는 데 비해, 거스리는 그 빛이 백성에게 이룰 결과를 강조한다. 모세의 직무와 사도들의 직무를 대비하는 바울의 초점은 자기 말의 당당함과 새 언약의 지속성에 있다.
14-15절: 마음에 놓인 수건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굳어졌습니다. 오늘까지도 옛 언약을 읽을 때 같은 수건이 벗겨지지 않은 채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까지도 모세를 읽을 때 그들의 마음에 수건이 놓여 있습니다.” (14-15절)
얼굴을 가렸던 수건이 이제 마음을 가리는 수건으로 설명된다. 해리스는 이를 모세 시대의 사람들과 바울 시대의 유대인들이 새 언약을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에 연결한다.16 옛 언약을 읽는다는 말과 모세를 읽는다는 말은 같은 말씀을 공적으로 듣는 상황을 가리킨다.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지는 대상은 다르게 읽힌다. 해리스는 같은 수건이 벗겨지지 않는다는 앞의 주어를 유지하여 수건이 없어지는 뜻으로 택한다.17 퍼니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옛 언약의 직무가 폐기된다는 읽기를 택한다.18 전자는 가려진 마음이 열리는 일을 강조하고, 후자는 모세의 언약으로 구원을 얻는 길이 끝났다는 사실을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를 강조한다. 위 번역은 수건을 주어로 읽었다.
바울은 지금까지라는 시간 표현을 두 번 쓴다. 그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동시대의 사람들을 말하는 문장이다. 이 수건의 비유는 누가 어떤 새 언약의 영광을 알아보지 못하는지를 설명한다. 앞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지는 길도 함께 제시되었다.
16절: 주님께 돌이킬 때 수건이 벗겨짐
“그러나 주님께 돌이킬 때마다 그 수건은 벗겨집니다.” (16절)
주님께 돌이킨다는 표현은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주님 앞에 들어가 수건을 벗던 장면에 대응한다. 해리스는 바울이 모세라는 이름을 생략하여 하나님께 돌이키는 누구에게나 이 설명을 적용했다고 읽는다.19 백성의 마음에 놓인 수건이 계속된다는 앞의 진술과 달리, 이 문장에는 벗겨지는 가능성이 있다.
해리스는 이 주님을 출애굽기의 야훼와 같은 분으로 읽는다. 구약의 인용 문맥을 이어 가면서 하나님께 돌이킬 때 그리스도와 새 언약을 알아보는 뜻으로 설명한다.20 퍼니시도 사도들의 일할 능력과 새 언약을 주신 하나님이 이 단락의 중심 주어라는 이유로 같은 읽기를 택한다.21
주님을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읽는 해석도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수건이 없어진다는 14절은 이 읽기에 가까운 근거가 된다. 주님의 지시 대상에 관한 판단은 바로 뒤에서 그 주님과 성령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지에 영향을 준다.
17절 상반: 주님은 영이심
“그 주님은 영이십니다.” (17절 상반)
해리스는 이 문장을 출애굽기의 주님이 새 언약의 시대에 성령의 현존으로 경험된다는 해설로 읽는다.22 퍼니시도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새 언약을 이루신다는 문맥을 강조한다. 그는 이곳의 중심 목적을 하나님과 성령의 관계에 관한 정밀한 정의보다 사도의 새 직무를 설명하는 데 둔다.23
거스리는 더 직접적으로 출애굽기의 모세를 대면하신 주님이 성령이라고 읽는다. 바울이 그 구절의 주님을 성령으로 해설했다는 판단이다.24 해리스의 새 시대에 성령으로 경험되는 야훼라는 설명보다 그 출애굽기 장면의 인격을 더 구체적으로 지정한다.
이 읽기에서 성령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무관한 영적 힘이 아니다. 주님께 돌이키는 사람에게 그 하나님의 현존이 성령 안에서 주어진다. 3:3과 6의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과 생명을 주는 성령이 이 문장을 이해하는 가까운 문맥이다.
주님을 그리스도로 읽으면, 이 문장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존과 성령의 활동을 긴밀하게 연결한다. 해리스는 이 해석을 소개하면서 그 활동의 일치를 인격의 동일시와 구별한다. 바로 뒤에 나오는 주님의 영이라는 구문은 두 분의 관계를 유지하기 때문이다.25
17절 하반: 주님의 영이 계신 곳의 자유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17절 하반)
주님의 영이라는 호칭은 성령의 현존과 활동을 주님에게 연결한다. 해리스는 구약에서 이 표현이 야훼의 영을 가리키는 용례를 근거로 하나님에게 속한 영으로 읽는다.26 자유는 앞의 수건이 벗겨지는 일과 바울의 담대함에 가까이 놓여 있다.
퍼니시는 성령의 자유가 사도들이 복음을 숨김없이 말하도록 하는 담대함에 먼저 관계한다고 설명한다.27 바울이 말하는 자유는 책임을 모두 벗어나 자기 뜻대로 사는 상태로 제시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에 새 언약을 이루셔서 그분 앞에 서고 복음을 말하게 하시는 자유다.
18절: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같은 형상으로 변화됨
“우리는 모두 벗겨진 얼굴로 주님의 영광을 거울로 보듯 바라보며,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고 있습니다. 영광에서 영광으로 변화되는 이 일은 영이신 주님에게서 옵니다.” (18절)
우리는 모두라는 말이 모세 한 사람과 백성을 나누었던 장면을 바꾼다. 해리스는 이를 사도뿐 아니라 모든 신자에게 주어진 하나님을 볼 특권으로 설명한다.28 자기 능력으로 얻어 낸 소수의 영적 특권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수건이 벗겨진 사람들 모두에게 주님의 영광이 주어진다.
카톱트리조메노이(κατοπτριζόμενοι)는 거울에 비추는 뜻과 거울로 보는 뜻으로 읽힌다. 해리스와 퍼니시는 영광을 바라보는 뜻을 우선한다.29 바울의 문장은 무엇을 바라보는지와 어떤 형상으로 변화되는지를 이어 말한다. 바라보는 주님의 영광이 신자의 삶에 같은 형상을 이룬다.
같은 형상은 4:4의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와 연결된다. 퍼니시는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 드러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된다고 설명한다.30 해리스도 복음에 현존하는 그리스도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고 읽는다.31 거울이라는 표현은 이 장면의 영광이 거짓이거나 왜곡되었다는 평가를 뜻하지 않는다.
영광에서 영광으로라는 표현은 변화의 진행을 설명한다. 해리스는 이를 신자의 삶에 영광이 점차 더해지는 뜻으로 읽는다.32 변화되는 사람과 그 변화를 이루시는 주님은 같은 지위에 놓이지 않는다. 바울은 이 변화의 출처를 영이신 주님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의 아포 퀴리우 프뉴마토스(ἀπὸ κυρίου πνεύματος)는 주님의 영으로부터와 영이신 주님으로부터라는 두 번역으로 옮겨진다. 해리스는 πνεύματος를 κυρίου에 대한 동격 설명으로 읽어 후자를 택한다.33 거스리도 영이신 주님으로부터라는 번역을 택해 17절의 주님과 성령의 연결을 이어 간다.34 앞의 주님은 영이시라는 진술을 짧게 되풀이한 읽기다. 위 번역도 그 관계를 따른다.
교부들의 해석
크리소스토무스는 『고린도후서 강해』 7.4-5에서 영은 주님이시라는 방향으로 이 문장을 풀어 성령도 주님이시라고 설명한다. 그는 곧이어 주님의 영이라는 표현이 나온다는 점을 보혜사를 가리키는 근거로 삼는다.35 현대의 주님을 문법적인 주어로 유지하는 해석과 다른 강조점이 있다.
그는 신자의 영광을 성령의 빛을 받아 반사하는 은의 빛에 비유한다. 영광은 신자에게 주어진 빛이고, 성령은 그 빛을 주시는 분이다. 성령이 하나님의 일을 배우는 종처럼 아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을 본래 아시는 분이라는 고린도전서의 설명도 함께 연결한다.36
바실리우스는 『성령론』 XXI.52에서 주님이라는 호칭과 영광의 변화를 성령의 지위에 연결한다. 성령을 바라보는 사람이 그 영광으로 밝아지는 관계를 설명하고, 그 성령이 거하시는 자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다른 본문을 논거로 보탠다.37 성령의 활동과 호칭이 하나님 자신의 현존에 속한다는 주장이다.
주님의 현존과 동일 본질의 논증
이 단락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새 언약의 직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수건의 제거, 성령의 생명과 자유 및 변화가 함께 나온다. 새 언약의 영광을 누리는 사람들은 이 구원을 받는 이들이다. 성령은 그들에게 생명을 주고 하나님의 현존을 이루시는 분이다.
주님을 야훼로 읽으면 17절은 성령의 현존을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현존과 직접 연결한다. 주님을 그리스도로 읽으면 그리스도의 현존이 성령을 통해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관계를 강조한다. 두 해석 가운데 전자를 택할 더 가까운 근거는 출애굽기의 주님을 이어 설명하는 16-17절의 연결이다. 그리스도는 이 하나님이 자기 영광을 드러내신 형상으로 다음 단락에 명시된다(4:4-6).
이 관계에서 성령의 신적 지위를 논증하는 힘은 주님이라는 단어 하나보다, 모세가 대면하던 하나님의 현존이 같은 성령 안에서 주어진다는 문맥에 있다. 고린도전서 2:10-11의 하나님의 자기 앎과 함께 읽으면, 성령은 하나님을 바깥에서 배워 전하는 피조된 전달자와 다른 관계를 가진다. 성령의 생명과 계시는 하나님 자신의 생명과 계시다.
동일 본질은 그 지위와 하나님의 유일성을 함께 설명한다. 성령에게서 오는 생명과 아들에게서 드러난 하나님의 영광을 서로 독립된 신들의 자원으로 나누지 않는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은 구별된 관계로 사람들의 구원을 이루시며, 같은 신적 생명과 영광을 지니신다. 주님의 현존을 함께 이루는 이 단락은 그 연결의 근거이고, 세 분의 나뉘지 않는 신성이라는 판단에는 창조와 하나님의 자기 앎을 서술한 다른 본문들이 보태진다.
신자는 그 영광을 받아 같은 형상으로 변화된다. 이것은 모든 신자가 아버지와 아들 및 성령과 같은 본질의 신이 된다는 뜻과 다르다. 변화를 이루시는 분에게서 오는 빛으로 그리스도의 형상이 사람의 삶에 이루어진다. 바울이 전하는 성령의 자유는 그 삶을 열고, 그의 담대한 복음은 고린도인들이 그 영광을 함께 바라보도록 한다.
각주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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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rray J. Harris, The Second Epistle to the Corinthian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IGTC (Grand Rapids: Eerdmans; Milton Keynes: Paternoster, 2005), 275-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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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ael W. Holmes 편, The Greek New Testament: SBL Edition (2010), 고후 3:7-18을 따른 필자 번역. 고정 커밋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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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ris, Second Epistle, 281-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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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ris, Second Epistle, 276-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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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ris, Second Epistle, 283-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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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 H. Guthrie, 2 Corinthians, Baker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Baker Academic, 2015), Perlego 전자책 쪽수 표지 211-212, “c. The Better Ministry of the Spirit (3:7-18).” 실제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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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ris, Second Epistle,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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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ris, Second Epistle, 287-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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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ctor Paul Furnish, II Corinthians: Translated with Introduction, Notes and Commentary, Anchor Bible 32A (Doubleday, 1984; Logos의 Anchor Yale Bible 재판), 228-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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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rnish, II Corinthians, 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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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ris, Second Epistle, 290-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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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rnish, II Corinthians, 23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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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rnish, II Corinthians, 23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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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ris, Second Epistle, 297-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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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thrie, 2 Corinthians, 전자책 쪽수 표지 220-222, 13절 해설. 완성과 영광의 확산에 관한 거스리의 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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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ris, Second Epistle, 301-302, 305-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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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ris, Second Epistle, 30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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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rnish, II Corinthians, 23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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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ris, Second Epistle, 306-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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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ris, Second Epistle, 308-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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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rnish, II Corinthians, 234-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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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ris, Second Epistle, 31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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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rnish, II Corinthians, 235-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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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thrie, 2 Corinthians, 전자책 쪽수 표지 225-226, 16-17절 해설과 해당 단위의 표시 각주 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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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ris, Second Epistle, 310-311. 해리스가 소개하는 기능과 경험의 일치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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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ris, Second Epistle,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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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rnish, II Corinthians, 236-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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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ris, Second Epistle, 313-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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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ris, Second Epistle, 314; Furnish, II Corinthians, 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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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rnish, II Corinthians, 239-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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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ris, Second Epistle, 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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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ris, Second Epistle, 317-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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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thrie, 2 Corinthians, 전자책 쪽수 표지 229, 18절 해설과 표시 각주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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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소스토무스, 『고린도후서 강해』 7.4-5, 17-18절 해설, 공개 NPNF 영어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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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소스토무스, 『고린도후서 강해』 7.5, 같은 공개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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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우스, 『성령론』 XXI.52, 공개 NPNF 영어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