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5:17은 모든 불의가 죄이며 죽음에 이르지 않는 죄도 있다고 말한다. 그 뒤의 세 절은 ‘우리는 안다’를 반복하여 독자들의 출생과 소속, 하나님의 아들이 주신 앎을 서술한다. 브라운은 이 반복을 신자들이 입교 때부터 배워 온 믿음의 확신으로 읽는다.1 불트만은 편집자가 서신의 주제들을 반복하여 붙인 끝부분으로 읽는다.2 두 주석은 단락이 형성된 방식을 다르게 설명하지만, 세 번의 앎이 앞선 서신의 내용을 되짚는다는 점을 인정한다.

요일 5:18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하나님에게서 난 이가 그를 지키며, 악한 자가 그를 건드리지 못한다.3

첫 주어는 πᾶς ὁ γεγεννημένος ἐκ τοῦ θεοῦ, 곧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마다다. 브라운은 이 절을 실제 죄의 존재와 용서를 다룬 앞의 진술에 연결하면서, 하나님에게서 받은 생명이 신자에게서 실현될 때 죄를 배제하는 삶을 말한다고 설명한다.4 17절은 실제 죄의 존재를 말했고 18절은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의 삶을 말한다. 이 둘은 신자의 실제 행위와 하나님에게서 난 삶이 요구하는 상태를 각각 드러낸다.

보호자의 지시는 쟁점이다. 두 번째 주어는 ὁ γεννηθεὶς ἐκ τοῦ θεοῦ이고, 목적어는 αὐτόν, 곧 그를이다. 첫 분사는 완료형, 둘째는 아오리스트형이다. 불트만은 두 번째로 하나님에게서 났다고 불린 분을 예수 그리스도로 읽는다. 그는 표현이 바뀐 점과 자신을 대신 그를이라는 목적어가 나온 점을 근거로 든다.5 그 읽기에서는 아들이 신자를 지키고, 악한 자가 그 신자를 지배하지 못한다.

브라운은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해석의 근거와 반론을 모두 검토한 뒤, 두 번째 주어도 신자를 가리킨다는 해석을 선호한다. 요한 문헌에서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이라는 표현을 예수에게 적용한 다른 예가 없다는 점을 크게 본다. 신자가 자신을 지키는지 하나님이 그를 지키는지는 그의 ‘보호받는다’라는 번역에서 확정되지 않는다.6 브라운은 그를이라는 대명사가 자신을 가리키는 용법도 검토한다. 따라서 αὐτόν을 가진 본문에서도 지시 대상에 관한 해석 차이가 있다.

‘자신을 지킨다’를 직접 적는 ἑαυτόν이라는 다른 읽기도 있다. 브라운은 그 읽기를 소개하면서 αὐτόν을 더 잘 지지되는 본문으로 택한다.6 기준 본문의 그를은 보호자의 행위와 보호받는 사람을 구별하여 읽을 근거가 된다. 아들이 신자를 지킨다는 해석은 그 관계를 문장의 주어와 목적어로 설명한다. 신자를 다시 주어로 읽는 해석은 같은 대명사의 재귀 용법이나 문장 밖의 하나님을 주어로 보충하는 설명을 사용한다.

악한 자가 건드리지 못한다는 말에서 ἅπτεται는 해를 입히거나 지배하려는 접촉이다. 불트만은 악한 자를 사탄으로 읽고, 그가 신자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뜻으로 설명한다.7 브라운도 이 접촉을 파괴적인 가해와 보호의 문맥에서 읽는다.8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의 삶은 악한 자가 차지하는 지배권과 대조된다.

요일 5:19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났음을 안다. 온 세상은 악한 자의 지배 아래 있다.

ἐκ τοῦ θεοῦ ἐσμεν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되고 하나님께 속하는 관계다. 브라운은 이 표현을 출처와 소속을 모두 말하는 진술로 읽는다.9 앞 절의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들이 이제 우리라는 공동체의 말로 자신들의 관계를 확인한다.

κόσμος ὅλος는 온 세상을, ἐν τῷ πονηρῷ κεῖται는 악한 자 안에 놓인 상태를 말한다. 브라운은 앞 절의 악한 자와 이어지는 지배의 관계로 읽는다.21 불트만은 악한 자를 가리키는 남성형과 악한 상태를 가리키는 중성형의 가능성을 모두 검토한다.10 앞 절에서 신자를 건드리지 못하는 악한 자가 주어였다는 점이 인격적 지시를 뒷받침한다. 이 번역은 그 연결을 따라 온 세상이 악한 자의 지배 아래 있다는 관계를 적었다.

브라운은 그 세상을 예수를 믿지 않고 공동체를 떠난 사람들의 관계에 연결한다.11 독자들은 세상의 지배권과 자신들의 소속을 대조하여 말한다. 하나님에게서 난 그들의 정체가 악한 자가 지배하는 세상과의 관계를 바꾼다.

요일 5:20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참되신 분을 알도록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셨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참되신 분 안에,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 이분은 참 하나님이며 영원한 생명이시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다는 ἥκει와 깨달음을 주셨다는 δέδωκεν의 주어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불트만은 오심을 아들이 역사 안에 나타나신 사건으로 읽고, 깨달음을 앞의 기름부음과 가르침에 연결한다.12 브라운은 아들이 오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셨다는 진술을 하나님께 이르는 계시의 관계로 설명한다.13 독자들이 아는 근거는 아들의 오심과 그가 주신 깨달음이다.

첫 번째 τὸν ἀληθινόν, 곧 참되신 분은 아들이 알게 해 주시는 분이다. 브라운과 불트만은 이 대상을 아버지 하나님으로 읽는다.14 이어지는 ‘그분의 아들’은 참되신 분과 그 아들을 구별한다. 아들은 참되신 분을 알게 하는 주체이고, 동시에 독자들이 그 안에 있는 분이다.

두 ἐν 구는 접속사 없이 이어진다. 브라운은 아들 안에 있기 때문에 참되신 하나님 안에 있다는 관계로 번역하고, 불트만도 아들 안에 있는 것이 하나님 안에 있는 근거라고 설명한다.15 독자들이 아들 안에 있다는 관계가 아버지와의 관계를 설명한다.

마지막 οὗτος, 곧 이분이 가리키는 대상에는 두 해석이 있다. 브라운은 앞에서 참되신 분으로 불린 아버지를 계속 가리킨다는 논거와, 가장 가까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논거를 검토한다. 그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술어가 서신의 시작과 예수에 관한 진술에 대응한다는 점까지 고려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선호한다.16 불트만도 이분을 예수로 읽는다. 그가 제안한 편집 과정과 본문의 일부가 추가되었을 가능성은 문학적 가설이며, 현재 전승된 문장을 해석할 때에는 아들을 참 하나님으로 부르는 진술이라고 설명한다.17

가장 가까운 인명과 영원한 생명이라는 술어를 함께 보면, 이분을 예수 그리스도로 읽는 두 주석가의 해석이 설득력이 있다. 그 읽기에서는 아들이 참 하나님이며 영원한 생명이라고 직접 불린다. 앞의 그분의 아들이라는 관계는 유지된다. 신적 호칭을 받는 아들과 그가 알게 하시는 아버지는 같은 인물로 합쳐지지 않는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읽은 참 하나님과 영생

아우구스티누스는 『삼위일체론』 I.6.9에서 요한복음의 말씀과 창조 진술을 연결하여 아들이 피조물이 아니며 아버지와 같은 본질이라고 논한다. 그 뒤에 요한일서 5:20을 인용하여 아들을 참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근거를 덧붙인다.18 그 논증에서는 창조된 모든 것이 말씀을 통해 생겨났다는 전제가 먼저 제시되고, 이 절의 신적 호칭이 그 결론을 강화한다.

확보한 영어 번역은 ‘우리가 그의 참된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도록’이라는 형태로 인용한다.18 기준 그리스어는 ‘우리는 참되신 분 안에,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라고 두 ἐν 구를 적는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사용한 인용은 참되다는 말의 연결과 문장의 형태가 다르다. 브라운은 같은 유형의 인용과 번역 차이를 5:20의 본문 해설에서 소개한다.15

I.6.10에서는 아들이 영원한 생명이라는 사실과 신자들이 그 생명에 참여한다는 관계를 구별한다.19 그 설명에서 아들은 생명을 받는 신자들과 달리 신자들이 참여하는 영원한 생명 자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호칭을 성부·성자·성령이 한 하나님이라는 자신의 논증에 연결했다.

아들이 주시는 보호와 앎

세 번의 앎은 하나님에게서 난 삶, 하나님께 속한 공동체, 아들을 통해 주어진 하나님에 대한 앎을 서술했다. 보호자의 지시에 관해서는 불트만과 브라운이 갈리지만, 20절의 아들이 깨달음을 주신다는 행위와 아버지·아들의 관계는 두 해석에서 모두 분명하다. 마지막의 이분을 아들로 읽으면, 그 아들은 참 하나님이며 영원한 생명으로 불린다.

바로 뒤의 21절은 독자들에게 우상들을 피하여 자신을 지키라고 명한다.3 브라운은 이 경고를 참 하나님에 관한 앞의 진술과 연결한다.20 이 세 절의 확신은 독자들이 믿고 속한 하나님과 아들, 그리고 그 관계에 맞는 삶을 설명한다.

핵심주장과 원자료 대조 · 자료와 판본 확인

각주와 자료

  1. Raymond E. Brown, The Epistles of John, Anchor Yale Bible 30 (Doubleday 원판 1982; New Haven and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2008), 619·6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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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Rudolf Bultmann, The Johannine Epistles, R. Philip O’Hara·Lane C. McGaughy·Robert W. Funk 번역, Robert W. Funk 편, Hermeneia (Philadelphia: Fortress, 1973), 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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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Michael W. Holmes 편, The Greek New Testament: SBL Edition (2010), 고정 1John 전문, CC BY 4.0. 필자 번역, 주해 5:18-20와 필요한 앞뒤 문맥 5:17·21. 18절은 αὐτόν, 20절은 γινώσκωμεν과 두 ἐν 구를 적는다.

    본문 1 본문 2

  4. Raymond E. Brown, The Epistles of John, Anchor Yale Bible 30 (Doubleday 원판 1982; New Haven and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2008), 619-620·637-6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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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Rudolf Bultmann, The Johannine Epistles, R. Philip O’Hara·Lane C. McGaughy·Robert W. Funk 번역, Robert W. Funk 편, Hermeneia (Philadelphia: Fortress, 1973), 88-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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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Raymond E. Brown, The Epistles of John, Anchor Yale Bible 30 (Doubleday 원판 1982; New Haven and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2008), 620-6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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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Rudolf Bultmann, The Johannine Epistles, R. Philip O’Hara·Lane C. McGaughy·Robert W. Funk 번역, Robert W. Funk 편, Hermeneia (Philadelphia: Fortress, 1973), 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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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Raymond E. Brown, The Epistles of John, Anchor Yale Bible 30 (Doubleday 원판 1982; New Haven and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2008), 6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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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Raymond E. Brown, The Epistles of John, Anchor Yale Bible 30 (Doubleday 원판 1982; New Haven and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2008), 622-6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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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Raymond E. Brown, The Epistles of John, Anchor Yale Bible 30 (Doubleday 원판 1982; New Haven and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2008), 6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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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Rudolf Bultmann, The Johannine Epistles, R. Philip O’Hara·Lane C. McGaughy·Robert W. Funk 번역, Robert W. Funk 편, Hermeneia (Philadelphia: Fortress, 1973), 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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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Raymond E. Brown, The Epistles of John, Anchor Yale Bible 30 (Doubleday 원판 1982; New Haven and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2008), 638-6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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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Rudolf Bultmann, The Johannine Epistles, R. Philip O’Hara·Lane C. McGaughy·Robert W. Funk 번역, Robert W. Funk 편, Hermeneia (Philadelphia: Fortress, 1973), 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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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Raymond E. Brown, The Epistles of John, Anchor Yale Bible 30 (Doubleday 원판 1982; New Haven and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2008), 639-6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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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Raymond E. Brown, The Epistles of John, Anchor Yale Bible 30 (Doubleday 원판 1982; New Haven and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2008), 624쪽; Rudolf Bultmann, The Johannine Epistles, R. Philip O’Hara·Lane C. McGaughy·Robert W. Funk 번역, Robert W. Funk 편, Hermeneia (Philadelphia: Fortress, 1973), 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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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Raymond E. Brown, The Epistles of John, Anchor Yale Bible 30 (Doubleday 원판 1982; New Haven and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2008), 625쪽; Rudolf Bultmann, The Johannine Epistles, R. Philip O’Hara·Lane C. McGaughy·Robert W. Funk 번역, Robert W. Funk 편, Hermeneia (Philadelphia: Fortress, 1973), 89-90쪽.

    본문 1 본문 2

  17. Raymond E. Brown, The Epistles of John, Anchor Yale Bible 30 (Doubleday 원판 1982; New Haven and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2008), 625-6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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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Rudolf Bultmann, The Johannine Epistles, R. Philip O’Hara·Lane C. McGaughy·Robert W. Funk 번역, Robert W. Funk 편, Hermeneia (Philadelphia: Fortress, 1973), 90쪽. 인용한 편집과 추가 가능성은 그가 제안한 가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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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아우구스티누스, 『삼위일체론』 I.6.9-10, Arthur West Haddan 번역, NPNF 1/3 (1887), Philip Schaff 편, New Advent 제공 영어, I.6.9. 확인한 것은 NPNF 영어 인용이며 라틴어 비평판은 대조하지 않았다.

    본문 1 본문 2

  20. 아우구스티누스, 『삼위일체론』 I.6.9-10, Arthur West Haddan 번역, NPNF 1/3 (1887), Philip Schaff 편, New Advent 제공 영어, I.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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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Raymond E. Brown, The Epistles of John, Anchor Yale Bible 30 (Doubleday 원판 1982; New Haven and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2008), 640-641쪽. 21절의 직접 해설 전체는 이번 독립 주해 범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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