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신자들은 재산을 나누어 필요한 사람들을 돌보았다. 바나바는 밭을 팔아 그 돈을 사도들 앞에 놓았다. 누가는 이 나눔의 모습을 전한 뒤 다른 부부의 행동을 서술한다. 바나바와 같은 자리에 돈을 놓았으나, 그 행동에 담긴 뜻은 같지 않았다.1
1-2절: 일부를 남겨 두고 사도들 앞에 가져옴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아내 사피라와 함께 재산을 팔았습니다. 그는 아내도 아는 가운데 그 값의 일부를 빼돌리고, 일부를 가져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습니다.” (1-2절, 필자 번역)2
에노스피사토(ἐνοσφίσατο)는 따로 남기거나 자기 것으로 빼돌리는 행동을 가리킨다. 개번타는 공동체에 주겠다고 제시한 재산을 일부 되돌려 취하는 행동으로 읽는다.3 서술은 사피라도 그 일을 알고 있었다고 밝힌다. 이 단계에서 실제로 돈을 가져오는 주체는 아나니아다.
홀러데이는 사도들의 발 앞에 놓는 행동이 앞의 바나바 장면을 이어받는다고 설명한다.4 두 장면에서 겉으로 보이는 기부의 형식은 같다. 누가는 그 형식 안에서 공동체의 나눔을 실행한 사람과 자기 행동을 숨긴 사람을 대조한다.
3절: 성령을 속이려는 마음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아나니아여, 왜 사탄이 그대의 마음을 채워, 그대가 성령을 속이고 밭값의 일부를 빼돌리게 했습니까?” (3절)
베드로는 아나니아의 행동을 성령을 속이려는 일로 설명한다. 사탄이 마음을 채웠다는 표현은 앞의 공동체가 성령으로 충만했다는 4:31과 대조된다. 개번타는 사탄의 활동이 공동체 내부에 들어온 장면으로 읽으며, 돈과 배신으로 연결된 유다의 행동과도 비교한다.5
성령은 아나니아가 속이려는 대상이다. 이 문장에서는 성령과 아나니아의 마음, 사탄의 활동, 사도들의 공동체가 구별된다. 속이는 일은 사람들에게 보이는 재산과 그 재산을 내놓는 사람의 마음 사이에 있다. 베드로는 숨긴 행동의 뜻을 드러낸다.
4절: 인간에게 한 일과 하나님께 한 거짓말
“그 재산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그대의 것이 아니었습니까? 팔린 뒤에도 그 값은 그대의 권한 안에 있지 않았습니까? 왜 그대는 이런 일을 마음에 정했습니까? 그대가 거짓말한 대상은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4절)
베드로는 재산을 팔거나 그 돈을 전부 내놓을 의무가 있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재산과 판매 대금은 아나니아의 권한 안에 있었다. 개번타는 일단 전체를 공동체에 준 것처럼 제시한 행동이 그 일부를 자기 것으로 남기는 행동과 충돌한다고 읽는다.6 문제는 기부의 액수보다 기부를 통해 거짓된 모습을 만들었다는 데 있다.
3절에서 성령을 속인 일이 4절에서는 하나님께 거짓말한 일로 설명된다. 개번타는 이 두 표현과 뒤의 주님의 영을 시험함이 같은 행동의 여러 신학적 설명이라고 읽는다.7 하나님이 계신 공동체 안에서 성령을 속이려는 행동은 하나님께 한 행동이 된다.
이 대조에서 사도들은 사람들의 범주에 속한다. 베드로가 공동체를 대표한다고 해서 그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뜻은 아니다. 성령과 하나님이 연결되는 관계를 사도의 권위와 같은 방식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지는 이 본문이 제기하는 신학적 쟁점이다.
5-6절: 아나니아의 죽음과 첫 두려움
“아나니아는 이 말을 듣다가 쓰러져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 일을 들은 모든 사람에게 큰 두려움이 일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그의 몸을 싸서 밖으로 메고 나가 묻었습니다.” (5-6절)
누가는 아나니아가 베드로의 말을 듣고 쓰러졌다고 서술한다. 베드로가 죽이라고 명령한 말이나 사람들이 그를 처형한 행동은 기록되지 않는다. 홀러데이는 이 장면을 공동체 앞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심판으로 읽는다.8 그것은 사건의 신학적 해석이며, 죽음의 행위 주체가 동사에 명시되어 있다는 설명과는 다르다.
개번타도 갑작스러운 죽음과 두려움이 하나님의 심판을 알리지만, 베드로 자신이 죽음을 일으킨 사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고 읽는다.9 제닝스는 생명을 거두는 권한이 성령에게 있으며, 사도들에게 죽일 권한이 주어진 사건으로 읽지 않는다.10 공동체는 그 일을 듣고 두려워한다. 누가는 죽은 사람을 밖으로 내어 묻는 행동까지 서술한다. 제자들의 나눔 안에서 벌어진 거짓말이 삶과 죽음의 사건으로 드러난다.
7-8절: 사피라가 따로 응답함
“약 세 시간이 지난 뒤, 그의 아내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 채 들어왔습니다. 베드로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말해 보십시오. 두 분이 밭을 이 금액에 팔았습니까? 그는 그렇습니다, 그 금액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7-8절)
사피라는 남편에게 일어난 일을 모른다. 그러나 앞의 2절에서 돈을 일부 남긴 행동을 알고 있던 사람으로 소개되었다. 베드로는 그에게 따로 묻고, 그는 자기 말로 응답한다. 하이디 비어만은 이 질문의 복수형이 부부의 공동 행위에 관계하면서도 사피라에게 실제 발언의 자리를 준다고 설명한다.11
본문에는 질문에 사용된 구체적인 액수가 기록되지 않는다. 비어만은 일부를 전체처럼 말하는 거짓된 대답이라는 읽기와, 실제 판매 가격을 인정한 자백이라는 대안적 읽기를 검토한다.12 앞의 부분 은닉과 베드로의 질문을 연결하면, 사피라도 부부가 정한 진술을 유지한다는 읽기가 더 자연스럽다. 그 책임은 남편과의 관계에 묶여 있으면서 자기 응답으로도 드러난다.
9절: 주님의 영을 함께 시험함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왜 두 분은 주님의 영을 시험하기로 함께 뜻을 맞추었습니까? 그대의 남편을 묻은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있습니다. 그들이 그대도 메고 나갈 것입니다.” (9절)
함께 뜻을 맞추었다는 말은 두 사람의 행동을 묶는다. 베드로는 사피라를 남편과 무관한 새 범행의 주체로 고발하지 않는다. 성령을 속인 행동을 주님의 영을 시험하는 일로 다시 설명한다. 개번타는 이 세 표현이 하나님과 공동체의 관계를 거스른 같은 행동을 설명한다고 읽는다.13
시험한다는 말에는 하나님이 그 행동을 알아보시고 드러내실 수 있는지 알아보려는 태도가 담긴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나지 않으면 기부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행동했다. 주님의 영은 그 공동체 안에 현존하시는 영으로 서술된다.
주님이 이 구절에서 아버지와 예수 가운데 누구를 특정하는지 문장만으로 확정하기는 어렵다. 직접적인 앞 문맥은 하나님께 한 거짓말이다. 암브로시우스는 이 호칭을 다른 성경의 하나님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에 연결하여 같은 성령으로 읽는다. 그의 해석은 아래에서 살핀다.
10-11절: 함께 묻힌 부부와 교회의 두려움
“그는 즉시 베드로의 발 앞에 쓰러져 숨을 거두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그가 죽은 것을 발견하고 밖으로 메고 나가 남편 곁에 묻었습니다.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큰 두려움이 일었습니다.” (10-11절)
사피라도 남편과 같은 결과를 맞는다. 홀러데이는 두 죽음과 매장, 두려움이 두 장면을 짝짓는다고 설명한다.14 시작의 기부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였고, 마지막에는 사피라가 같은 자리에서 쓰러진다.
온 교회라는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가 신자들의 공동체를 가리키는 말로 처음 나온다. 개번타와 홀러데이는 그 이름과 두려움이 하나님의 현존을 경험하는 공동체를 설명한다고 읽는다.15 사건은 부부의 은밀한 행동으로 시작했지만 그 결과는 공동체와 소식을 듣는 사람들에게 미친다.
공동 행위와 두 사람의 책임에 관한 연구
비어만은 아나니아와 사피라를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에 비교한다. 사도행전에서는 남자가 먼저 행동하고 여자가 그 일을 아는 관계로 서술된다. 두 사람은 같은 결과를 받지만, 행위와 책임이 모든 면에서 똑같이 서술되지는 않는다는 해석이다.16
이 비교는 사피라를 남편과 완전히 같은 역할로 놓는 읽기를 세밀하게 만든다. 그의 이름은 처음 한 번 나온 뒤 아내라는 관계로 반복되고, 그가 실제 말하는 장면은 혼자 베드로 앞에 선 때다. 비어만은 그 관계와 발언이 함께 책임을 표현한다고 읽으며, 강요를 받았는지 스스로 주도했는지를 모두 같은 정도로 확정하지 않는다.17 본문은 그가 알고 있었던 행동과 실제 응답을 통해 공모를 서술한다.
제닝스는 부부가 돈을 따로 남겨 두는 행동을 새로운 공동체의 삶과 다른 경제적인 통제권을 고수하는 일로 읽는다.18 이 읽기는 거짓말과 소유의 행동을 하나님이 이루시는 공동체의 질서에 연결한다. 다만 4절은 재산과 판매 대금이 그들에게 속한 상태를 분명히 인정한다. 본문에서 공동체를 해친 행동은 그 자유 안에서 속임을 공모하여 나눔의 모습을 만든 일이다.
교부들의 해석
크리소스토무스: 자발적인 기부와 거룩한 공동체
크리소스토무스는 『사도행전 강해』 12에서 기부에 강제가 없었다는 4절을 강조한다. 그는 공동체에 주기로 선택한 재산을 돌려 취한 행동을 거룩한 것에 대한 침해로 읽는다. 사피라에게 묻는 장면은 스스로 잘못을 벗어날 기회로 설명한다.19
그는 베드로가 숨긴 마음을 알고 죽음을 선포하는 권한을 기적으로 읽는다. 같은 사건을 현대 개번타는 하나님과 사탄의 대립 가운데 일어난 심판으로 읽으면서 베드로를 죽음의 원인으로 특정하지 않는다. 교부의 사도 권위 해석과 현대의 행위 주체 해석은 이 대목에서 강조가 다르다.
암브로시우스: 성령을 속인 일이 하나님께 한 거짓말인 이유
암브로시우스는 『성령론』 III.9.54-58에서 3절의 성령, 4절의 하나님, 9절의 주님의 영을 함께 읽는다. 로마서 8:9-10의 하나님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을 연결하여 같은 성령의 현존을 논증한다.20
그는 성령께 거짓말한 일이 하나님께 거짓말한 일이라면 성령의 신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버지와 성령을 구별해 읽더라도 거짓말을 알아보시는 진리와 앎이 하나라는 점에서 신성의 일치를 논증한다.21 그의 결론에는 호칭의 연결과 같은 앎에 근거한 하나의 신성이라는 전제가 들어 있다.
성령의 신적 지위와 동일 본질의 판단
성령은 이 이야기에서 속임과 시험의 대상이며, 그분께 한 일이 하나님께 한 거짓말이라고 불린다. 이 두 표현의 연결은 성령의 신적 지위를 논증할 직접적인 근거다. 성령은 사도들이 소유한 능력과 같은 자리에 있지 않다. 거짓말의 대상인 하나님이 공동체 안에 성령으로 현존하신다.
대표자에게 한 일을 보내신 분에게 한 일로 설명하는 용례도 성경에 있다. 이 단락만으로 거짓말의 두 대상을 연결한 모든 경우가 동일 본질을 뜻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베드로에게 한 거짓말도 하나님 앞의 행동이지만, 이 본문은 베드로를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성령과 하나님의 관계를 설명하려면 성령 자신이 어떤 분으로 서술되는지를 함께 고려한다.
고린도전서 2:10-11에서 성령은 하나님의 자기 앎에 관계하며, 3:16-17에서 신자들의 공동체는 성령이 거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불린다. 성령의 뜻과 활동은 같은 하나님의 은사를 실제로 이루는 행위다.22 이 관계들은 성령을 하나님과 별개의 피조된 심부름꾼으로 놓는 설명보다, 하나님 자신의 앎과 현존을 알리시는 분으로 읽는 근거가 된다.
동일 본질은 성령에게 귀속된 이 신적 앎과 현존을 한 하나님에 대한 고백 안에서 설명한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구별하면서도 그 앎과 생명을 세 개의 독립된 신성으로 나누지 않는다. 성령이 하나님 자신의 현존을 이루시는 분이라면 그분의 신성은 하나님이 가지신 나뉘지 않는 하나의 신성으로 이해된다. 암브로시우스의 한 진리와 한 앎에 관한 논증은 이 본문 간 연결을 교리적으로 설명한다.
이 단락은 아버지와 아들을 직접 함께 이름 붙이지 않는다. 그 전체 관계는 다른 본문에서 밝혀지며, 여기서는 성령을 속인 행동과 하나님께 한 거짓말의 연결이 중심이다. 나눔을 이루는 공동체 안에 하나님이 현존하신다는 사실은 그 공동체의 거짓을 삶과 죽음의 사건으로 드러낸다.
각주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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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l R. Holladay, Acts: A Commentary, New Testament Library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16), 13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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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ael W. Holmes 편, The Greek New Testament: SBL Edition (2010), 행 5:1-11을 따른 필자 번역. 고정 커밋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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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verly Roberts Gaventa, The Acts of the Apostles, Abingdon New Testament Commentaries (Nashville: Abingdon Press, 2003), 101-102. Zotero EPUB의
page_101,page_102표지를 확인했다. -
Holladay, Acts, 13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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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venta, Acts, 10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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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venta, Acts,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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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venta, Acts,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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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laday, Acts, 137-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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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venta, Acts,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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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e James Jennings, Acts, Belief: A Theological Commentary on the Bible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17), 53. Perlego에서 실제 첫 판의 본문과 인쇄 쪽수 표지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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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idi M. Biermann, “Partners in Crime: Reading Ananias and Sapphira (Acts 5.1-11) alongside Adam and Eve,”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New Testament 47, no. 4 (2025): 619-641, 여기서는 629-632. DOI
10.1177/0142064X241281702. -
Biermann, “Partners in Crime,” 631-632. 실제 액수를 말한 자백이라는 견해는 비어만이 소개하는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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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venta, Acts, 10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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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laday, Acts,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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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venta, Acts, 103; Holladay, Acts, 138.
-
Biermann, “Partners in Crime,” 629-634.
-
Biermann, “Partners in Crime,” 635-637.
-
Jennings, Acts, 5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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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12, 행 5:4와 7-9의 직접 해설 및 되풀이 부분. 공개 NPNF 영어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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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브로시우스, 『성령론』 III.9.54-56, 공개 NPNF 영어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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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글, III.9.5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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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LGNT, 고전 2:10-11; 3:16-17; 12:4-6, 11. 2:6-16과 12:4-6의 주해를 함께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