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은 제자들이 여러 언어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 놀라며 뜻을 묻는 이들이 있었고 술에 취했다고 비웃는 이들도 있었다. 베드로는 그 비웃음에 답하면서, 지금 사람들이 보고 듣는 일을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에게 일어난 사건으로 설명한다.1
14-15절: 열한 사도와 함께 선 베드로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목소리를 높여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유대인 여러분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분들, 이 일을 알아 두시고 제 말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이 사람들은 여러분의 생각처럼 술에 취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아침 아홉 시입니다.” (14-15절, 필자 번역)2
베드로는 혼자 서지 않는다.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그들을 대표하여 말한다. 홀러데이는 이를 앞에서 함께 말하던 사도들의 증언이 한 목소리로 모이는 장면으로 읽는다.3 여러 언어의 말은 같은 공동체의 증언으로 설명된다.
아침 아홉 시라는 시간은 술에 취했다는 평가에 대한 첫 답이다. 개번타는 이 말에 청중의 주의를 모으는 연설의 도입이 있다고 설명한다.4 베드로는 청중이 본 현상을 부인하지 않고, 그 현상에 붙인 취했다는 해석을 고친다.
16-18절: 하나님이 자기 영을 부어 주신다는 약속
“이것은 예언자 요엘을 통해 말씀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날들에 내가 나의 영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 주겠다. 너희 아들들과 딸들이 예언하고, 너희 젊은이들이 환상을 보며, 너희 노인들이 꿈을 꾸게 될 것이다. 그날들에 나의 남종들과 여종들에게도 나의 영을 부어 주겠다. 그들이 예언할 것이다.” (16-18절)
베드로는 지금 일어난 일을 요엘의 말씀에 연결한다. 개번타는 원래의 그 뒤에라는 표현이 마지막 날들에로 바뀌어 성령의 선물을 하나님이 이루실 마지막 구원의 때에 연결한다고 설명한다.5 지금의 경험은 하나님의 약속이 사람들의 삶에 이른 사건으로 소개된다.
인용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는 설명이 더해진다. 홀러데이는 이 첨가가 예언 속의 나를 하나님으로 분명하게 지정한다고 읽는다.6 성령을 부어 주신다고 약속한 분은 하나님이고, 부어 주실 대상은 자기 영이다. 사람들의 언어와 예언은 그 영을 받은 결과다.
아들과 딸, 젊은이와 노인, 남종과 여종이 함께 언급된다. 홀러데이는 이 약속이 예언을 특정 집단의 독점적인 자격에서 풀어 준다고 설명한다.7 개번타는 남종과 여종 앞의 나의라는 말이 그들을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사람들로도 설명한다고 읽는다.8 하나님은 성령의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성별과 나이, 사회적 지위 가운데 한 종류로 제한하지 않으신다.
19-21절: 주님의 날과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
“내가 위로 하늘에 놀라운 일들을, 아래로 땅에 표징들을 나타내겠다. 피와 불과 연기의 기둥이 있을 것이다. 크고 영광스러운 주님의 날이 오기 전에 해는 어둠으로, 달은 피로 바뀔 것이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모두 구원을 받을 것이다.” (19-21절)
하늘 위와 땅 아래의 표징들은 약속의 규모를 넓힌다. 개번타는 이 묵시적 영상이 성령을 받는 사건을 마지막 구원과 심판의 때에 연결한다고 읽는다.9 베드로는 새 언어를 말하는 현상을 듣고 즐기는 경험만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온 세상에 이루실 일의 시작으로 소개한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에게 구원이 약속된다. 요엘의 문맥에서 이 주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다.10 모든 사람에게 영을 부어 주신다는 말에, 그 주님을 부르는 모든 사람의 구원이라는 말이 이어진다. 예언의 외침과 구원을 구하는 부름이 같은 약속 안에 있다.
22-23절: 하나님이 일하신 예수와 사람들이 죽인 예수
“이스라엘 사람 여러분, 이 말을 들으십시오.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께서 그분을 통해 여러분 가운데 행하신 능력과 놀라운 일과 표징으로 여러분에게 확인해 주신 분입니다. 여러분 자신도 이를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정해진 뜻과 미리 아심에 따라 넘겨진 이분을, 여러분은 무법자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22-23절)
베드로는 예수의 이름을 꺼내 그분을 통해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말한다. 홀러데이는 능력과 놀라운 일과 표징이라는 표현이 누가복음에 기록된 예수의 활동을 간추린다고 설명한다.11 이 문장의 중심은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 청중 가운데 일하셨다는 사실이다.
같은 예수가 죽임을 당했다. 개번타는 이 죽음에 하나님의 계획과 사람들의 행동이 함께 서술된다고 읽는다.12 하나님의 뜻에 따른 일이었다는 진술이 청중의 행위를 없애지는 않는다. 베드로는 그들이 알고 있던 예수의 일과 그들이 가담한 죽음을 나란히 말한다.
무법자들의 손이라는 표현은 로마인들이 집행한 처형을 가리킬 수 있다. 개번타는 율법의 범위 밖에 있는 이방인이라는 뜻과, 예수를 죽인 행위의 위법성을 강조하는 뜻을 함께 소개한다.13 청중에게 한 고발은 그 처형을 통해 하나님이 확인해 주신 예수를 거절했다는 책임에 있다.
24절: 하나님이 예수를 죽음에서 일으키심
“하나님께서는 죽음의 고통을 풀어 이분을 일으키셨습니다. 죽음이 이분을 붙들고 있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24절)
죽임을 당한 예수를 일으키신 주어는 하나님이다. 개번타는 22-24절의 긴 문장에서 하나님이 일으키셨다는 동사가 앞의 행위들을 모으는 중심이라고 설명한다.14 청중이 예수에게 한 행동이 그분의 마지막 상태를 정하지 못했다.
죽음의 고통을 풀었다는 표현에는 죽음이 사람을 붙드는 힘이라는 영상이 있다. 본문은 일으키셨다, 풀어 주셨다, 붙들고 있을 수 없었다는 말로 같은 부활을 되풀이한다. 베드로는 예수에게 일어난 일을 하나님이 죽음의 지배를 깨뜨리신 사건으로 전한다.
25-28절: 다윗의 말로 전해지는 생명의 소망
“다윗이 그분에 관하여 말합니다. 나는 언제나 주님을 내 앞에 뵈었습니다. 그분이 내 오른쪽에 계셔서 나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고 내 혀가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소망 가운데 살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내 생명을 죽은 사람들의 세계에 버려 두지 않으시며, 주님의 거룩한 이가 썩음을 겪게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내게 생명의 길을 알려 주셨고, 주님의 얼굴 앞에서 기쁨으로 나를 채우실 것입니다.” (25-28절)
베드로는 예수의 부활을 설명하며 다윗의 시편을 인용한다. 홀러데이는 여기서 시편의 화자가 하나님이 자기 오른쪽에 계셔서 흔들리지 않는다고 고백한다고 설명한다.15 그 사람은 자기 힘만으로 죽음을 이긴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버려 두지 않고 생명의 길을 여신다고 말한다.
거룩한 이가 썩음을 겪지 않는다는 약속은 육체의 소망에까지 미친다. 죽은 사람들의 세계를 가리키는 하데스(ᾅδης)와 육체의 썩음이 함께 등장한다. 하나님 앞의 기쁨은 죽음을 그대로 둔 채 마음만 위로하는 소망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29-31절: 다윗의 무덤과 그리스도의 부활
“형제 여러분, 조상 다윗에 관하여는 제가 거리낌 없이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분은 죽어 묻혔고 그분의 무덤은 오늘까지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다윗은 예언자였고, 자기 후손 가운데 한 사람을 자기 보좌에 앉히시겠다고 하나님이 맹세하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미리 보아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하여 말했습니다. 그분은 죽은 사람들의 세계에 버려지지 않으셨고 그분의 육체는 썩음을 겪지 않았습니다.” (29-31절)
다윗이 죽어 묻혔다는 사실은 앞의 시편을 다윗의 개인적인 미래로만 읽는 데 어려움을 준다. 홀러데이는 베드로가 다윗을 예언자로 읽어, 그의 노래를 미래의 후손이 드리는 말로 해석했다고 설명한다.16 무덤이 남은 다윗과 죽음에 버려지지 않은 그리스도의 차이가 시편의 지시 대상을 바꾼다.
다윗에게 하신 하나님의 맹세도 그 해석에 들어간다. 그 후손이 보좌에 앉으리라는 약속과 그리스도의 부활이 연결된다. 개번타는 다윗이 예수와 대비되는 죽은 조상이면서, 동시에 그 예수의 부활을 전하는 예언자로 사용된다고 설명한다.17 두 역할이 베드로의 부활 증언에 같은 근거로 쓰인다.
32절: 이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는 사도들
“하나님께서 이 예수를 일으키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 일의 증인입니다.” (32절)
베드로는 이 예수라고 다시 말한다. 앞에서 능력을 행했고 십자가에 못 박힌 분과, 지금 부활의 증언이 가리키는 분은 같은 예수다. 사도들은 성경의 가능성만 설명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의 증인으로 서 있다.
개번타는 이 구절에서 설교가 부활의 결과를 설명하는 절정에 이른다고 읽는다.18 함께 선 사도들의 증언이 예수와 다윗의 차이에 관한 성경 해석을 실제 사건에 연결한다.
33절: 아버지에게서 받아 성령을 부어 주심
“그러므로 하나님의 오른쪽으로 높임을 받으신 이분이 아버지에게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으시고, 여러분이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습니다.” (33절)
예수는 하나님에게 높임을 받으셨다. 하나님의 오른쪽이라는 표현은 그 높임을 받은 위치와 권한을 말한다. 홀러데이는 부활한 메시아가 하나님의 현존에 높여져, 아버지에게서 성령의 약속을 받아 부어 주시는 관계로 읽는다.19 부활과 성령의 선물이 같은 구원의 사건에 연결된다. 패트릭 슈라이너는 예수의 권한이 아버지에게서 주어진 권한이라고 설명하면서, 높여진 예수가 지금 성령을 부어 주시고 다스리시는 분임을 강조한다.20
이 구절의 하나님은 아버지라고 불린다. 예수는 그 아버지에게서 받으신 분이며, 사람들에게 부어 주신 분이다. 개번타는 요엘의 인용에서 하나님이 하신다는 부어 주심이 여기서 예수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설명한다.21 하나님과 예수의 구별과 공동 활동이 한 문장 안에 있다.
그 선물은 성령이며, 사람들이 보고 듣는 말과 행동에 나타난다. 개번타는 2012년 논문에서도 이 구절의 아버지와 높임을 받은 예수 및 성령이 서로 깊이 연결된 구원이라고 읽는다.22 성령의 선물을 예수의 부활과 떼어 설명하면 베드로가 오순절을 해설하는 근거가 사라진다.
34-35절: 다윗의 주님과 하나님의 오른쪽
“다윗은 하늘로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직접 말합니다. 주님께서 나의 주님께 말씀하셨다.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판으로 삼을 때까지 내 오른쪽에 앉아라.” (34-35절)
베드로는 다윗과 예수의 차이를 다시 말한다. 다윗은 하늘로 올라간 분이 아니다. 그가 나의 주님이라고 부른 분에게 하나님의 오른쪽 자리가 주어진다. 홀러데이는 시편 110:1의 첫 주님을 야훼, 둘째 주님을 다윗보다 높은 메시아로 읽는다.23
시편 16의 죽음에 버려지지 않는 분과 시편 110의 오른쪽에 앉으신 분을 함께 읽으면, 부활과 높임이 이어진다. 홀러데이는 이 두 시편을 병치한 베드로의 설교가 하나님이 예수에게 하신 일을 두 단계로 설명한다고 읽는다.24 예수를 일으키신 하나님은 그분에게 원수들을 다스리는 지위를 주셨다.
36절: 하나님이 주님과 그리스도로 삼으신 예수
“그러므로 이스라엘 온 집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께서 주님과 그리스도로 삼으셨습니다.” (36절)
같은 예수에 관하여 청중과 하나님이 하신 일이 다시 대비된다. 개번타는 문장의 마지막에 배치된 하나님이 삼으셨다는 말과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말이 이 차이를 날카롭게 표현한다고 설명한다.25 청중이 내린 판단을 하나님이 부활과 높임으로 바꾸셨다.
에포이에센(ἐποίησεν)은 만드셨다 또는 삼으셨다로 옮겨진다. 이 문장의 목적어는 이미 활동하고 죽임을 당한 이 예수이며, 주님과 그리스도가 그분에게 귀속된 지위다. 홀러데이는 앞의 두 시편이 부활한 메시아와 높임을 받은 주님을 같은 분으로 설명한다고 읽는다.26 하나님이 예수라는 존재를 이때 처음 만들어 내셨다는 이야기는 이 문장의 순서와 맞지 않는다.
슈라이너는 누가복음 1:43에서 예수가 이미 주님으로 불리셨다는 점을 근거로, 36절을 그 주권이 공개적으로 확인되고 행사되는 새로운 지위에 세워진 사건으로 읽는다.27 높임은 그분의 이전 정체성을 지우는 변화보다, 거절과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누구이신지 하나님이 확증하신 일이다.
이제 앞의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의 구원도 예수의 주님 되심에 연결된다. 요엘의 주님은 하나님이고, 베드로가 선포한 주님은 하나님이 높이신 예수다. 개번타는 사도행전에서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며 두 호칭의 관계가 밀접해진다고 설명한다.28 그 연결은 예수가 어떤 분인지를 묻는 해석의 핵심이 된다.
37절: 마음이 찔린 청중의 질문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나머지 사도들에게 물었습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37절)
청중이 설교에 응답한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고발과 하나님이 그분을 주님으로 세우셨다는 증언이 그들의 마음에 함께 이른다. 홀러데이는 이 대목에서 베드로의 독백이 청중과의 대화로 바뀐다고 읽는다.29
그들은 사도들에게 형제라고 부르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다. 개번타는 이 질문이 요한의 설교를 듣고 응답하던 사람들의 질문(눅 3:10)을 되풀이한다고 설명한다.30 지금 들은 말에 어떤 삶으로 응답할지가 그들의 관심이다.
38-39절: 예수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와 성령의 선물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회개하십시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죄를 용서받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약속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 그리고 멀리 있는 모든 사람, 곧 우리 주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졌습니다.” (38-39절)
베드로는 회개와 세례를 요구한다. 홀러데이는 예수의 이름이 세례를 받는 사람의 새로운 소속과 권한의 근거를 표현한다고 읽는다.31 청중은 자신들이 거절했던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 관계 안으로 들어간다.
성령은 그들에게 주어질 선물이다. 개번타는 회개와 세례 뒤에 성령의 선물이 연결되지만, 사도행전의 여러 장면에서는 그 순서와 표현이 하나의 고정된 절차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32 이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과 예수의 활동이 모든 사람의 종교적 행위에 따라 자동으로 실행되는 힘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멀리 있는 모든 사람에게도 약속이 주어진다. 개번타는 이곳에서 이방인이 명시적으로 지칭되지는 않지만, 그 지리적인 범위가 사도행전의 끝까지 넓어질 약속을 담는다고 읽는다.33 홀러데이는 이사야 57:19와 사도행전의 전개를 연결하여 이방인도 포함된다고 설명한다.34 본문의 마지막 근거는 그들을 부르시는 우리 주 하나님이다.
교부들의 해석
크리소스토무스는 『사도행전 강해』 6에서 33절의 예수가 부어 주셨다는 말을 앞의 요엘 예언의 내가 부어 주겠다는 말에 연결한다. 그는 베드로가 아버지에게서 받았다는 말을 유지하면서도 예수 자신이 성령을 주시는 분이라고 증언했다고 읽는다.35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성령을 받음과 성령을 부어 주심을 함께 설명한다.
아타나시우스는 『아리우스파 반박』 II.12-14에서 삼으셨다는 말을 말씀의 본질이 창조되었다는 뜻으로 읽는 견해에 답한다.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라는 목적어를 근거로 그 선언을 말씀의 실제 인성과 사람들을 향한 주권에 연결한다.36 말씀이 새로 생긴 분이 되는 변화와, 사람이 되신 그분의 주권이 드러나는 사건은 다르다.
그는 II.18에서 성령을 받는 피조물과 성령을 권위 있게 주시는 아들을 구별한다.37 같은 예수가 삼으셨다는 말의 대상이며 성령을 부어 주시는 분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령을 주시고 인간의 삶에서 주님으로 세워지셨다는 해석이다. 그 논증에는 아들이 성령을 본래 나누어 주시는 창조주라는 다른 본문들의 판단이 들어 있다.
높임과 성령의 선물에서 동일 본질을 논증함
이 설교의 중심 주어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예수를 통해 능력을 행하셨고, 죽은 예수를 일으켜 높이셨다. 높임을 받은 예수는 아버지에게서 성령을 받아 사람들에게 부어 주신다. 개번타는 이 관계를 예수가 하나님의 대행자임을 부활이 확인하는 사건으로 설명한다.38 본문 안에는 실제로 하나님이 주시고 예수가 받으시는 관계가 있다.
동일 본질의 해석은 그 받으심과 높임이 예수의 실제 인간 삶에 속한다는 판단을 사용한다. 아타나시우스가 이 단락만의 삼으셨다는 동사에서 그 판단을 만든 것은 아니다. 태초의 말씀과 창조주의 지위에 관한 본문을 함께 읽어, 원래 주님이신 분이 인간의 삶을 취하셨고 그 삶에서 죽음과 높임을 겪으셨다고 설명한다.
성령을 부어 주는 권한은 이 연결을 더 강하게 한다. 요엘의 하나님이 약속한 자기 영의 선물을 예수가 친히 나누어 주신다. 이 권한을 하나님이 피조된 대표자에게 맡겼다고 읽을 가능성도 본문의 받으셨다는 표현에 기대어 제기될 수 있다. 따라서 그 권한의 신적 성격은 창조 본문에 드러난 아들의 지위, 하나님의 영을 본래 아시는 성령의 관계와 함께 판단하게 된다.
그 본문들을 연결하면 아들이 주시는 것은 하나님과 독립된 다른 신의 능력이 아니라 한 하나님 자신의 성령과 생명이다. 아버지와 아들 및 성령이 같은 구원을 이루신다는 관계와 세 분의 신적 지위는, 나뉘지 않는 하나의 신성을 설명하는 동일 본질의 근거가 된다. 신자는 성령을 선물로 받고, 아들은 성령을 주시는 분으로 하나님 자신의 구원을 이루신다.
개번타의 2012년 논문은 신약의 하나님, 예수, 성령의 깊은 관계가 언제나 사람의 구원을 설명하는 데 놓인다고 말한다.39 이 설교도 그 관계를 청중의 응답에 연결한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그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며, 하나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받는 삶이 그들에게 열렸다.
각주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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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ael W. Holmes 편, The Greek New Testament: SBL Edition (2010), 행 2:14-39를 따른 필자 번역. 고정 커밋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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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l R. Holladay, Acts: A Commentary, New Testament Library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16),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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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rick Schreiner, Acts: The Christian Standard Commentary, 1st ed. (Nashville: B&H Publishing Group, 2022), 133-135, “Jesus Was Exalted (2:33-36).” 고든컨웰 도서관에서 연결된 DTL / Ebook Central 실제 전자책 쪽수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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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6, 행 2:33 해설, 공개 NPNF 영어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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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나시우스, 『아리우스파 반박』 II.12-14, 공개 NPNF 영어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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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나시우스, 『아리우스파 반박』 II.18, 같은 공개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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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venta, Acts,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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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venta, “Pentecost and Trinity,” 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