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의 세례와 삼자 관계
마 3:13-17의 예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세례를 받는다. 하나님의 영이 내려오고 하늘의 음성은 그를 사랑하는 아들로 확인한다. 앞선 아들 관계와 실제 순종, 성령을 받으며 시작하는 사명이 한 사건에 서술된다.1 마 28:19는 제자들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에 연결한다. 현재 독립 주해는 19절이며, 16-18절의 권한·경배와 20절의 현존에 대한 전체 범위 원고는 아직 없다.2
이 두 단락은 세 이름의 구별과 구원받는 사람의 소속을 선명하게 한다. 세례를 받는 사람의 지위와 그 세례의 이름이 되는 분들의 지위는 다르다. 단수 이름의 수만으로 본질을 정의하는 설명보다, 그 이름에 속하여 제자가 되고 아들의 사명에 참여하는 관계가 마태의 서술에 가깝다.
마가복음의 용서와 선함
막 2:1-12는 하나님 한 분의 용서 권한이라는 질문을 인자의 땅 위 권한과 치유로 연결한다. 예수 자신의 영이라는 8절의 표현은 그의 내적 지각을 서술한다. 성령의 이름을 직접 적은 구는 아니다.3 마커스는 인자에게 맡겨진 권한을 강조한다.4 크리소스토무스는 용서와 은밀한 생각의 앎이 하나님에게 고유하다는 전제에서 아버지와 동등한 권한을 논한다.5 위임이라는 설명과 고유 활동이라는 설명은 같은 치유를 서로 다른 존재 관계에 연결한다.
막 10:17-18의 예수는 선한 선생이라는 호칭의 이유를 묻고 하나님 한 분의 선함을 말한다. 프랑스는 이 질문을 숨은 신성 고백의 요청으로 읽지 않는다.6 마커스는 뒤의 예수 행동이 하나님의 선함을 드러낸다고 읽고,7 힐라리우스는 그 선한 활동을 아들의 신적 본성과 연결한다.8 교부 인용에는 마태 평행의 젊은 사람과 선한 일도 들어 있다. 마가의 질문과 교부의 복합 인용이 같은 발화 형태는 아니다.
아들도 모른다는 진술
막 13:32는 그날과 그때를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고 적는다. 인성에 따라 또는 알리려 하지 않는다는 문구는 이 문장에 없다. 뒤의 종과 문지기 비유는 때를 모르는 제자들의 깨어 있음으로 이어진다.9
아타나시우스는 시간을 창조한 말씀의 앎을 전제로 인성의 무지를 설명하고,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오스는 하나님으로 앎·인간으로 무지와 아버지를 원인으로 하는 앎을 논한다.10 이 수용은 아들의 무지를 더 넓은 성육신 및 부자 관계 안에 해석한다. 마가복음에서 직접 확인한 권한·선함·무지는 각각 다른 단락에 있으므로, 용서 권한 하나로 무지의 진술까지 바꾸는 설명은 가까운 문맥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현재 다섯 원고의 기여는 삼자 관계, 예수의 독특한 권한, 아버지의 고유한 선함과 앎을 구체적으로 나누어 서술하는 데 있다. 동일 본질의 해석이 이 자료들을 설명하려면 아들의 실제 인간 삶과 아버지에게서 오는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본문별 연구
| 번호 | 본문과 제목 |
|---|---|
| 01 | 마태복음 28:19: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 |
| 34 | 마태복음 3:13-17: 모든 의를 이루시는 예수와 세례 때의 증언 |
| 41 | 마가복음 13:32: 그날을 모르는 아들과 알고 계신 아버지 |
| 57 | 마가복음 2:1-12: 죄를 용서하는 인자의 권한 |
| 58 | 마가복음 10:17-18: 선하신 하나님과 예수의 되물음 |
각주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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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번 마태복음 3:13-17: 모든 의를 이루시는 예수와 세례 때의 증언. 고정 SBLGNT의 해당 본문과 원고의 문장별 자료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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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번 마태복음 28:19: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 고정 SBLGNT의 해당 본문과 원고의 문장별 자료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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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번 마가복음 2:1-12: 죄를 용서하는 인자의 권한. 고정 SBLGNT의 해당 본문과 원고의 문장별 자료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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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el Marcus, Mark 1-8: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Anchor Yale Bible 27 (Doubleday 원판 2000, 첫 페이퍼백 2005, Yale 제공 Logos 디지털본), 222-223쪽의 인자와 위임 설명. 해당 본문의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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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소스토무스, 『중풍병자에 관하여』 6-7, NPNF 영어의 용서·숨은 생각의 앎과 동등 권한 논증. 57번의 직접 독해를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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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T. France, The Gospel of Mark: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IGTC (Grand Rapids and Cambridge: Eerdmans; Carlisle: Paternoster, 2002), 401-402쪽. 해당 본문의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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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el Marcus, Mark 8-16: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Anchor Yale Bible 27A (New Haven and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2009), 725-728쪽. 해당 본문의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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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라리우스, 『삼위일체론』 IX.15-18, NPNF 영어, 선함의 질문과 선한 행동·본성 설명. 마태와 마가 표현의 결합은 58번 대조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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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번 마가복음 13:32: 그날을 모르는 아들과 알고 계신 아버지. 고정 SBLGNT의 해당 본문과 원고의 문장별 자료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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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나시우스, 『아리우스파 반박』 III.42-46;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오스, 『신학 강론』 30.15-16. 41번에서 직접 읽은 NPNF 영어. 그리스어 비평판의 독립 대조 자료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