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길을 떠나실 때 한 사람이 달려와 무릎을 꿇고 질문한다. 그의 첫마디는 예수를 부르는 호칭이며 그 뒤에 영생에 관한 질문이 붙는다. 예수는 그 질문의 답에 앞서 호칭의 의미를 되묻는다.

막 10:17

그분이 길을 떠나실 때 한 사람이 달려와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물었다. “선하신 선생님,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1

달려옴과 무릎을 꿇음은 그 질문이 가벼운 인사가 아님을 드러낸다. 프랑스는 이 두 행동을 진지함과 긴급한 관심에 연결하고, 선하신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이 복음서에서 독특하다고 설명한다.2 마커스도 그 자세와 말이 답을 줄 수 있는 분에 대한 존경을 표현한다고 읽는다.3 그는 예수가 답할 수 있다는 기대를 행동과 호칭으로 말한다.

τί ποιήσω는 무엇을 하겠느냐는 질문이다. 프랑스는 예수의 다음 답도 행위와 따름으로 구성되므로, 이 질문 하나에 후대의 믿음과 행위 논쟁을 넣지 않는다.2 영생을 얻는다는 κληρονομήσω는 그 생명을 받아 누릴 길을 묻는 말이다. 마커스는 이를 하나님이 약속한 미래 생명에 참여하는 유대적 기대에 연결한다.3

막 10:18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왜 나를 선하다고 부르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

Τί με λέγεις ἀγαθόν은 선하다는 호칭을 자신에게 붙이는 이유를 묻는다. 그 뒤 οὐδεὶς ἀγαθὸς εἰ μὴ εἷς ὁ θεός는 하나님 한 분에게 선함을 귀속한다. 프랑스는 인간의 선함을 하나님의 절대적 선함에 비추어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응답으로 읽는다.4 이 문장에는 내가 선하지 않다는 직접 진술은 없다. 질문받는 말은 그가 예수에게 붙인 선하다는 호칭이다.

마커스는 하나님 한 분이라는 구문을 쉐마의 유일신 고백에 연결한다.5 앞의 2:7에서 율법학자들은 같은 εἰ μὴ εἷς ὁ θεός로 죄 용서의 권한을 말했다.1 여기서는 예수가 같은 구문을 선함에 사용한다. 하나님의 고유한 지위가 두 장면의 논의에 각각 관계된다.

프랑스는 이 응답을 예수의 신성을 고백하라는 숨은 요청으로 읽는 해석에 반대한다. 그에게 이 대화의 직접적인 주제는 질문자가 생각하는 선함과 영생에 이르는 행위다.4 마커스는 먼저 하나님과 인간의 차이를 강조하는 말을 읽고, 뒤의 예수가 그 사람을 사랑하며 따르도록 부르시는 행동에서 하나님의 선함과 능력이 나타난다고 설명한다.6 그는 선함의 근원이 하나님이라는 말과 예수의 자비로운 행위를 연결한다.

질문 뒤의 명령과 따름

필요한 다음 문맥에서 예수는 19절에 계명들을 말씀하시고, 20절의 응답을 들은 뒤 21절에서 그를 사랑하시며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자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신다. 22절은 그가 많은 재산을 지녔고 슬퍼하며 떠났다고 밝힌다.1 이 진행에서 영생의 질문은 예수의 구체적 부름에 응답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마커스는 21절의 사랑과 영적 진단을 하나님에게서 온 선함의 행동으로 설명한다.7 프랑스는 18절의 질문을 하나님의 선함에 비추어 삶을 평가하는 문맥에 둔다.4 두 사람 모두 호칭을 한 번 고치는 말만 떼어 놓기보다 그 뒤의 계명과 부름에 연결한다.

힐라리우스의 선함과 신적 본성 해석

힐라리우스는 이 구절이 아들의 신적 본성을 부정하는 근거로 사용되었다고 소개한다. 그는 예수가 선하다는 말을 싫어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평범한 율법 선생으로만 부르는 이해에 답하셨다고 읽는다.8 그 해석에서는 하나님 한 분의 선함을 인정하는 사람이 예수의 정체도 그 선함 안에서 알아야 한다.

그는 예수가 하늘의 보물을 약속하고 자신을 그 보물로 이끄는 안내자로 제시하는 행동을 선함의 시행으로 설명한다. 하나님에게 속한 선함과 능력을 예수가 행하시므로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결론을 제시한다.9 이 논증에는 아들이 하나님의 선한 본성을 지녔다는 전제와, 그 선함을 행하는 예수의 부름이 연결된다.

힐라리우스는 선한 선생이라는 호칭과 무슨 선한 일을 하겠느냐는 질문을 연결하며 질문자를 젊은 사람으로 부른다.8 그 인용과 설명에는 마태복음 평행 전승의 표현도 들어 있다. 마가의 17절은 이름 없는 한 사람과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적는다. 그 사람이 마음속으로 예수를 어떻게 평가했는지는 두 절에 서술되지 않는다.

예수는 자신의 호칭에 대한 이유를 물으며 하나님의 고유한 선함을 말씀하셨다. 프랑스는 이 질문을 신성 고백의 요청으로 읽지 않고, 마커스는 뒤의 자비로운 행동이 하나님의 선함을 드러낸다고 본다. 힐라리우스는 그 행동을 아들의 신적 본성과 연결한다. 직접적인 질문과 후대의 신적 본성 논증 사이에는 예수의 선한 활동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관한 이 해석들이 있다.

핵심주장과 원자료 대조 · 자료와 판본 확인

각주와 자료

  1. Michael W. Holmes 편, The Greek New Testament: SBL Edition (2010), 고정 Mark 전문, CC BY 4.0. 필자 번역, 독립 주해 10:17-18, 필요한 뒤 문맥 10:19-22와 비교 구문 2:7.

    본문 1 본문 2 본문 3

  2. R. T. France, The Gospel of Mark: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IGTC (Grand Rapids and Cambridge: Eerdmans; Carlisle: Paternoster, 2002), 401쪽.

    본문 1 본문 2

  3. Joel Marcus, Mark 8-16: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Anchor Yale Bible 27A (New Haven and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2009), 725쪽.

    본문 1 본문 2

  4. R. T. France, The Gospel of Mark: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IGTC (Grand Rapids and Cambridge: Eerdmans; Carlisle: Paternoster, 2002), 401-402쪽.

    본문 1 본문 2 본문 3

  5. Joel Marcus, Mark 8-16: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Anchor Yale Bible 27A (New Haven and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2009), 721·7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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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Joel Marcus, Mark 8-16: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Anchor Yale Bible 27A (New Haven and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2009), 725-7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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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Joel Marcus, Mark 8-16: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Anchor Yale Bible 27A (New Haven and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2009), 727-7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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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힐라리우스, 『삼위일체론』 IX.15-18, E. W. Watson·L. Pullan 번역, NPNF 2/9 (1899), Philip Schaff·Henry Wace 편, New Advent 제공 영어, IX.15-16·18. 선한 일을 묻는 질문과 젊은 사람이라는 설명은 마가의 두 절과 인용 형태가 다르다.

    본문 1 본문 2

  9. 힐라리우스, 『삼위일체론』 IX.15-18, E. W. Watson·L. Pullan 번역, NPNF 2/9 (1899), Philip Schaff·Henry Wace 편, New Advent 제공 영어, IX.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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