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은 요단에서 회개를 촉구하고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있다. 마태복음은 그 요한에게 예수가 찾아오는 장면을 이어 서술한다. 예수는 세례를 받으러 오고, 요한은 그 요청을 만류한다. 이야기는 그 대화부터 진행된다.1

13절: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신 예수

“그때 예수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리에서 요단으로 그에게 오셨습니다.” (13절, 필자 번역)2

예수는 갈릴리에서 요단으로 온다. 앞에서는 사람들이 예루살렘과 유대 및 요단 부근에서 요한에게 왔다고 서술했다. 데이비스와 앨리슨은 그 사람들과 다른 예수의 출발지에 주목한다.3 본문은 예수가 요한이 세례를 베푸는 곳으로 직접 찾아온 일을 말한다.

세례를 받으려고라는 목적 표현은 예수의 의도를 분명하게 한다. 그는 우연히 요한의 세례 현장에 들어온 인물이 아니다. 데이비스와 앨리슨은 이 표현이 다음 대화에서 드러나는 예수의 의지와 연결된다고 설명한다.4 예수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한다.

14절: 요한이 만류한 이유

“요한은 그를 말리려고 하면서 말했습니다. ‘제가 당신께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당신이 제게 오십니까?’” (14절)

요한은 예수의 요청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사람은 자신이다. 루츠는 앞에서 요한이 자기보다 더 강한 분을 예고한 사실에 이 반응을 연결한다.5 자신보다 더 큰 분에게 자신이 세례를 베푸는 관계를 요한은 납득하지 못한다.

말리려고 했다는 디에콜뤼엔(διεκώλυεν)은 그 시도를 서술하는 미완료형이다. 데이비스와 앨리슨은 이미 성공적으로 막았다는 의미보다 예수를 저지하려 했다는 뜻으로 읽는다.6 요한은 자기가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판단을 말하고, 예수는 그 말에 답한다.

15절: 함께 모든 의를 이룸

“예수가 그에게 답하셨습니다. ‘지금은 허락하십시오. 우리가 이렇게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합니다.’ 그때 요한은 그를 허락했습니다.” (15절)

지금 허락하라는 요청은 요한이 제기한 관계의 문제에 대한 예수의 답이다. 예수는 세례를 받는 일이 합당하다고 말한다. 그 근거는 모든 의를 이루는 데 있다. 루츠는 이 의를 예수가 실천하는 하나님의 온전한 뜻으로 읽는다. 요한의 세례가 율법에 직접 규정된 의식이 아니므로, 여기서 하나님의 뜻은 그 규정된 의식들의 범위보다 넓다.7

이루다라는 플레로오(πληρόω)에 무게를 두는 읽기도 있다. 데이비스와 앨리슨은 마태복음에서 이 동사가 성경의 성취에 자주 쓰인다는 사실을 근거로, 예수가 하나님의 약속을 순종하여 이루는 의미를 우선한다. 의는 그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에 맞게 행동하는 삶이다.8 루츠가 온전한 뜻의 실천을 먼저 설명한다면, 이들은 그 뜻이 성경의 약속과 연결되는 성취를 먼저 설명한다.

우리라는 헤민(ἡμῖν)은 이 대화를 나누는 예수와 요한을 함께 가리킨다. 데이비스와 앨리슨은 이를 예수만의 장엄한 복수나 모든 독자를 직접 포함하는 표현보다 두 사람이 함께 행할 일로 읽는다.9 예수는 세례를 받고 요한은 세례를 베푼다. 두 사람이 그 일에서 하나님의 뜻을 함께 이룬다.

이 대화 안에서는 예수의 요청을 온전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순종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다. 본문은 그 의를 이루기 위하여 두 사람이 지금 해야 할 일을 설명한다. 요한은 예수의 답을 듣고 허락한다. 데이비스와 앨리슨은 예수의 말을 듣고 행하는 요한의 응답이 제자의 순종을 닮았다고 설명한다.10 처음의 만류는 예수의 설명을 받아들이는 행동으로 바뀐다.

16절: 예수께 내려오는 하나님의 영

“세례를 받으신 예수는 곧 물에서 올라오셨습니다. 보십시오, 하늘이 열렸고, 그는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내려와 자신에게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16절)

세례를 받는 행위는 짧은 분사로 지나가고, 예수가 물에서 올라온 뒤의 일이 서술된다. 그는 보았다는 문장의 자연스러운 주어다. 여기서 따른 SBLGNT에는 하늘이 열렸다는 말 뒤에 그에게라는 아우토(αὐτῷ)가 없다.11 일부 판본과 주석의 그에게 하늘이 열렸다는 표현은 이 번역의 그리스어 본문과 다르다.

다른 사람들까지 그 일을 보았는가에 관해서는 해석의 범위가 갈린다. 루츠는 마태가 사건을 눈에 보이는 일로 서술하며, 뒤의 음성이 요한과 무리들에게 예수를 알리는 기능을 가진다고 읽는다.12 데이비스와 앨리슨은 예수와 요한이 사건을 함께 알게 된 읽기를 유력하게 보면서, 그 밖의 목격자가 누구였는지는 열어둔다.13 본문은 하늘이 열리는 일을 서술하고, 예수가 하나님의 영을 보았다고 말한다.

비둘기처럼이라는 호세이 페리스테란(ὡσεὶ περιστερὰν)은 그 내려옴을 설명한다. 데이비스와 앨리슨은 하나님의 영, 물, 새의 이미지가 함께 나오는 창세기 1:2를 가장 설득력 있는 배경으로 읽고, 메시아의 사역에서 새 창조가 시작되는 의미를 찾는다.14 루츠는 마태가 왜 비둘기인지를 설명하지 않으므로 독자가 아는 여러 연상을 열어둔다.15 마태의 문장에서 비둘기와 연결되는 이는 예수가 아니라 그에게 내려오는 하나님의 영이다.

데이비스와 앨리슨은 성령의 내려옴을 예수의 메시아 사역이 시작되는 일로 읽는다. 그들은 이 일을 구약에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지도자 및 예언자들의 사명과 연결한다.16 예수는 실제로 성령을 받으며 사역에 들어가는 인물로 서술된다. 그에게 내려오는 성령은 사명을 확인하는 동시에 그 사명에 관계하는 하나님의 영이다.

17절: 하늘에서 예수를 아들로 확인하는 음성

“보십시오, 하늘에서 음성이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내가 기뻐하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 (17절)

음성은 너는이라는 직접 호명 대신 이 사람은이라는 지시로 예수를 소개한다. 루츠는 이 차이를 예수에게만 말하는 형식에서 그가 누구인지 다른 이들에게 알리는 형식으로 바뀐 것으로 읽는다.17 내 아들이라는 말은 하늘에서 말하는 이와 세례를 받은 예수를 아버지 및 아들의 관계로 묶는다.

데이비스와 앨리슨은 이 말에 시편 2:7의 아들 및 이사야 42:1의 선택된 종에 관한 언어가 함께 있다고 읽는다. 이사야의 그리스어 칠십인역 문장이 그대로 인용된 형식은 아니며, 기뻐함의 언어에는 다른 번역 형태가 작용한 것으로 설명한다.18 루츠는 마태가 여기서 이사야를 직접 인용하려 했다고 보기보다, 앞선 세례 전승의 음성을 전하며 나중의 12:18에서 이사야 본문을 이 장면과 연결한다고 읽는다.19 두 설명은 예수의 아들 및 종의 사명이 연결된다는 점을 공유하면서, 그 연결이 생긴 과정과 직접 인용 여부에서 다르다.

사랑하는 아들은 아버지의 기쁨과 함께 설명된다. 데이비스와 앨리슨은 아가페토스(ἀγαπητός)를 이 문맥에서 사랑하는이라는 형용사로 읽으며, 그 낱말 자체를 외아들이라는 뜻으로 옮기지는 않는다.20 본문은 이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과 기뻐함을 말한다.

이 음성의 아들은 마태복음 2:15에서 이미 내 아들로 소개된 예수다. 루츠는 마태가 예수를 처음부터 아들로 서술했기 때문에, 여기서 새로 아들이 되는 사건보다 그 아들을 확인하는 선언이 나온다고 읽는다.21 그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고,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내려왔으며, 하늘의 음성이 그를 사랑하는 아들로 확인했다. 이 순서에서 사명의 시작과 이미 가진 아들 관계가 함께 서술된다.

크리소스토무스의 세례 해석

크리소스토무스는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셨다는 성육신을 출발점으로 예수의 세례를 설명한다. 모든 의는 하나님의 명령을 이루는 일이며, 예수는 그것을 이루어 사람들에게 놓인 저주를 없애러 오셨다고 읽는다.22 마태의 한 장면을 성육신 및 구원의 전체 사명과 연결한 해석이다.

그는 비둘기 모양의 성령이 하늘의 이 사람이라는 음성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리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사람들은 세례를 베푸는 요한을 더 크게 볼 수 있지만, 성령은 세례를 받은 예수에게 내려와 그 아들을 가리킨다는 해석이다.23 아버지의 증언과 성령의 나타남은 같은 예수를 알린다.

그는 예수가 실제 인간 본성을 취하신 일과 성령이 잠시 비둘기 모양으로 나타난 일을 구별한다. 성령이 비둘기의 본성을 취한 사건으로 읽지 않으며, 그 모양의 차이에서 아들과 성령의 신적 존엄에 차등을 만들지 않는다.24 그가 설명한 성령의 나타남은 아들을 알리는 표지다.

아버지, 아들과 성령의 관계

이 장면에서 예수는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영은 그에게 내려오며, 하늘의 음성은 그를 자기 아들로 부른다. 세례를 받는 아들과 말하는 아버지는 서로 관계하는 분들이다. 성령은 아들에게 내려오는 하나님의 영으로 서술된다. 복음서 마지막의 28:19에서는 제자들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는 명령을 받는다.25 예수의 사명이 확인되는 이 장면의 세 주체는 제자들이 행할 세례의 이름에도 함께 나온다.

이 본문이 집중하는 내용은 예수의 순종, 성령을 받으며 시작하는 사명, 그를 아들로 확인하는 하나님의 증언이다. 요한복음 1:1-3과 골로새서 1:15-17은 아들의 창조 관계를 더 설명하고, 고린도전서 2:10-11은 성령이 하나님의 깊은 것들을 아는 관계를 설명한다.26 동일 본질의 종합 판단에서는 창조주 아들과 하나님 자신의 깊은 것들을 아는 성령이, 마태의 이 장면에서 실제 인간의 사명을 수행하는 예수와 어떤 관계를 갖는지가 함께 들어간다.

루츠는 마태가 이미 믿는 아들 관계를 예수의 순종에 집중시켰다고 설명한다. 아들 됨을 훌륭한 인간의 성품으로 환원하는 해석과 구별하면서, 하나님이 그 순종에 아들에 관한 선언으로 응답하신다고 읽는다.27 예수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성령을 받아 인간의 생활과 사역을 이어간다. 그 순종은 요한을 설득하여 함께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이 세례 장면에서 구체적으로 시작된다.

각주와 자료

  1. Ulrich Luz, Matthew 1-7: A Commentary on Matthew 1-7, trans. James E. Crouch, ed. Helmut Koester, rev. ed., Hermeneia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7), 140-141. 실제 설치 Logos 표제 및 판권과 140-146쪽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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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SBLGNT, 마태복음 3:13-17, 고정 커밋 c4d241a9c1c479a55b989ba35a4976c1d0b8052c. 이 그리스어 본문을 따른 필자 번역이다. 16절에서 하늘이 열렸다는 말 뒤의 αὐτῷ가 없는 판독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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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W. D. Davies and Dale C. Allison Jr.,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Gospel according to Saint Matthew, vol. 1, ICC (London and New York: T&T Clark, 2000; first published 1988, reprinted 2003), 321. 실제 설치 판권에 표시된 2000년 판 및 2003년 재쇄와 320-343쪽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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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Davies and Allison, Matthew,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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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Luz, Matthew 1-7,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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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Davies and Allison, Matthew,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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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Luz, Matthew 1-7, 14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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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Davies and Allison, Matthew, 1:326-327. 이들이 소개하는 Meier와 다른 원저의 직접 독해가 아니라, 이 주석의 채택 논거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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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Davies and Allison, Matthew, 1:325-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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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Davies and Allison, Matthew,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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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SBLGNT, 마 3:16. Luz의 해당 번역과 Davies 및 Allison의 각주 이문이 다루는 판독을 필자 번역의 저본과 구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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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Luz, Matthew 1-7,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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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Davies and Allison, Matthew,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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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Davies and Allison, Matthew, 1:333-334. 창세기 1:2 및 새 창조가 이 주석의 채택 설명이다. 열거한 모든 비둘기 배경 자료를 직접 읽은 인용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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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Luz, Matthew 1-7,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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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Davies and Allison, Matthew, 1:334-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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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Luz, Matthew 1-7,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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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Davies and Allison, Matthew, 1:336-339. 칠십인역 시편 및 이사야의 문장을 동일한 정도의 직접 인용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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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Luz, Matthew 1-7, 143-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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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Davies and Allison, Matthew, 1:34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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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Luz, Matthew 1-7, 143. 참조 Davies and Allison, Matthew, 1:335, 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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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크리소스토무스, 『마태복음 강해』 12.1, 3:13-15 해설. 공개 NPNF 영어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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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크리소스토무스, 『마태복음 강해』 12.2, 3:16-17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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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크리소스토무스, 『마태복음 강해』 12.3. 실제 인간 본성을 취함과 일시적인 비둘기 모양의 나타남을 비교하는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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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SBLGNT, 마 3:13-17; 28:19. 같은 고정 그리스어 본문과 마태복음 28장 원고의 해설을 대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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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요 1:1-3; 골 1:15-17; 고전 2:10-11. 같은 고정 SBLGNT와 각 본문별 원고의 필자 번역 및 해설을 대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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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Luz, Matthew 1-7, 144. 하나님이 순종에 응답하는 구조라는 그의 해석과 이미 가진 아들 관계의 확인을 함께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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