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도서 2장은 나이와 처지가 다른 교회 구성원들의 생활을 가르친다. 11절의 왜냐하면이라는 접속사는 그 생활의 근거를 하나님의 은혜에 둔다.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 지금 배워야 할 삶, 앞으로 기다리는 영광이 한 문장 안에서 이어진다.1

11절: 모든 사람을 향하여 나타난 구원의 은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오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11절, 필자 번역)2

나타났다는 동사의 주어는 하나님의 은혜다. 나이트는 그리스도의 오심과 구원의 사역에서 은혜가 역사적으로 드러났다고 읽는다.3 뒤의 14절은 자신을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행위로 그 구원의 내용을 설명한다. 성도들에게 가르치는 생활은 그 은혜를 받아 누리는 생활이다.

모든 사람이라는 범위는 바로 앞에서 다룬 종들도 포함한다. 나이트는 나이, 성별, 사회적 지위를 가리지 않는 모든 부류의 사람들로 읽는다.4 디도서의 권면을 받는 종들도 다른 사람들과 같은 구원 은혜의 대상이다. 구원의 자격을 사회적 신분에 따라 나누는 설명은 이 문장의 범위와 맞지 않는다.

12절: 은혜가 가르치는 현재의 생활

“그 은혜는 우리를 가르쳐, 경건하지 않은 삶과 세속적인 욕망을 버리고 이 시대에 절제하며 올바르고 경건하게 살게 합니다.” (12절)

우리를 가르친다는 파이데우우사(παιδεύουσα)의 주어는 앞의 은혜다.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버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치는 은혜다. 나이트는 교육과 훈련을 포괄하는 말로 읽는다.5 디벨리우스와 콘첼만은 헬라적 교육의 용법을 더 강조한다.6 본문에서는 은혜가 경건하지 않은 삶을 버리고 새로운 생활을 배우게 한다.

절제, 올바름, 경건은 같은 생활을 서로 다른 관계에서 설명한다. 나이트는 자신을 다스리는 삶, 다른 사람들에게 의롭게 행동하는 삶,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으로 풀어낸다.7 디벨리우스와 콘첼만은 이런 덕목의 배열이 당시 그리스 윤리와 가까우며, 가정의 생활 규칙을 구원의 역사에 연결하는 방식에 주목한다.8 종과 주인,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에게 요청된 행동이 같은 구원의 근거를 갖는다.

살아야 할 때는 이 시대다. 뒤에서 기다리는 영광이 나오지만, 은혜의 교육은 그때까지 유보되지 않는다. 현재의 욕망을 버리고 지금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 올바르게 행동하는 생활이 구원의 열매로 제시된다.

13절: 기다리는 영광과 하나님 및 구원자라는 호칭

“우리는 복된 소망, 곧 우리의 위대한 하나님이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다립니다.” (13절)

기다린다는 분사는 앞의 살아간다는 동사에 연결된다. 현재의 생활은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는 생활이다. 나이트는 복된 소망과 영광의 나타남을 같은 미래 사건의 두 측면으로 읽는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바라는 생명이 그리스도의 나타나심과 함께 실현된다는 설명이다.9

호칭의 문법은 토우 메갈루 테우 카이 소테로스 헤몬(τοῦ μεγάλου θεοῦ καὶ σωτῆρος ἡμῶν), 우리의 위대한 하나님과 구원자다. 하나의 관사 토우가 하나님과 구원자라는 두 단수 명사를 묶고, 뒤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나온다. 나이트는 두 호칭이 모두 예수를 가리킨다고 읽는다. 관사 구조, 한 인물에게 사용되던 하나님과 구원자라는 결합 호칭,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향한 소망, 다음 절의 그분이 자신을 주셨다는 연결이 그 근거다.10

디벨리우스와 콘첼만은 문장 형태 자체가 한 인물을 가리키는 해석에 유리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위대한 하나님과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구분하는 해석을 택한다. 목회서신의 나타나심 관련 진술들에서 그리스도가 하나님께 종속되는 관계를 유지한다고 보기 때문이다.11 이 읽기에서는 하나님이라는 명칭이 예수에게 직접 붙지 않는다. 예수는 하나님의 구원을 수행하는 구원자로 불린다.

다른 읽기는 하나님과 구원자를 한 인물에게 묶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그 두 호칭이 아닌 영광에 연결한다. 이때 예수는 우리 하나님이며 구원자이신 분의 영광이 나타나는 분이다. 에드워즈는 영광이라는 한 단어와 예수라는 이름 사이의 거리만으로 이 읽기를 배제하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이름이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전체 구절과 동격을 이루는 해석을 제시하기 때문이다.12 이 해석에서도 예수의 나타나심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건이다.

에드워즈는 디도서와 디모데전서가 같은 저자의 글이라는 전제에서, 두 본문에 모든 사람을 향한 구원, 경건한 생활, 자신을 내어주는 몸값 전승이 함께 나온다고 논증한다. 디모데전서 2:5가 하나님과 사람인 중보자 예수를 구분하므로, 디도서 2:13도 하나님과 예수를 구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결론짓는다.13 이 비교는 두 본문의 인격 구별을 설명한다. 디모데전서가 하나님과 예수를 서로 다른 인격으로 서술한다는 사실과, 디도서가 예수에게 하나님이라는 호칭을 붙일 수 있는가는 다른 질문이다. 디도서는 1:3-4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에게 각각 구원자라는 호칭을 사용하며 둘을 구별한다. 같은 호칭을 가진다고 같은 인격이 되는 구조가 아니다.

해리스는 에드워즈에게 직접 응답하며, 두 본문이 같은 기독론의 서로 다른 내용을 강조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디모데전서는 한 하나님과 한 중보자의 유일성 및 그 중보자의 실제 인성을 말하고, 디도서는 그 동일한 그리스도의 신성과 영광의 나타남을 말할 수 있다는 논증이다.14 디모데전서의 하나님 및 예수 구별이 디도서의 하나님 호칭을 배제한다는 결론에는, 그 인격 구별이 신적 호칭의 공유까지 배제한다는 전제가 더 필요하다.

13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바로 앞의 하나님과 구원자에 연결하는 읽기가 가장 자연스럽다. 14절의 자신을 내어주신 분도 이 예수 그리스도다. 두 대상을 나누는 읽기는 두 명사를 묶은 관사 구조의 결속을 약하게 읽어야 하고, 영광과의 동격을 택하는 읽기는 예수라는 이름을 더 먼 구절에 연결해야 한다. 해리스는 영광 구절 전체와 예수 이름의 동격이 구문상 어렵고, 다음의 자기 내어주심이 예수를 구원자로 설명하므로 구원자 호칭을 그 이름에서 떼는 것도 부자연스럽다고 반론한다.15 따라서 이 원고의 번역은 나이트의 읽기를 따른다. 이 읽기에서 예수는 하나님의 구원을 수행하는 분이며, 동시에 하나님과 구원자라는 두 호칭으로 불린다.

14절: 자신을 주시고 자기 백성을 깨끗하게 하신 분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소유의 백성을 깨끗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14절)

그분이라는 관계대명사 호스(ὃς)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이어 설명한다. 자신을 주셨다는 말은 그리스도가 구원을 위하여 치른 대가에 자기 자신이 포함된다는 뜻이다. 나이트는 마가복음 10:45의 몸값 진술과 디모데전서 2:6의 자기 내어주심을 함께 읽으며,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가리킨다고 설명한다.16 앞에서 기다린 영광의 주인공은 이 자기 내어주심을 행한 분이다.

속량의 목적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해방하는 데 있다. 나이트는 속량이 죄의 지배에서 사람들을 꺼내는 일이고, 정결하게 함이 그 사람들에게서 죄의 오염을 제거하는 일이라고 설명한다.17 본문은 행위의 용서와 함께, 그 불법을 계속 따르던 생활에서 벗어난 공동체를 말한다.

자기 소유의 백성이라는 라오스 페리우시오스(λαὸς περιούσιος)는 출애굽기 19:5와 신명기의 언약 백성 표현을 되살린다. 디벨리우스와 콘첼만은 출애굽기의 영향을 강조한다.18 나이트는 이 언어를 에스겔 37:23의 구원과 정결 약속에도 연결한다.19 디도서에서 그 백성을 자기 것으로 깨끗하게 하시는 주체는 예수다. 구약에서 하나님께 속한 백성을 설명하던 언어가 예수의 구원 행위를 설명한다.

에드워즈는 이 절을 『바나바 서신』 14:6과 비교하여, 이사야 42장과 49장의 구원 및 언약 전승이 함께 작용했을 가능성을 제안한다.20 어느 구약 구절의 영향에 무게를 두든, 자기 백성을 얻는 목적은 마지막의 선한 일을 향한 열심에 연결된다. 나이트는 이를 앞의 생활 권면에 다시 이어지는 구원의 응답으로 설명한다.21 그리스도는 백성을 자기 소유로 삼으시고, 그들이 실제로 선한 일을 하게 하신다.

같은 편지의 하나님, 그리스도와 성령

구원자라는 호칭은 디도서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에게 번갈아 붙는다. 1:3과 1:4, 2:10과 2:13, 3:4와 3:6이 그 배열을 이룬다. 나이트는 이 호칭의 공유가 어느 곳에서나 하나님만을 가리켜야 한다는 주장을 약화시킨다고 설명한다.22 1:4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를 구별하면서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원자로 부른다.

“그분은 이 성령을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주셨습니다.” (3:6, 필자 번역)23

3:4-7에서 구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고, 새롭게 하는 이는 성령이며,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성령을 부어주신다. 2:11-14에는 성령이 명시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 단락의 은혜, 자기 내어주심, 미래 소망은 3장의 구원과 갱신 및 영생의 소망에 연결된다. 성령은 같은 구원의 일 안에서 사람들을 새롭게 하신다.

2:13을 예수에 대한 하나님 호칭으로 읽어도, 3:6의 하나님과 예수의 구별은 유지된다. 하나님은 예수를 통하여 성령을 부어주시는 분이고, 예수는 자신을 주어 백성을 속량하신 구원자다. 하나님과 예수는 서로 구별되며, 성령과 함께 같은 백성의 구원과 갱신에 관여한다.

크리소스토무스가 읽은 위대한 하나님

크리소스토무스는 은혜가 나타남과 미래의 나타남을 두 사건으로 읽는다. 처음의 은혜는 죄를 용서하고 사람의 생활을 가르치며, 미래의 나타남은 그리스도가 행하시는 심판에 관계한다. 용서를 받은 사람의 생활이 은혜의 교육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해석이다.24

그는 13절의 우리의 위대한 하나님과 구원자를 아들에게 붙이고, 아들이 아버지보다 열등하다는 견해에 이 호칭으로 답한다. 위대함을 다른 존재보다 더 큰 정도로 읽지 않고, 비교할 대상이 없는 하나님의 위대함으로 읽는다.25 이때 동일한 신적 본성을 향한 논거는 두 호칭을 예수에게 붙이는 문법에 더하여, 하나님께 적용된 위대함은 절대적인 위대함이라는 전제를 포함한다.

그의 해석에서도 구원의 목적은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백성이다. 자기 내어주심이 사람들을 불법에서 구했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그 뒤의 생활에서 선을 열심히 행한다.26 아들의 신성을 옹호하는 호칭과 실제 생활의 변화가 같은 본문 해설에 들어 있다.

동일 본질을 향한 본문의 기여

이 본문에서 직접적인 신성의 근거는 13절의 호칭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대한 하나님과 구원자로 읽으면, 자신을 내어주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 불린다. 14절의 자기 소유 백성은 그 호칭을 구원의 행위와 연결한다. 예수는 백성을 구원할 권한을 가진 분으로 등장하며, 그 백성은 그분께 속한다.

독립적인 하나님과 구원자 읽기, 또는 예수를 하나님의 영광과 동격으로 읽는 해석을 택하면 13절의 직접적인 하나님 호칭 근거는 달라진다. 그 읽기들에서도 예수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분이고 자신을 주어 백성을 속량하신 구원자다. 이 원고가 우선한 읽기는 그 구원자를 하나님으로 부르는 문법까지 함께 설명한다.

아버지와 아들의 동일 본질에 관한 판단에는 하나님 호칭과 아들의 창조 관계가 함께 들어간다. 요한복음 1:1-3과 골로새서 1:15-17에서 만물은 아들을 통하여 생겨났고 아들은 만물보다 먼저 계셨다. 이 관계에서 디도서의 하나님 호칭은 만물을 창조하신 분에게 붙는다. 디모데전서 2:5-6은 그 동일한 구원자가 실제 사람이 되어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는 내용을 보탠다.27 디도서는 하나님으로 불리는 그리스도의 구원을, 자기 백성을 얻고 그들이 선한 일을 하게 하는 자기 내어주심으로 설명한다.

각주와 자료

  1. George W. Knight III, The Pastoral Epistles, NIGTC (Grand Rapids: Eerdmans; Carlisle: Paternoster, 1992), 318-319. 설치 Logos 판본의 표제 및 판권과 318-330쪽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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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SBLGNT, 디도서 2:11-14. 고정 커밋 c4d241a9c1c479a55b989ba35a4976c1d0b8052c의 그리스어 본문을 따른 필자 번역. 13절의 세 구문 해석은 아래에서 비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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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Knight, Pastoral Epistles, 318-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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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Knight, Pastoral Epistles,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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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Knight, Pastoral Epistles, 319-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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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Martin Dibelius and Hans Conzelmann, The Pastoral Epistles, trans. Philip Buttolph and Adela Yarbro, ed. Helmut Koester, Hermeneia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72), 14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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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Knight, Pastoral Epistles, 32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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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Dibelius and Conzelmann, Pastoral Epistles, 14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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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Knight, Pastoral Epistles, 32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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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Knight, Pastoral Epistles, 323-326. 나이트 자신의 채택 견해와 근거를 사용했다. 그가 열거한 다른 학자들의 원저를 모두 직접 읽은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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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Dibelius and Conzelmann, Pastoral Epistles, 143. 문장 형태는 한 인물 읽기에 유리하다고 인정하되, 나타나심 관련 문맥의 종속 관계를 이유로 두 인물 읽기를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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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J. Christopher Edwards, “The Christology of Titus 2:13 and 1 Timothy 2:5,” Tyndale Bulletin 62, no. 1 (2011): 142-143, 특히 143쪽 주 7. 공개 출판사 원문, DOI 10.53751/001c.29308. 영광의 전체 구절에 붙는 동격이라는 그의 설명을 사용했다. 소개된 Fee와 Towner 원저를 직접 읽은 인용으로 바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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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Edwards, “Christology,” 144-147, 특히 147쪽. 그는 예수에게 하나님과 구원자라는 두 호칭을 붙이는 번역을 부정하고 하나님 및 예수의 구별을 택한다. 두 비동일시 구문 가운데 하나를 배타적으로 확정한 결론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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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Murray J. Harris, “A Brief Response to ‘The Christology of Titus 2:13 and 1 Tim. 2:5’ by J. Christopher Edwards,” Tyndale Bulletin 62, no. 1 (2011): 149. 공개 출판사 원문, DOI 10.53751/001c.29309. 두 본문의 인성과 신성이 서로 보완할 수 있다는 그의 직접 응답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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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Harris, “Brief Response,” 150. 영광 전체와의 동격, 다음 관계절의 구원자 사역을 근거로 한 반론이다. 해리스가 주 7과 17에서 추론한 에드워즈의 선호와, 에드워즈 자신의 명시적인 두 대상 구별 결론은 구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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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Knight, Pastoral Epistles, 326-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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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Knight, Pastoral Epistles, 327-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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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Dibelius and Conzelmann, Pastoral Epistles,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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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Knight, Pastoral Epistles, 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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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Edwards, “Christology,” 145-146. 『바나바 서신』과의 비교를 근거로 이사야의 영향을 제안한다. 해당 구절의 유일한 배경을 확정하는 진술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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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Knight, Pastoral Epistles, 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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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Knight, Pastoral Epistles, 324-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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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SBLGNT, 디도서 1:3-4; 3:4-7. 같은 고정 그리스어 본문을 직접 읽었다. 인용은 3:6의 필자 번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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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크리소스토무스, 『디도서 강해』 5, 2:11-13 해설. 공개 NPNF 영어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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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크리소스토무스, 『디도서 강해』 5, 2:13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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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크리소스토무스, 『디도서 강해』 5, 2:14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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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요 1:1-3; 골 1:15-17; 딤전 2:5-6. 동일한 고정 SBLGNT와 각 본문별 원고의 필자 번역 및 해설을 대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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