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1장은 그리스도 예수가 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셨다고 말하고, 그 복음을 전하는 사명이 바울에게 맡겨졌다고 설명한다. 2장은 그 구원과 사명을 교회의 기도에 연결한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요청의 근거는 모든 사람의 구원을 원하시는 한 하나님과, 그들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신 한 중보자다.1

1절: 모든 사람을 위한 여러 기도

“그러므로 나는 무엇보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중재의 기도와 감사를 드리라고 권합니다.” (1절, 필자 번역)2

기도의 대상 범위는 모든 사람이다. 교회 안의 익숙한 사람들만을 위한 목록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나이트는 뒤에서 통치자들이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점을 근거로, 어떤 사회적 종류도 배제하지 않는 모든 부류의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읽는다.3

기도를 나타내는 말은 네 가지다. 나이트는 필요를 구하는 간구,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기도, 다른 사람을 위한 호소, 감사라는 서로 관련된 측면으로 설명한다.4 디벨리우스와 콘첼만은 이를 엄격하게 구별된 네 기도 방식보다 공적 기도의 폭과 강조를 드러내는 말로 읽는다.5 같은 문장은 구하는 기도와 받은 것에 감사하는 기도를 다른 사람들의 삶에 함께 연결한다.

2절: 왕들과 권한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기도

“왕들과 권한을 가진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우리가 온전한 경건과 품위 가운데 고요하고 평온한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2절)

왕들과 권한을 가진 사람들도 교회의 기도에 들어간다. 나이트는 이 범위에 황제와 지역 통치자들이 함께 포함된다고 읽는다.6 그들은 기도의 대상인 신으로 서술되지 않는다. 교회는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한다.

평온한 삶의 목적은 경건과 품위에 있다. 나이트는 이를 사명을 막는 소요와 박해에서 벗어나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삶으로 읽는다.7 디벨리우스와 콘첼만은 그보다 교회가 세상 안에서 지속할 좋은 시민의 삶을 더 강조한다.8 두 설명은 같은 평온을 선교가 가능한 조건과 일상적인 시민 생활 가운데 어디에 먼저 놓는지 다르다.

베아타 우르바네크의 서평이 소개하는 말콤 길은 이 기도에 황제 숭배와 다른 충성의 방식이 있다고 읽는다. 통치자를 위하여 기도하면서 그를 신이나 궁극적인 중보자로 섬기지 않는다는 설명이다.9 교회의 평온은 통치자에 대한 숭배가 아니라 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로 구해진다.

3-4절: 구원을 원하시는 우리 하나님

“이것은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좋고 받아들여질 만한 일입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3-4절)

좋고 받아들여질 만한 일은 앞의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다. 하나님이 구원자이시고 그 사람들의 구원을 원하신다는 사실이 그 기도의 근거다. 나이트는 우리라는 말이 기도하는 사람들 자신도 하나님의 자비로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고 설명한다.10

나이트는 모든 사람을 1절과 마찬가지로 모든 종류의 사람들로 읽는다.11 디벨리우스와 콘첼만은 사람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강조하며, 진리를 아는 것을 복음을 인정하고 믿음에 들어오는 관계로 읽는다.12 본문은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말하고, 그 뜻을 이유로 그들을 위한 기도를 요청한다.

진리를 안다는 말은 구원의 내용과 연결된다. 나이트는 이를 그리스도의 인격과 일을 알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관계로 설명한다.13 교회가 구하는 평온은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외면하고 자기 생활만 유지하는 상태로 제시되지 않는다. 기도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구원을 향한다.

5절: 한 하나님과 한 중보자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의 중보자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5절)

가르(γάρ), 왜냐하면이라는 접속사가 앞의 구원 뜻과 이 고백을 연결한다. 나이트는 유대인을 위한 하나님과 이방인을 위한 다른 신이 따로 있지 않다는 뜻으로 읽는다.14 사람들의 범위가 넓어지는 근거는 같은 한 하나님께 있다.

한 중보자도 그 범위에 관계한다.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서는 그리스도 예수는 사람이시다. 나이트는 사람이라는 명칭이 그분이 대표하는 사람들과 실제로 같은 인간이라는 관계를 강조한다고 설명한다.15 그리스도는 그 인간의 삶에 실제로 참여하신 분으로 불린다.

디벨리우스와 콘첼만은 한 하나님과 한 구원자의 병행을 예배에서 사용된 정식에 연결하며, 구원자의 유일성에서 신적인 지위의 함의를 읽는다. 그들은 동시에 이 구절 자체에 선재의 서술은 없고, 다음의 자기 내어주심이 사람이라는 명칭의 구원 의미를 설명한다고 지적한다.16 유일한 사명을 말하는 문장과 아들의 기원을 직접 말하는 문장은 같은 종류의 진술이 아니다.

중보자라는 메시테스(μεσίτης)는 두 편 사이의 관계를 이루는 분을 가리킨다. 우르바네크가 소개한 길의 자료에는 제사장, 왕, 예언자와 천사 및 모세도 중재의 역할을 가진 존재로 등장한다.17 여기서는 그 역할을 같은 여러 주체에게 나누지 않고,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을 주신 그리스도 예수 한 분에게 귀속한다.

6절: 자신을 몸값으로 내어주심

“그분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몸값으로 내어주셨습니다. 이것은 정해진 때에 주어진 증언입니다.” (6절)

중보자가 하신 일이 구체적으로 설명된다. 그분이 내어주신 것은 다른 사람이나 물건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나이트는 이를 마태복음 20:28과 마가복음 10:45에서 예수가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의 몸값으로 준다는 말에 연결한다.18 그분의 중보는 사람을 대신하여 자기 생명을 주는 구원이다.

안틸뤼트론(ἀντίλυτρον)은 포로를 자유롭게 하는 몸값을 표현한다. 나이트는 대신 내는 값의 함의를 강조하고, 디벨리우스와 콘첼만은 마가복음의 몸값 표현을 헬라적 언어로 전한 정식으로 읽는다.19 두 주석 모두 자기 내어주심을 실제 구원의 행위로 읽는다.

증언은 문장 끝의 명사로 앞의 행위에 붙는다. 나이트는 예수의 자기 내어주심 자체가 하나님의 구원 뜻을 증언하며, 그 뒤의 사도 선포가 그 행위를 계속 증언한다고 설명한다.20 정해진 때는 하나님이 구원을 이루시고 알리시는 시간에 관계한다. 그 증언의 내용은 모든 사람을 위한 그리스도의 자기 내어주심이다.

7절: 이방인들에게 전하도록 세워진 사도

“이를 위하여 나는 선포자와 사도로 세워졌습니다. 나는 진실을 말하며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믿음과 진리 가운데 이방인들의 교사로 세워졌습니다.” (7절)

서신의 화자는 그 증언을 위하여 자신이 세워졌다고 말한다. 나이트는 선포자와 사도 및 교사를 서로 다른 세 직책보다 같은 사명의 여러 측면으로 읽는다.21 선포하고 권한을 받아 증언하며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이 그 복음을 전한다.

이방인이라는 대상은 모든 사람을 향한 앞의 논증에 실제 근거를 보탠다. 디벨리우스와 콘첼만은 그 사명이 계시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현재의 선포와 연결된다고 읽는다.22 나이트도 믿음과 진리를 4절의 구원과 진리를 앎에 연결한다.23 한 중보자가 이루신 구원은 어떤 민족만을 위한 소식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교부들의 해석

크리소스토무스는 『디모데전서 강해』 7에서 한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우상들과 참 하나님을 구별하며 아들의 신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그는 중보자가 양쪽과 긴밀히 관계해야 한다는 점에서 아들이 사람의 본성과 아버지의 본성을 함께 지니셔야 한다고 논증한다.24 중보의 관계를 두 본성의 결합으로 설명한 해석이다.

그 논증에는 두 편과의 관계를 각각 같은 본성으로 읽는 전제가 들어 있다. 중재라는 단어의 일반적인 용례는 제사장이나 예언자에게도 해당하지만, 그들에게 하나님과 같은 본성이 귀속되지는 않는다. 크리소스토무스는 이 구절을 하나님에게서 오신 아들이 실제 사람이 되어 구원하셨다는 다른 본문과 연결하여 읽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삼위일체론』 I.7.14에서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의 중보자라고 부르며 빌립보서의 두 형체를 함께 사용한다. 같은 아들이 하나님의 형체로 아버지와 동등하고, 종의 형체로 사람이 되어 중보하신다고 설명한다.25 중보자가 사람이시라는 명칭은 그에게 아들의 신성이 없다는 뜻보다 말씀의 성육신을 설명하는 말이다.

사람이신 중보자와 동일 본질의 판단

이 본문의 직접적인 고백은 한 하나님과 하나님 및 사람들 사이를 연결하는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다. 그분은 모든 사람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다. 성령은 2:1-7에 이름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여기서 출발하는 동일 본질의 논증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관한 것이며, 성령에 관한 전체 판단에는 다른 본문의 근거가 사용된다.

중보자라는 명칭 하나는 신적 본질의 정의가 아니다. 갈라디아서 3:19의 중보자는 율법을 전달하는 관계에 있고, 여기서 그리스도의 중보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몸값으로 주는 행위에 있다. 그리스도가 다른 중보자들과 같은 본성을 가지시는지에 관한 판단은 이 사명의 독특성과 그분의 다른 활동을 함께 읽은 데서 나온다.

요한복음의 말씀은 하나님이시고 모든 만물이 그분을 통해 생겨났으며 실제 육신이 되셨다. 골로새서는 그 아들을 통하여 모든 권세가 창조되었다고 말한다. 이 창조주 지위를 사람이신 중보자의 자기 내어주심과 연결하면, 그분은 높은 피조된 대표자보다 사람의 삶에 참여한 창조주 아들로 설명된다.

동일 본질은 그 지위를 한 하나님이라는 고백과 함께 유지한다. 하나님과 아들을 서로 독립된 두 신으로 만들지 않고, 아들이 아버지와 구별되면서 나뉘지 않는 하나의 신성을 지니신다고 설명한다. 그 아들의 실제 인성이 사람들과의 관계 및 죽음으로 이루신 구원을 설명한다.

교회의 기도도 그 구원에 응답한다. 자신을 내어주신 중보자가 모든 종류의 사람에게 구원의 길을 여셨으므로, 교회는 통치자와 이방인을 포함하여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한다. 한 하나님과 한 중보자에 관한 고백은 그들을 위한 간구와 감사, 복음의 선포를 함께 이룬다.

각주와 자료

  1. George W. Knight III, The Pastoral Epistle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IGTC (Grand Rapids: Eerdmans; Carlisle: Paternoster, 1992),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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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Michael W. Holmes 편, The Greek New Testament: SBL Edition (2010), 딤전 2:1-7을 따른 필자 번역. 고정 커밋 본문. 7절에 후대의 ἐν Χριστῷ를 더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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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Knight, Pastoral Epistles, 113-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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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Knight, Pastoral Epistles, 11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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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Martin Dibelius and Hans Conzelmann, The Pastoral Epistles, trans. Philip Buttolph and Adela Yarbro, ed. Helmut Koester, Hermeneia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72), 3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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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Knight, Pastoral Epistles,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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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Knight, Pastoral Epistles, 116-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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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Dibelius and Conzelmann, Pastoral Epistles, 3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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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Beata Urbanek, review of Malcolm Gill, Jesus as Mediator: Politics and Polemic in 1 Timothy 2:1-7, Śląskie Studia Historyczno-Teologiczne 45, no. 1 (2012): 208. 실제 공개 서평. 길의 원저가 아니라 이 폴란드어 서평의 보고를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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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Knight, Pastoral Epistles, 118-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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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Knight, Pastoral Epistles, 119-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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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Dibelius and Conzelmann, Pastoral Epistles,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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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Knight, Pastoral Epistles,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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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Knight, Pastoral Epistles, 12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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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Knight, Pastoral Epistles,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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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Dibelius and Conzelmann, Pastoral Epistles, 4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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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Urbanek, 서평, 208. 인용된 길의 원저 쪽수 112-127은 서평 안에 보고된 위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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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Knight, Pastoral Epistles, 12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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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Knight, Pastoral Epistles, 121-122; Dibelius and Conzelmann, Pastoral Epistles,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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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Knight, Pastoral Epistles, 123-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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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Knight, Pastoral Epistles, 125-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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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Dibelius and Conzelmann, Pastoral Epistles,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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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Knight, Pastoral Epistles,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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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크리소스토무스, 『디모데전서 강해』 7, 5-7절 해설, 공개 NPNF 영어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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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아우구스티누스, 『삼위일체론』 I.7.14, 공개 NPNF 영어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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