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의 저자는 교인들이 받아들인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모시며 그분 안에서 살아가라고 권한다. 뿌리를 내리고 세움을 받으며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하라는 2:6-7의 권면에, 다른 가르침이 그들을 붙잡아 끌고 가지 못하게 하라는 경고가 이어진다.

그 경고의 근거는 그리스도의 충만과 교인들이 그분 안에서 받은 구원이다. 저자는 할례와 세례, 함께 묻힘과 살아남, 용서와 증서의 제거, 권세들의 패배를 연결한다. 신성을 설명하는 9절은 이 구원의 행위들 한가운데 놓인다.

8절: 사람들의 전승과 세상의 요소들을 따르는 가르침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여러분을 포로로 끌고 가는 사람이 없도록 살피십시오. 그것은 사람들의 전승과 세상의 요소들을 따르며,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습니다.” (8절, 필자 번역)1

술라고곤(συλαγωγῶν)은 사람을 노략물로 끌고 가는 행동을 표현한다. 바르트와 블랑케는 이 말에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 교인들이 다시 예속되는 위험이 담겨 있다고 읽는다.2 1:13에서는 아버지가 그들을 어둠의 권세에서 건져 내셨다. 여기서는 다른 가르침이 그들의 삶을 붙잡아 끌고 가려 한다.

철학이라는 필로소피아(φιλοσοφία)는 헛된 속임수와 연결된다. 바르트와 블랑케는 당시 이 말이 유대교의 생활과 종교적 가르침을 가리키기도 했다고 설명하며, 이 문맥에서는 교인들에게 요구되는 종교적 규정과 실천을 가리킨다고 읽는다.3 사람들의 전승과 세상의 요소들을 따른다는 뒤의 표현들이 여기서 문제 삼는 가르침을 구체화한다.

세상의 요소들인 스토이케이아 투 코스무(στοιχεῖα τοῦ κόσμου)는 해석이 갈린다. 던은 이를 지상에서 사람들의 삶과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천상 권세들과 연결한다.4 크리소스토무스는 해와 달을 가리키는 말로 읽고, 날과 절기를 지키는 관행과 연결한다.5 본문에서는 이 요소들을 따르는 생활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생활과 충돌한다. 뒤의 권세, 절기, 규정에 관한 서술이 그 충돌의 내용을 설명한다.

9절: 신성의 모든 충만이 몸으로 머무름

“그분 안에 신성의 모든 충만이 몸으로 머물기 때문입니다.” (9절)

왜냐하면이라는 호티(ὅτι)는 8절의 경고를 뒷받침한다. 교인들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유는 그분 안에 신성의 모든 충만이 머물기 때문이다. 1:19에서 모든 충만이 그분 안에 머무는 일을 말했고, 여기서는 신성의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신성을 뜻하는 테오테스(θεότης)는 이 구절에서 하나님으로서의 존재를 표현한다. 던은 이 말을 신성의 본성 또는 본질, 곧 신성을 이루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는 후대의 본성 및 본질에 관한 그리스도론이 이 표현에서 준비되지만, 그 후대의 논의가 이미 모두 들어 있지는 않다고 판단한다.6

바르트와 블랑케는 테오테스와 로마서 1:20의 테이오테스(θειότης)에 엄격한 철학적 구분을 배정하는 해석에 반대한다. 신적 본질과 신적 속성이라는 구별이 후대의 논쟁에서 더 분명해졌으며, 1세기에는 두 말의 의미가 가까웠다는 주장이다.7 이 단락에서는 명사의 차이와 함께 모든 충만이라는 범위, 그 충만이 그리스도 안에 머문다는 관계가 의미를 결정한다.

머문다는 카토이케이(κατοικεῖ)는 현재형이다. 그리스도 안의 신성은 계속 머무는 현존이다. 바르트와 블랑케는 몸으로라는 소마티코스(σωματικῶς)를 지상에서 사셨고 높임받으신 그리스도의 몸에 연결한다. 특히 우리를 위하여 내어주신 몸에서 하나님의 구원 행위가 이루어졌다는 점을 강조한다.8

던도 이 말을 예수의 지상 생활과 죽음에서 만날 수 있는 하나님의 현존으로 읽는다. 몸을 가진 사람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듯이, 하나님이 이 구체적인 예수를 통하여 알려지고 만나진다는 설명이다. 현재형은 그 역사적 예수가 지금도 하나님을 알게 하는 분이라는 관계를 유지한다.9

하일은 개인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몸과 그분의 몸인 교회를 함께 읽는다. 1:18, 24의 교회와 10절의 신자들이 받은 충만을 연결하여, 하나님의 충만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는 교회에도 머문다고 설명한다.10 바르트와 블랑케는 교회와의 연결을 인정하면서도 몸으로라는 부사 하나가 그 전체 설명을 직접 표현하기에는 짧다고 판단한다.11

9절의 그분은 6절의 그리스도 예수를 계속 가리킨다. 교인들에게 충만이 주어지는 관계는 다음 절에서 설명된다. 이 순서에서는 그리스도 안의 충만이 먼저 서술되고, 교인들은 그분 안에서 그 충만에 참여한다.

10절: 그분 안에서 충만해진 교인들과 권세들의 머리

“여러분도 그분 안에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모든 통치와 권세의 머리이십니다.” (10절)

9절의 충만이라는 명사에 10절의 채워졌다는 분사(πεπληρωμένοι)가 대응한다. 현재형 동사와 완료 수동분사가 함께 쓰여, 이미 이루어진 충만의 결과를 교인들이 누리고 있음을 표현한다. 던은 이를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삶의 완성과 충족을 강조하는 수사적 언어로 읽는다.12

바르트와 블랑케는 교인들이 그리스도 안의 하나님의 현존에 참여한다고 설명한다. 그 참여의 내용은 뒤의 함께 죽고 살아난 일에서 구체화된다는 것이다.13 신자들이 받은 충만은 죄의 용서와 새로운 삶을 포함한다.

같은 그리스도를 모든 통치와 권세의 머리라고 부른다. 1:16에서는 그런 권세들도 그분을 통하여 창조되었다고 했다. 바르트와 블랑케는 10절의 머리를 그 권세들보다 위에 계신 분이라는 뜻으로 읽으면서, 만물을 다스리는 분과 교회를 돌보는 분이 같은 그리스도임을 강조한다.14

충만을 받는 교인들과 권세들의 머리인 그리스도는 문장에서 다른 자리에 놓인다. 교인들은 그분 안에서 채워졌고, 그분은 그들이 의지하던 권세들까지 다스리신다. 교인들은 그리스도에게서 죄의 용서와 새 생명을 받는다.

11절: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않는 그리스도의 할례

“그분 안에서 여러분도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않는 할례를 받았습니다. 곧 육의 몸을 벗겨 내는 그리스도의 할례입니다.” (11절)

할례를 받았다는 동사는 수동태이며, 그 할례는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바르트와 블랑케는 아케이로포이에토스(ἀχειροποίητος)가 하나님이 이루시는 일을 인간의 손으로 하는 행위와 구별한다고 읽는다.15 저자는 교인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이루어진 일을 말한다.

육의 몸을 벗겨 냄에는 그 몸의 소유자가 직접 쓰이지 않는다. 바르트와 블랑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교인들이 옛 삶을 벗는 일, 두 사건의 연결이라는 가능성을 함께 검토한다.16 그리스도의 몸과 교인들의 몸을 어떤 관계로 읽는지가 이 표현의 뜻을 가른다.

그리스도의 할례라는 속격도 여러 관계를 표현할 수 있다. 그리스도에게 이루어진 할례, 그리스도가 행하시는 할례, 그리스도에게 속한 할례가 문법적으로 가능하다. 바르트와 블랑케는 그리스도에게 이루어진 일을 뜻할 경우, 유아 때의 육체적 할례보다 십자가의 죽음을 가리킨다고 읽는다.17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해졌다고 한 사람들에게 이 할례가 이루어졌다. 뒤에는 그분과 함께 묻히고 살아난 일이 나온다. 이 연결에서 육의 몸을 벗겨 냄은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하고 이전의 삶을 벗는 사건으로 읽힌다. 여기서 벗는 이전 삶과 몸을 가진 존재 자체는 구별된다.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님의 충만을 나타내며, 교인들은 그분의 죽음에서 새 삶을 받는다.

12절: 세례와 함께 묻힘, 하나님이 일으키신 그리스도

“여러분은 세례 안에서 그분과 함께 묻혔고, 그분 안에서 함께 일으켜졌습니다. 이는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12절)

함께 묻혔다는 쉰타펜테스(συνταφέντες)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교인들이 연결되는 일을 말한다. 던은 세례에서 물에 잠기는 모습을 장례에 연결하며, 세례받는 사람이 예수의 죽음과 자신을 함께 놓는 행위로 읽는다.18

함께 일으켜졌다는 말 앞의 엔 호(ἐν ᾧ)는 가까이 있는 세례를 가리킬 수도 있고 그리스도를 가리킬 수도 있다. 던은 반복되는 그분 안에서라는 표현과 11절의 같은 구문을 따라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읽는다.19 바르트와 블랑케도 같은 연결을 따른다.20 이 읽기에서 교인들이 함께 살아나는 관계의 중심은 그리스도다.

믿음이 향하는 대상도 명시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으키신 분이다. 던은 믿음과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연결한 구문(πίστεως τῆς ἐνεργείας τοῦ θεοῦ)을 하나님의 효과적인 역사하심을 믿는 믿음으로 읽는다.21

바르트와 블랑케는 다른 해석을 제시한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구원이 인간의 믿음에 달린 것으로 서술되는 설명보다, 죽은 이를 살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능력 있게 역사한다는 뜻으로 읽는다.22 위 번역은 앞의 믿음 해석을 따른다. 어느 읽기에서도 그리스도를 일으키신 행위의 주체는 하나님이다.

저자는 교인들이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켜졌다고 말한다. 던은 새 시대의 부활 생명이 그들에게 이미 주어졌다는 설명으로 읽으면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삶이나 장래의 부활을 폐기한 진술로 보지 않는다.23 3:1-4에서도 지금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난 삶과 장차 그분과 함께 영광 가운데 나타날 일이 함께 나온다.

13절: 하나님이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심

“죄들과 할례받지 않은 육의 처지로 죽어 있던 여러분을 [하나님께서는] 그분과 함께 살리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13절)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이 교인들도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신다. 13절의 동사에는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직접 반복되지 않는다. 바르트와 블랑케는 12절의 하나님이 이어지는 행위의 주체라고 읽는다.24 던도 함께 살리심의 주체를 하나님으로 읽는다.25

교인들은 살아 있으면서 죽어 있던 사람들로 서술된다. 던은 죄와 무할례라는 표현을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의 언약 밖에 있던 처지와 연결한다.26 그리스도의 실제 죽음과 교인들의 죄 가운데 죽은 상태는 다른 사건이지만, 하나님이 새 생명을 주신다는 관계로 연결된다.

용서의 대상에는 여러분에서 우리로 대명사의 변화가 있다. 이방인 교인들에게 말하던 저자가 자신도 용서받는 사람들에 포함한다. 던은 이 변화에서 유대인도 같은 죄의 용서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읽는다.27 함께 살아난 생명은 모두에게 주어진 용서와 연결된다.

14절: 우리를 고발하던 증서를 십자가에서 없애심

“규정들을 근거로 우리를 거슬러 고발하던 손으로 쓴 증서를 지워 버리셨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 앞에서 치워 버리셨습니다.” (14절)

케이로그라폰(χειρόγραφον)은 손으로 쓴 문서다. 던은 여기서 채무를 인정하는 증서의 뜻을 읽고, 죄를 기록하여 마지막 심판에 제시하는 유대 묵시 자료의 기록에 연결한다.28 우리를 거슬렀다는 말과 우리에게 적대적이었다는 말이 그 문서의 고발 기능을 강조한다.

그 규정들인 도그마타(δόγματα)와 증서의 관계에는 해석의 차이가 있다. 던은 규정들이 문서에 정죄의 힘을 부여한다고 읽으며, 증서 자체를 율법 전체와 동일하게 두지 않는다.29 바르트와 블랑케는 하나님이 실제 죄를 용서하셨으므로 교인들에게 더 지우려는 종교적 규정의 고발도 효력을 잃었다고 읽는다.30 두 설명은 고발의 배경을 율법의 요구와 교인들을 예속시키는 규정에 각각 연결한다.

지워 버렸다는 엑살레이프사스(ἐξαλείψας)는 문서의 내용을 없애는 행동이다. 이어 그 문서가 제거되고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서술한다. 던은 죄를 정죄하던 기록이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소멸한 일로 읽는다.31 바르트와 블랑케는 제거했다는 완료형이 그 사건의 지속되는 효력을 강조한다고 설명한다.32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문법상 그 증서다. 실제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은 그리스도이며, 저자는 그 죽음을 고발 문서가 없어진 사건으로 표현한다. 하나님이 죄를 용서하신 행위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같은 구원의 사건에 속한다.

15절: 권세들을 벗겨 내고 공개적으로 이끄심

“[하나님께서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벗겨 내고, 그들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어 그분 안에서 승리의 행렬로 이끄셨습니다.” (15절)

권세들에 대한 행위도 하나님이 이어서 행하시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바르트와 블랑케는 행위의 주체가 바뀌었다는 표지가 없으므로 하나님을 계속 주어로 읽는다.33 이 읽기에서는 그리스도를 살리고 교인들을 살리며 고발을 없애신 하나님이 권세들도 드러내신다.

그러나 벗겨 냈다는 아페크뒤사메노스(ἀπεκδυσάμενος)는 중간태이며, 스스로 옷을 벗는 행위로 읽을 수도 있다. 던은 무장 해제라는 해석보다 벗어 버림이라는 의미를 선호하면서, 주어가 그리스도로 바뀌었을 가능성을 검토한다. 그는 우주를 덮어 지배하던 권세들을 그리스도의 몸에서 벗겨 버리는 낡은 옷에 비유한다.34 이 설명에서는 권세들에서 벗어나는 그리스도의 승리가 중심이다.

바르트와 블랑케는 하나님이 권세들의 실체를 드러내신다는 설명을 택한다. 그들은 1:20에서 권세들도 창조 세계의 화해에 포함된다는 점을 따라, 공개적으로 수치를 주는 군사적 승리 행렬보다 그들이 메시아에게 속한 피조물임을 밝히는 일로 읽는다.35

던은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동사와 승리 행렬을 나타내는 트리암뷰사스(θριαμβεύσας)가 함께 쓰였다는 점에서 패배한 권세들의 수치를 읽는다.36 하일도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패배한 권세들을 공개적으로 이끄신다는 승리의 이미지로 설명한다.37 이 읽기에서 권세들은 교인들의 구원을 좌우하는 지위를 잃었다.

그분 안에서라는 엔 아우토(ἐν αὐτῷ)는 그리스도를 가리키거나 앞의 십자가를 가리킬 수 있다. 바르트와 블랑케는 단락에서 반복된 같은 표현을 따라 그리스도로 읽는다.38 어느 연결에서도 권세들을 드러내는 행위는 십자가의 사건에 속한다.

1:16은 권세들의 기원을, 2:15은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행위 앞에서 드러나는 일을 말한다. 피조물이라는 사실과 사람을 예속시키던 지위를 잃는 일은 함께 설명될 수 있다. 창조와 화해에 포함된 존재들이 그리스도의 통치를 거슬러 독립적인 구원 권한을 행사할 수는 없다. 십자가는 그 권한의 주장을 무너뜨리는 사건으로 서술된다.

교부들의 해석

크리소스토무스: 그리스도 안의 충만과 성령을 통한 할례

크리소스토무스는 『골로새서 강해』 6에서 충만을 전체라는 뜻으로 풀이하고, 머리인 그리스도 안의 충만과 신자들이 그분 안에서 받는 충만을 연결한다. 함께 살아나고 상속받는 다른 본문들을 인용하여 신자들을 그리스도에게 가까이 놓는다.39

동일 본질의 근거는 그리스도가 모든 권세 위에 계시며 그들의 원인이라는 데서 제시한다. 그는 모든 권세의 머리라는 진술을 창조주인 아들의 지위에 연결한다.40 신자들이 충만을 받는다는 진술과 아들의 동일 본질을 설명하는 근거가 각각 다른 관계에 놓인다.

11절에서는 인간의 손 대신 성령이 그 할례를 행하신다고 읽는다. 그가 말하는 죄의 몸은 이전의 죄 있는 삶이며, 세례에서 사람이 그 삶을 벗는다고 설명한다.41 11절의 SBLGNT에는 육의 몸이라는 말이 있고 죄의라는 수식어는 없다. 그의 해설은 그 몸을 죄 있는 이전 삶으로 풀이하며 성령을 통한 세례와 연결한다.

15절의 주어는 그리스도로 읽는다. 인간에게 달라붙어 있던 악한 권세의 지배를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벗어 버렸으며, 십자가의 죽음에서 죽음과 악마가 패배했다는 설명이다.42 그의 행위 주체와 옷을 벗는 비유는, 하나님을 주어로 읽는 현대 주석과 다르다.

힐라리우스: 온전한 신성과 구별되는 아버지와 아들

힐라리우스는 『삼위일체론』 8.52-54에서 요한복음 16:15의 아버지가 가지신 모든 것은 내 것이라는 말과 골로새서 2:9를 연결한다. 아들 안의 충만은 아버지의 온전한 신성이 아들 안에 있다는 뜻으로 읽는다.43

그는 이것을 아버지가 육체적으로 아들 안으로 옮겨 들어가 자신 안에는 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지 않는다. 아들이 하나님에게서 나심으로 같은 신적 본성을 온전히 가지셨다는 설명이다.44 그가 몸으로 머문다는 말에 사용하는 설명에는 나심과 신적 본성의 공유가 함께 들어 있다.

8.55-56에서는 두 분을 하나의 위격으로 합치거나 서로 다른 두 신성으로 나누는 설명에 반대한다. 아버지와 아들은 구별되면서 온전한 신성을 동일하게 지니신다는 판단이다.45 이 해석은 충만의 전량과 부자 관계를 한 신성 안에서 설명한다.

신적 지위와 동일 본질의 판단

9절은 그리스도 안에 신성의 모든 충만이 몸으로 머문다고 말한다. 그분은 많은 천상 권세 가운데 하나로 제시되지 않으며, 10절에서 그 권세들의 머리로 불린다. 1:16-17의 창조와 보존을 함께 읽으면 그분은 피조 세계가 그를 통하여 생기고 유지되는 아들이다. 신적 능력의 일부를 받는 피조물이라는 설명보다, 아들의 몸 안에서 하나님의 온전한 신성이 드러난다는 설명이 이 진술들을 더 잘 연결한다.

교인들이 받은 충만은 그리스도 안에서 죄를 용서받고 새로운 삶에 참여하는 관계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묻히고 일으켜진 이들이다. 그리스도는 신성을 온전히 나타내는 머리이며, 신자들은 그분에게서 생명을 받는 몸의 지체들이다.

하일의 교회 해석은 9-10절의 충만이 교회의 실제 삶까지 이어진다는 점을 강조한다.46 던은 예수의 삶과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관계에서 몸으로라는 말을 읽는다.47 바르트와 블랑케는 우리를 위하여 내어주신 몸에서 하나님의 구원 행위가 이루어진 일을 강조한다.48 이 비교에서는 그리스도의 몸과 교회의 몸 사이의 관계가 구원에 참여하는 삶을 설명한다.

아버지와 아들의 구별도 분명하다. 12절에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일으키시는 분이고 그리스도는 일으킴을 받는 분이다. 앞서 1:3에서 하나님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 불렀으므로, 이 관계의 하나님도 아버지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다. 같은 아들의 몸 안에 신성의 모든 충만이 머문다. 아들을 일으키신 하나님과 그 아들을 하나의 인물로 합치면 이 행위 관계가 설명되지 않는다.

동일 본질의 판단은 아버지와 아들이 구별되면서 아들의 신성이 온전하다는 진술을 함께 설명한다. 아버지는 그리스도를 살리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들을 살리신다. 그리스도는 창조와 보존에 관계하며, 그 몸 안에 머무는 신성에는 어떤 영역이나 부분이 빠져 있다고 서술되지 않는다. 그 신성을 아버지의 신성과 별개의 것으로 두면 두 신성의 관계를 새로 가정하게 된다. 한 하나님의 온전하고 분할되지 않는 신성을 아버지와 아들이 공유한다고 읽으면, 두 분의 구별과 아들의 신적 지위를 함께 유지할 수 있다.

힐라리우스는 이 관계를 영원한 나심으로 설명했다.49 그러나 9절의 머문다는 동사 자체에는 아들이 신성을 가지신 기원이나 방식이 서술되지 않는다. 나심의 설명은 그가 아들과 아버지에 관한 다른 본문들을 연결하여 세운 교리적 논증이다. 골로새서의 직접적인 진술은 신성의 온전한 충만과 몸을 가지신 그리스도, 하나님이 그분을 일으키신 관계다.

8-15절에는 성령이 이름으로 나오지 않는다. 크리소스토무스는 손으로 하지 않는 할례를 세례와 성령의 사역에 연결하여 해석했다. 이 단락의 구원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서 이루시고, 신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일이다. 그들의 생명과 용서는 권세들이 부여하는 조건에 달려 있지 않으며, 그들을 살리신 하나님의 행위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존한다.

각주와 자료

  1. SBLGNT, 골로새서 1:24-2:23. 고정 판본의 골로새서. 성경 인용은 필자 번역이다. 13, 15절의 대괄호는 문맥에 따라 생략된 주어를 보충한 것이다. © 2010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and Logos Bible Software, CC BY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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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Markus Barth and Helmut Blanke, Colossians: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trans. Astrid B. Beck, Anchor Yale Bible 34B (New Haven and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2005), 307-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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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Barth and Blanke, Colossians, 308-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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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James D. G. Dunn, The Epistles to the Colossians and to Philemon,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Eerdmans; Milton Keynes: Paternoster, 1996), 153. Perlego 판본. 실제 판권에서 1996년 초판을 확인했으며 플랫폼의 2014년 전자책 표기와 구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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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John Chrysostom, Homilies on Colossians 6, 2:8의 요소들 및 날짜 관행 해설, 공개 영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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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Dunn, Colossians and Philemon,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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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Barth and Blanke, Colossians,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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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Barth and Blanke, Colossians, 31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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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Dunn, Colossians and Philemon,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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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John Paul Heil, Colossians: Encouragement to Walk in All Wisdom as Holy Ones in Christ, Early Christianity and Its Literature 4 (Atlanta: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2010), 108-110. 출판사의 공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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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Barth and Blanke, Colossians,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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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Dunn, Colossians and Philemon, 15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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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Barth and Blanke, Colossians, 315-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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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Barth and Blanke, Colossians, 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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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Barth and Blanke, Colossians,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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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Barth and Blanke, Colossians,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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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Barth and Blanke, Colossians, 318-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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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Dunn, Colossians and Philemon,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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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Dunn, Colossians and Philemon, 160-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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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Barth and Blanke, Colossians, 32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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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Dunn, Colossians and Philemon,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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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Barth and Blanke, Colossians, 32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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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Dunn, Colossians and Philemon,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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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Barth and Blanke, Colossians, 325-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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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Dunn, Colossians and Philemon, 162-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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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Dunn, Colossians and Philemon, 162-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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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Dunn, Colossians and Philemon,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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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Dunn, Colossians and Philemon, 164-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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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Dunn, Colossians and Philemon, 165-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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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Barth and Blanke, Colossians, 327-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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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Dunn, Colossians and Philemon, 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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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Barth and Blanke, Colossians, 33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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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Barth and Blanke, Colossians, 33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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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Dunn, Colossians and Philemon, 167-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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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Barth and Blanke, Colossians, 333-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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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Dunn, Colossians and Philemon,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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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Heil, Colossians, 12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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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Barth and Blanke, Colossians, 335-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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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Chrysostom, Homilies on Colossians 6, 2:9-10의 충만 및 신자들의 참여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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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Chrysostom, Homilies on Colossians 6, 2:10의 모든 권세의 머리 및 동일 본질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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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Chrysostom, Homilies on Colossians 6, 2:11-12의 죄의 몸, 성령의 할례 및 세례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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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Chrysostom, Homilies on Colossians 6, 2:13-15의 증서와 권세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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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Dunn, Colossians and Philemon,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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