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20절에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영들이 복종하는 일보다 그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일을 기뻐하라고 말씀하셨다. 21절은 그때 예수 자신이 기뻐하며 아버지께 드린 감사를 적는다. 제자들의 경험을 설명하던 말씀은 아버지의 계시와 아들의 계시 권한에 대한 진술로 이어진다.
눅 10:21
바로 그때 예수께서는 성령으로 기뻐하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고 총명한 사람들에게 이것들을 감추시고 어린아이들에게 드러내 주셨으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께서 기뻐하신 뜻이었습니다.”1
Ἐν αὐτῇ τῇ ὥρᾳ는 앞의 말과 같은 때를 가리킨다. 보봉은 누가가 제자들의 귀환과 이 기도를 연결하여, 그들이 경험한 일을 아버지의 뜻과 계시로 설명한다고 읽는다.2 이 감사는 제자들의 경험에 응답하는 예수의 말이다.
기준 본문에서 τῷ πνεύματι τῷ ἁγίῳ는 성령을 가리키는 여격이다. 마셜은 성령의 감동으로 일어난 기쁨으로 읽고, 보봉도 이 표현을 성령이 일으킨 기쁨으로 설명한다.3 예수는 기뻐하며 말하는 분이고, 성령은 그 기쁨에 작용하는 분이며, 아버지는 예수가 부르는 분이다. 세 분의 관계가 한 감사의 장면 안에 서술된다.
마셜은 성령 앞에 ἐν이 있는 형태와 없는 형태, 거룩한이라는 수식이 있는 형태와 없는 형태를 대조한다.4 기준 본문에 붙은 거룩한이라는 수식은 그 영을 성령으로 명시한다. 그 여격은 예수의 기쁨을 성령에게 연결한다.
예수는 아버지를 하늘과 땅의 주님이라고 부른다. 마셜은 이 호칭에 창조주로서의 권한이 드러난다고 설명한다.5 감추고 드러내는 두 동사의 주어도 아버지다. 하늘과 땅의 주님이 누구에게 자신의 뜻을 드러내셨는지가 예수의 감사 내용이다.
νηπίοις는 어린아이들을 가리킨다. 보봉은 실제 어린아이뿐 아니라 낮은 지위에 있고 배우려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비유적 용법을 검토한다.6 앞에서 돌아온 제자들이 그 계시를 받은 사람들에 연결된다. 아버지는 지혜롭고 총명한 이들에게 감추신 것을 어린아이 같은 사람들에게 드러내셨다.
‘이것들’은 이름을 일일이 적지 않은 복수 목적어다. 보봉은 이 말의 넓은 범위를 인정하면서 제자들이 경험한 구원과 계시의 문맥에 연결한다.6 뒤의 ‘그렇습니다, 아버지’는 새로운 부탁을 시작하기보다 앞의 감사를 확인한다. 감추심과 드러내심은 아버지가 기뻐하신 뜻으로 서술된다.7
키릴로스는 예수의 기쁨을 제자들에게서 성령으로 일어난 사역과 회심에 연결한다. 성령은 아버지에게서 나오며 아들에게 낯선 분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아버지의 속성이 아버지에게서 나신 말씀에게 속한다는 논거를 붙인다.8 이 수용은 성령으로 기뻐하시는 예수의 장면을 성부·성자·성령의 관계 안에서 해석한다. 성령의 기원에 관한 그의 설명은 그 장면을 풀이하는 신학적 전제다.
눅 10:22
“모든 것이 내 아버지에게서 내게 맡겨졌다.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모르며, 아들과 아들이 드러내 주기로 뜻하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른다.”
πάντα μοι παρεδόθη는 모든 것이 예수에게 맡겨졌다는 수동 진술이고, ὑπὸ τοῦ πατρός μου는 그 행위자를 아버지로 밝힌다. 마셜은 모든 권한에 지식이 포함된다는 해석을 선호한다. 그는 뒤의 문장이 아들의 앎과 아버지를 드러낼 권한을 말하기 때문에 둘을 연결한다.9 보봉은 이 계시의 문맥에서 권능보다 지식의 전달을 더 강조한다.10 두 주석 모두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받았다는 관계를 유지하며, 강조하는 범위가 다르다.
예수는 먼저 아버지만 아들이 누구인지 아신다고 말하고, 이어 아들만 아버지가 누구인지 안다고 말한다. 마셜은 두 진술을 아버지와 아들의 상호적인 앎으로 읽는다. 한쪽의 앎을 선택으로 바꾸면, 아들이 아버지를 선택한다는 대응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11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를 아는 관계에서 각각 주어와 목적어가 된다.
보봉은 누가의 ‘누구인지’라는 표현이 두 분의 정체를 강조한다고 설명한다.2 한쪽을 아는 지식을 다른 쪽과 무관하게 소유하는 사람은 이 문장에서 배제된다. 아버지를 아는 아들의 앎이 계시를 가능하게 하는 근거다.
마지막 구는 그 앎을 받는 사람을 더한다. 아들은 자신이 뜻하는 사람에게 아버지를 드러낸다. 마셜은 아버지가 기뻐하신 뜻을 가리키는 21절의 εὐδοκία와 아들이 뜻한다는 22절의 βούληται를 대응시킨다.12 아버지는 어린아이들에게 드러내시고, 아들은 그가 뜻하는 사람에게 아버지를 드러낸다. 계시를 받는 사람은 아들과 아버지가 서로를 아는 관계에 의존한다.
키릴로스는 아들이 모든 것을 받았다는 말을 성육신의 낮아지심에 맞는 진술로 읽는다. 이어 아버지와 아들의 독특한 앎을 두 분의 신적 지위에 대한 논거로 사용한다. 그는 참 하나님에게 생명·빛·지혜가 온전히 속한다는 전제에서, 참 하나님인 아들이 아버지보다 본질상 낮다는 주장에 반대한다.13 그의 동일 본질 논증은 받는다는 동사를 지우지 않고, 그 말의 성육신 문맥과 상호적 앎을 연결한다.
계시의 주체와 아들의 관계
마셜은 21절과 22절의 사상이 통일되어 있다고 보고, 보봉은 별개의 전승들이 결합되었을 가능성을 더 크게 본다.14 현재의 누가복음에서는 성령으로 기뻐하며 아버지께 드리는 감사 뒤에, 아버지에게서 받은 아들이 그분을 드러내는 말이 이어진다. 두 절의 전승이 형성된 방식에 관한 차이는 이 최종 배열을 바꾸지 않는다.
21절은 성령·예수·아버지를 감사의 장면에서 구별한다. 22절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깊이 설명하며, 아들의 뜻에 따라 사람이 아버지를 알게 된다고 말한다. 키릴로스는 이 상호적 앎과 아들의 완전한 신적 속성을 동일 본질의 근거로 연결했다. 누가의 문장이 직접 이름 붙인 관계는 아버지의 맡기심, 아들의 앎과 계시, 성령으로 일어난 예수의 기쁨이다.
각주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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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ael W. Holmes 편, The Greek New Testament: SBL Edition (2010), 고정 Luke 전문, CC BY 4.0. 필자 번역, 주해 10:21-22와 필요한 앞 문맥 10:20. 21절은 ἐν 없이 τῷ πνεύματι τῷ ἁγίῳ를 적는 기준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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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çois Bovon, Luke 2: A Commentary on the Gospel of Luke 9:51-19:27, Donald S. Deer 번역, Helmut Koester 편, Hermeneia (Minneapolis: Fortress, 2013), 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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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oward Marshall, The Gospel of Luke: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IGTC (Carlisle: Paternoster; Grand Rapids: Eerdmans, 1978), 433쪽; François Bovon, Luke 2: A Commentary on the Gospel of Luke 9:51-19:27, Donald S. Deer 번역, Helmut Koester 편, Hermeneia (Minneapolis: Fortress, 2013), 39·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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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oward Marshall, The Gospel of Luke: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IGTC (Carlisle: Paternoster; Grand Rapids: Eerdmans, 1978), 433쪽, 21절 네 형태의 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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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oward Marshall, The Gospel of Luke: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IGTC (Carlisle: Paternoster; Grand Rapids: Eerdmans, 1978), 433-4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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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çois Bovon, Luke 2: A Commentary on the Gospel of Luke 9:51-19:27, Donald S. Deer 번역, Helmut Koester 편, Hermeneia (Minneapolis: Fortress, 2013), 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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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çois Bovon, Luke 2: A Commentary on the Gospel of Luke 9:51-19:27, Donald S. Deer 번역, Helmut Koester 편, Hermeneia (Minneapolis: Fortress, 2013), 42-43쪽; I. Howard Marshall, The Gospel of Luke: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IGTC (Carlisle: Paternoster; Grand Rapids: Eerdmans, 1978), 434-4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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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의 키릴로스, 『누가복음 주해』 설교 65, A Commentary upon the Gospel according to S. Luke, R. Payne Smith의 시리아어 전승 영어 번역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859), 296-301쪽, Roger Pearse 공개 전사, 296-2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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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oward Marshall, The Gospel of Luke: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IGTC (Carlisle: Paternoster; Grand Rapids: Eerdmans, 1978), 4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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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çois Bovon, Luke 2: A Commentary on the Gospel of Luke 9:51-19:27, Donald S. Deer 번역, Helmut Koester 편, Hermeneia (Minneapolis: Fortress, 2013), 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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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oward Marshall, The Gospel of Luke: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IGTC (Carlisle: Paternoster; Grand Rapids: Eerdmans, 1978), 436-4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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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oward Marshall, The Gospel of Luke: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IGTC (Carlisle: Paternoster; Grand Rapids: Eerdmans, 1978), 4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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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의 키릴로스, 『누가복음 주해』 설교 66, 같은 번역, 302-306쪽, 302-306쪽. 시리아어 전승에서 옮긴 영어를 읽었으며 그리스어·시리아어 비평판은 대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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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oward Marshall, The Gospel of Luke: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IGTC (Carlisle: Paternoster; Grand Rapids: Eerdmans, 1978), 431-432쪽; François Bovon, Luke 2: A Commentary on the Gospel of Luke 9:51-19:27, Donald S. Deer 번역, Helmut Koester 편, Hermeneia (Minneapolis: Fortress, 2013), 40쪽. 전승의 결합에 관한 두 주석가의 해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