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연구와 동일 본질 논증의 12개 핵심 명제

## 명제별 연결

| 명제 | 기존 핵심 판단 | 관련 본문 | 2차 종합에서의 역할 |
|---|---|---|---|
| C01 | 요 1:3을 생겨난 세계 전체에 관한 진술로 읽으면 말씀 자신을 그 세계의 한 피조물로 넣기 어렵다. | 48·51·56 | 요 1의 보편적 창조는 계속 중심 근거다. 요 8·12와 요일 5의 교부 연결이 선재·호칭을 보강한다. |
| C02 | 고전 8:6과 골 1:16-17의 보편적인 만물 관계와 그리스도의 개인적 선재를 구별하여 평가한다. | 47·48·56·57 | 유 5는 개인적 선재를 보강한다. 막 2의 위임 권한은 창조 매개의 대안과 별개의 논증이다. |
| C03 | 히 1:10-12가 아들을 계속 부르는 읽기는 유력하며, 그 지위와 세계의 변화 방식은 별도 쟁점이다. | 40·62 | 히 2·3의 고난·세우심·집 비유를 히 1의 아들 호명과 연결한다. 3:3의 비유만으로 창조주 지시를 확정하지 않는다. |
| C04 | 고전 2:10-12의 중심은 하나님이 자기 영을 통하여 감추어진 구원을 알리시는 관계다. | 46 | 롬 8의 중보·하나님 뜻과 연결한다. 기도 은사라는 교부 대안은 성령 주체에 관한 자료다. |
| C05 | 성령의 앎과 활동에서 아버지와 구별되는 위격까지는 추가적인 관계 근거가 필요하다. | 35·36·42·43·44·46·49·50·52·53·54·55·59·60 | 행 13·16의 명령·파송·금지와 삼자 구원 관계가 주체 구별을 보강한다. 영이라는 어휘의 각 지시는 따로 설명한다. |
| C06 | 성령의 자기 계시에서 동일 본질로 이어질 때에는 그 앎이 본성에 속한다는 판단이 더해진다. | 49·53·54·61 | 앎·무한한 활동·예배 대상에서 본성으로 이어지는 교부의 전제가 더 드러난다. |
| C07 | 계 5:13은 하나님과 어린양을 공동 송영의 대상으로 명시한다. | 요한계시록 4:1-5:14 | 공동 송영의 본문은 계 5:13이다. |
| C08 | 공동 예배의 신적 지위는 경배 동사 하나보다 전체 예배 구도에서 판단한다. | 45·61 | 살전 3의 공동 청원과 빌 3의 성령 예배 읽기를 비교한다. 계 5의 보편적 송영을 그대로 대체하지 않는다. |
| C09 | 같은 신적 지위에서 동일 본질로 이어지는 결론은 불가분한 신성의 전제를 포함한다. | 35·36·37·39·42·43·44·45·49·50·52·57·58·60·61 | 삼자 구원·현존과 같은 권한을 보강하고, 활동의 위임·단수 동사·예배 구문이 주는 제약을 명시한다. |
| C10 | 고전 15:28은 아들 자신이 복종한다고 말하며, 인성에 따른 해석은 가까운 문맥과 서신의 다른 진술을 함께 쓴다. | 40·41·62 | 히 2의 실제 고난과 막 13의 무지가 인성 설명의 내용을 보탠다. 미래 복종 자체의 중심 자료는 고전 15:28이다. |
| C11 | 요 17의 하나 됨과 영광 공유는 신자들에게도 실제로 귀속되어, 그 말만으로 같은 본질을 추론하는 논증을 제한한다. | 36·38·46·51 | 충만·형상·신적 본성·생명에 참여하는 신자의 지위를 요 17과 비교한다. |
| C12 | 아버지와 말씀의 본래 관계, 신자가 받아 참여한 관계의 차이는 창조와 성육신 판단을 함께 사용할 때 설명된다. | 35·36·38·39·40·44·46·48·51·53·55·59·60·62 | 성령·생명·충만을 받는 사람과 그 선물을 주는 신적 주체의 관계를 보강한다. 아들의 인간 연대도 유지한다. |

## 본문별 근거와 해석

| 원고와 주장 위치 | 연결 명제 | 기여 | 대안과 제약 |
|---|---|---|---|
| [35번 디도서 3장 4 7절](/readings/35/)<br>[T03-T06 대조표](/documents/b21f5d78aea8/) | C05·C09·C12<br>삼자 구원 관계·참여 보강 |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 성령을 주시고, 신자들이 새롭게 되어 상속자가 된다. | 같은 구원자 호칭과 수여의 방향은 관계 근거다. 이 단락에는 만물 창조나 성령의 자기 앎 진술이 없다. |
| [36번 에베소서 3장 14 21절](/readings/36/)<br>[E02·E05-E06 대조표](/documents/bb5c862d306c/) | C05·C09·C11·C12<br>공동 현존·참여 보강 | 아버지가 성령으로 독자를 강하게 하시고 그리스도가 내주하며, 독자가 하나님의 충만에 이른다. | 교회와 그리스도 안에라는 병렬은 두 대상의 동일 본성을 뜻하지 않는다. 충만은 받은 선물의 목표다. |
| [37번 에베소서 4장 4 6절](/readings/37/)<br>[U02-U06 대조표](/documents/61732eca260b/) | C09<br>삼자 고백의 연결 | 한 성령·한 주·한 하나님과 아버지가 공동체의 소망·믿음·세례·일치를 규정한다. | 일곱 번의 하나는 공통 근거를 나열한다. 같은 활동이 불가분하다는 C09의 존재론적 논증까지 직접 적지 않는다. |
| [38번 베드로후서 1장 1 4절](/readings/38/)<br>[38-02·38-04·38-06 대조표](/documents/cd86b809e47d/) | C11·C12<br>신적 호칭·참여 보강 | 예수를 하나님과 구원자로 읽는 구문과 신자가 신적 본성에 참여한다는 선물 관계를 비교한다. | Neyrey는 두 호칭의 대상을 나누고 Reese는 한 대상으로 읽는다. 신자의 참여는 받은 약속·생명이며 아들의 기원 설명과 다르다. |
| [39번 에베소서 4장 7 16절](/readings/39/)<br>[39-02-39-06 대조표](/documents/9c93aec039d4/) | C09·C12<br>활동 귀속·공급 보강 | 승천한 그리스도가 선물과 사람들을 주시며 몸의 성장과 결합을 공급한다. | Fowl의 내려감은 성령 강림, 우선 읽기는 성육신·죽음이다. 그리스도의 줌만으로 삼자 불가분 활동을 확정할 수 없다. |
| [40번 히브리서 2장 5 18절](/readings/40/)<br>[40-02·40-04-40-06 대조표](/documents/6606cc40a1d7/) | C03·C10·C12<br>인성·고난·연대 보강 | 1장의 아들이 2장에서 피와 살에 참여하고 죽음·시험을 겪으며 대제사장으로 돕는다. | χωρὶς와 χάριτι 이문은 죽음의 설명을 바꾼다. 같은 근원의 이름은 생략되었고 15:28의 미래 복종을 직접 주해하는 본문은 아니다. |
| [41번 마가복음 13장 32절](/readings/41/)<br>[41-02·41-05-41-06 대조표](/documents/ec7b68242060/) | C10<br>의존 해석의 제약 | 아들도 그날·그때를 모른다는 직접 진술과 교부의 신성·인성 및 기원 관계 설명을 대조한다. | 문장에는 인성에 따라서나 말하지 않음이라는 한정이 없다. 두 본성 설명은 다른 성경의 창조·성육신 판단을 사용한다. |
| [42번 사도행전 13장 1 4절](/readings/42/)<br>[42-03·42-05-42-06 대조표](/documents/e3d724f56ecd/) | C05·C09<br>성령의 주체 구별 보강 | 성령이 나를 위하여라고 명령하고 부르며 파송한다. 공동체의 안수·떠나보냄과 연결된다. | 예언자를 통한 전달은 가능한 경로다. 사람과 성령의 같은 사건 참여를 모두 같은 본성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 |
| [43번 베드로전서 1장 1 2절](/readings/43/)<br>[43-02-43-06 대조표](/documents/5416598bff1e/) | C05·C09<br>삼자 구원 관계 보강 | 아버지의 미리 아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 순종·예수의 피가 같은 수신자를 규정한다. | Elliott는 예수의 순종, Achtemeier는 독자의 순종을 읽는다. 확보한 클레멘스 단편은 1:3부터이며 1:2 직접 수용을 제공하지 않는다. |
| [44번 에베소서 2장 18 22절](/readings/44/)<br>[44-01·44-05-44-06 대조표](/documents/eb22e224249f/) | C05·C09·C12<br>공동 접근·성전 보강 | 유대인·이방인이 그리스도를 통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 하나님의 거처로 자란다. | Barth는 성령과 일치의 정신을 연결한다. 성전인 공동체와 그 거처를 이루는 신적 주체는 같은 지위가 아니다. |
| [45번 데살로니가전서 3장 11 13절](/readings/45/)<br>[45-01-45-02·45-06 대조표](/documents/37e9ba440e3d/) | C08·C09<br>공동 청원 보강 |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가 같은 기도의 청원을 받으며 길과 사랑을 이루실 분으로 서술된다. | 단수 동사는 문법상 복합 주어에도 가능하다. 계 5의 모든 피조물 공동 송영과 이 공동 청원은 범위가 다르다. |
| [46번 로마서 8장 18 30절](/readings/46/)<br>[46-03-46-06 대조표](/documents/1fe6b81ce3c1/) | C04·C05·C11·C12<br>성령의 중보·참여 보강 | 성령이 신자를 위해 중보하고 하나님이 그 뜻을 아시며, 신자가 아들의 형상과 영광을 받는다. | 크리소스토무스는 기도 은사와 그 담당자를 읽는다. 28절의 모든 것·하나님·성령이라는 주어 선택은 이문과 구문이 각각 작용한다. |
| [47번 유다서 1장 4 5절](/readings/47/)<br>[47-02-47-06 대조표](/documents/47120903a0de/) | C02<br>개인적 선재의 새 근거 | 예수라는 5절 읽기는 출애굽의 구원과 불신의 심판을 성육신 이전 예수에게 귀속한다. | NA28 대조를 보고한 SBL 장치도 예수를 적는다. 주님 읽기에서는 예수 지시가 문맥 판단이고 클레멘스 라틴어는 주 하나님이다. |
| [48번 요한복음 8장 48 59절](/readings/48/)<br>[48-03-48-05 대조표](/documents/aff8b1fd0807/) | C01·C02·C12<br>선재·영광 관계 보강 | 예수는 아브라함 이전에 있으며, 아버지를 높이고 아버지에게서 영광을 받는다. | 아브라함보다 앞섬 자체가 모든 창조 이전의 비피조성을 명시하지는 않는다. C01과 연결할 때 요 1의 창조 진술이 더해진다. |
| [49번 누가복음 10장 21 22절](/readings/49/)<br>[49-01·49-03-49-06 대조표](/documents/1b0b3fdbd4f3/) | C05·C06·C09<br>계시 주체·앎 논증 보강 | 성령으로 기뻐하는 예수가 아버지께 감사하며 부자 상호적 앎과 아들의 계시를 말한다. | 상호적 앎에서 동일 본질로 이어지는 키릴로스의 논증은 완전한 신적 속성과 성육신의 전제를 사용한다. C06과 논증 구조를 비교한다. |
| [50번 고린도전서 3장 16 17절](/readings/50/)<br>[50-01-50-06 대조표](/documents/de4ef260f02e/) | C05·C09<br>성령의 현존 보강 | 성령이 거하시는 공동체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이 그 성전을 해치는 행위를 심판한다. | 크리소스토무스의 개인 윤리 적용과 현대 주석의 공동체 지시는 다르다. 성령의 내주만으로 위격 정의와 불가분 활동 전체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
| [51번 요한일서 5장 18 20절](/readings/51/)<br>[51-02·51-04-51-06 대조표](/documents/e2cdf3d81489/) | C01·C11·C12<br>신적 호칭·생명 참여 보강 | 아들이 깨달음을 주고 아버지·아들 안의 관계를 이룬다. οὗτος를 예수로 읽으면 참 하나님과 영생 호칭이 아들에게 붙는다. | 18절 αὐτόν과 ἑαυτόν 이문, 20절 οὗτος의 두 지시를 별도로 평가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요 1 창조 논증과 생명 참여를 더 사용한다. |
| [52번 사도행전 16장 6 10절](/readings/52/)<br>[52-01-52-02·52-05-52-06 대조표](/documents/3ffa4e205c04/) | C05·C09<br>성령·예수의 영 관계 보강 | 성령·예수의 영이 계획을 막고 일행은 그 이동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이해한다. | 예수의 영이라는 관계와 하나님의 부르심을 함께 읽는 주해다. NPNF의 영·주님 형태는 기준의 예수의 영·하나님과 다르다. |
| [53번 요한복음 3장 31 36절](/readings/53/)<br>[53-03-53-06 대조표](/documents/3f81b595ed5f/) | C05·C06·C12<br>수여 주체·본성 추론 제약 | 보내심받은 아들의 증언과 제한 없는 성령 수여가 아버지의 사랑·모든 것의 수여에 연결된다. | δίδωσιν의 주어가 생략되어 아버지의 아들 수여와 아들의 성령 수여가 갈린다. 활동의 무한성에서 본질의 무한성은 교부의 전제다. |
| [54번 요한복음 4장 21 26절](/readings/54/)<br>[54-03-54-04·54-06 대조표](/documents/d7d32c9d19e5/) | C05·C06<br>영 지시의 제약 | 아버지께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한다는 말과 영이신 하나님이라는 술어를 분석한다. | πνεῦμα ὁ θεός는 하나님에 대한 술어다. 성령을 아버지와 같은 인물로 지시하는 문장이 아니며, 교부는 영적 예배를 마음의 순결로 읽는다. |
| [55번 요한복음 7장 37 39절](/readings/55/)<br>[55-02-55-03·55-05-55-06 대조표](/documents/cfb877b649e0/) | C05·C12<br>성령 수여·신자 참여 보강 | 예수께 와서 마심과 신자가 받을 성령이 예수의 영광에 연결된다. | 강의 출처는 구두점과 지시에 따라 신자·그리스도로 갈린다. 아직 성령이 없었다는 말은 복음서의 앞선 성령 활동을 고려해 수여의 때로 읽는다. |
| [56번 요한복음 12장 37 41절](/readings/56/)<br>[56-04-56-06 대조표](/documents/dc97e45c33b1/) | C01·C02<br>구약 영광의 예수 귀속 | 이사야가 본 영광과 말한 대상이 예수에게 연결된다. | 그 영광을 선재의 계시로 읽는 근거를 보탠다. 창조주 지위는 요 1과 연결되며 환상의 가시적 형상이 아들의 피조성을 직접 말하지 않는다. |
| [57번 마가복음 2장 1 12절](/readings/57/)<br>[57-02-57-06 대조표](/documents/239803505284/) | C02·C09<br>위임 권한 대안의 확대 | 인자가 땅에서 죄를 용서할 권한을 가지고 치유로 그 권한을 드러낸다. | Marcus는 위임된 인자 권한을 강조하고 교부는 하나님 고유 활동에서 동등성을 추론한다. 창조 매개의 대안과 용서 권한의 대안을 따로 평가한다. |
| [58번 마가복음 10장 17 18절](/readings/58/)<br>[58-03-58-06 대조표](/documents/1dbded7ae0eb/) | C09<br>본래 선함 논증의 제약 | 예수는 선한 호칭의 이유를 묻고 한 하나님의 선함을 말한다. Hilary는 예수의 선한 활동을 본성에 연결한다. | France는 숨은 신성 고백 요청을 택하지 않는다. 교부 인용의 젊은 사람·선한 일은 마태 전승도 반영한다. |
| [59번 누가복음 11장 9 13절](/readings/59/)<br>[59-03-59-06 대조표](/documents/5ee237d064f7/) | C05·C12<br>성령 수여 관계 보강 | 아버지는 구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주시고 예수는 그 약속을 가르친다. | 두 쌍·세 쌍의 비교와 성령·선한 영 호칭이 다르다. 주어지는 분이라는 비유만으로 성령의 인격·본성을 결정할 수 없다. |
| [60번 고린도후서 1장 18 22절](/readings/60/)<br>[60-02-60-06 대조표](/documents/0ecc033f4506/) | C05·C09·C12<br>삼자 구원·보증 보강 | 하나님의 약속이 아들 안에서 이루어지고 그리스도를 통해 아멘으로 응답하며 성령이 보증으로 주어진다. | 20절은 그리스도를 통해라는 기준과 그 안에서라는 교부 영어가 다르다. 보증은 성령을 작은 부분으로 잘라 주는 진술이 아니다. |
| [61번 빌립보서 3장 1 3절](/readings/61/)<br>[61-04·61-06 대조표](/documents/0c256b101955/) | C06·C08·C09<br>성령 예배 논증의 제약 | 하나님의 영으로 섬긴다는 수단 읽기와 하나님의 영을 섬긴다는 대상 읽기를 비교한다. | 아우구스티누스 라틴어도 두 형태를 직접 보고한다. 대상 읽기와 창조주에게만 λατρεία를 드린다는 전제가 신성 결론을 이끈다. |
| [62번 히브리서 3장 1 6절](/readings/62/)<br>[62-02-62-06 대조표](/documents/8669cde7681d/) | C03·C10·C12<br>창조·세우심·집 관계 제약 | 예수를 세우신 하나님, 모세의 집 안 직무와 아들의 집을 맡은 지위, 신자의 신실함을 비교한다. | ποιήσαντι는 직무의 세우심으로 읽는다. Ellingworth와 Attridge는 집을 지은 분을 예수에 대응시키는 방식에서 갈린다. |

## 그 밖의 쟁점

35·36·37·43·44·60번은 삼자 관계를 교회의 구원·소속·기도·성전 문맥에서 더 구체화한다. 이 기여는 창조, 공동 예배, 자기 앎을 중심으로 한 C01-C12의 직접 증거에 모두 들어맞지 않는다. 2차 종합에서는 삼자 구원 관계를 별도의 논증 단락으로 다룬다.

38·51번은 예수에게 붙는 하나님 호칭을 보탠다. 호칭의 지시를 정하는 문법과 비피조성·동일 본질을 논하는 존재론은 각각 근거가 필요하다. 47번의 출애굽 주어와 56번의 이사야 영광은 구약 활동·영광의 예수 귀속을 더 분석할 자료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빌 3:3 읽기와 클레멘스 귀속 유 5 인용은 원어 자료에 연결된다. 다른 교부 주해 가운데 일부 대목은 영어 번역(시리아어 전승 포함)에 근거한다.

기계 판독용 연결 · [기존 12명제와 실제 자료](/documents/eaff54680ac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