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레고리오스의 신적 활동: 불가분성과 동일 본질의 전제

닛사의 그레고리오스는 아버지, 아들, 성령의 일을 서로 따로 이루어지는 세 활동으로 세지 않는다. 피조물을 향한 하나하나의 활동은 아버지에게서 시작하여 아들을 통하고 성령 안에서 완성된다고 설명한다.[^1] 뒤의 논증에서는 그 뜻의 움직임에 실제로도 생각 속에서도 시간 간격이 없다고 명시한다.[^2]

앞서 제기된 반론은 신성이라는 명칭을 활동에서 설명해도 여전히 세 신을 말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여러 철학자나 웅변가가 같은 일을 한다고 해서 한 사람으로 불리지는 않기 때문이다.[^3] 그레고리오스는 이 반론을 되짚은 뒤 인간의 같은 직업과 신적 활동을 비교한다. 웅변가들의 직업은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지만 각자는 따로 자기 말을 하고, 다른 사람의 활동과 구별된다.[^4]

신적 본성을 설명하는 문단은 아버지가 아들의 참여 없이 혼자 하시는 일과 아들이 성령과 따로 하시는 고유한 활동을 배제한다.[^5] 같은 목표를 가진다는 말보다 강한 관계다. 각자의 독자적 활동을 먼저 인정한 뒤 결과를 합치는 방식이 이 문장에 들어 있지 않다.

출발·경유·완성의 세 동사는 각각 아버지, 아들, 성령을 주어로 삼지 않는다. 모두 단수인 πᾶσα ἐνέργεια, 곧 피조물에 이르는 하나하나의 활동을 주어로 삼으며 아버지, 아들, 성령은 전치사가 나타내는 관계항들이다. ἐκ Πατρός는 아버지에게서, διὰ τοῦ Υἱοῦ는 아들을 통하여, ἐν τῷ Πνεύματι는 성령 안에서라는 뜻이다.[^6] 세 분의 활동 관계를 구별하면서 한 활동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문장이다.

그레고리오스는 이를 행위자가 여럿이라는 사실과 구별한다. 그 활동은 세 분을 통하여 이루어지지만 이루어지는 것이 셋은 아니며, 활동에서 생기는 명칭도 행위자의 수에 따라 나뉘지 않는다고 쓴다.[^7] 생명 수여가 그 사례다. 세 인격과 이름을 말해도 각자 한 생명씩 따로 주어 세 생명이 된다고 설명하지 않는다. 같은 생명이 우리 안에서 아버지에 의해 이루어지고 아들에 의해 마련되며 성령의 뜻에 달려 있다고 설명한다.[^8]

이어지는 문장은 선한 뜻의 움직임과 질서가 하나로 이루어져 아버지에게서 아들을 통하여 성령에게 이른다고 말한다. PG판의 단어는 διακόσμησις, 곧 질서를 갖추는 배열이며, 그 움직임에 시간 간격을 두지 않는다는 설명이 뒤따른다.[^9] 따라서 이 동사들의 배열은 셋으로 나뉜 시간표를 제시하지 않는다. 피조물에 이르는 일의 출발과 매개 및 완성을 구별하면서 그 활동을 분리하지 않는 설명이다.

이 논증에서 그레고리오스가 세려는 것은 인격의 수와 별개로, 신성이라는 명칭을 낳는 활동이다. 앞 문맥은 θεότης라는 명칭이 본성을 직접 표현하는 이름보다 활동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전제를 두고 있으며, 그 활동이 셋으로 나뉘지 않으므로 세 신이라는 이름도 붙일 수 없다고 논한다.[^10] 여기의 본성은 φύσις, 위격은 ὑπόστασις로 표현된다. αἰτία는 이 문맥에서 인간의 직업명을 복수로 세고 신적 이름을 단수로 부르는 논증의 이유를 가리킨다.

공동 결과만으로 이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여러 사람이 한 책을 써도 각자의 뜻과 활동은 구별될 수 있다. 이 반론에 대한 문단의 답변은 각자의 독자적 활동을 배제하고 신적 뜻의 움직임과 질서를 하나로 서술한다는 데 있다. 같은 본질로 이어지는 판단은 이 불가분한 능력과 뜻이 같은 신적 본성에 근거한다는 전제를 포함한다. 본문은 처음부터 신적 본성을 단수로 다루고 세 위격이 신성이라는 명칭에서 제외되지 않는다고 전제한다. 활동의 관계만을 관찰하여 그들이 같은 본성을 가진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입증하는 논증과는 출발점이 다르다.

그레고리오스의 이 논증은 세 분의 신적 지위와 불가분한 활동을 전제한다.[^11] 그는 활동을 단수로, 행위자를 복수로 서술하고 활동의 시간 간격을 부정한다. 신성이라는 명칭도 나뉘지 않는 신적 활동과 연결해 설명한다.

[6개 주장 대조표와 전제·반론](/documents/888f35af40ec/) · [판본과 원문](/documents/8696eeb3902b/)

[^1]: 닛사의 그레고리오스, 『세 하나님이 아님에 관하여』, 아블라비우스에게, *Patrologiae cursus completus, Series Graeca*, 45, J.-P. Migne 편, *S. P. N. Gregorii episcopi Nysseni opera*, II (Paris: J.-P. Migne, 1863), 그리스어 125C-D. 연도는 표제의 1863년을 따른다.
[^2]: 같은 글, 그리스어 129B, εἰ δὴ πᾶν ἀγαθὸν πρᾶγμα로 시작하는 문단. ἀχρόνως καὶ ἀδιαστάτως 및 οὐδεμιᾶς παρατάσεως … γινομένης ἢ νοουμένης.
[^3]: 같은 글, 그리스어 124C-D에서 125A로 이어지는 반론. 이는 저자가 세 신을 주장하는 채택 문장이 아니라 논박을 위해 제시한 반론이다.
[^4]: 같은 글, 그리스어 125A-C의 인간 활동·웅변가 사례.
[^5]: 같은 글, 그리스어 125C, ἐπὶ δὲ τῆς θείας φύσεως부터. οὐχ οὕτως ἐμάθομεν이 단독 활동을 인정하는 문장을 부정한다.
[^6]: 같은 문단, 그리스어 125C. πᾶσα ἐνέργεια ἡ θεόθεν ἐπὶ τὴν κτίσιν διήκουσα를 주어로 하는 ἀφορμᾶται, πρόεισι, τελειοῦται.
[^7]: 같은 문단, 그리스어 125C-D, διὰ τοῦτο 이후. τῶν ἐνεργούντων은 복수이며 διὰ τῶν τριῶν μὲν γίνεται, οὐ μὴν τρία ἐστὶ τὰ γινόμενα가 행위자와 결과의 수를 구별한다.
[^8]: 같은 글, 그리스어 125D의 한 생명 사례. τρία πρόσωπα, τρεῖς ζωὰς, ἡ αὐτὴ ζωή가 대비된다. 선한 뜻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다음 문장은 125D에서 128A로 이어진다.
[^9]: 같은 글, 그리스어 125D-128A와 129B. PG 1863년 인쇄문은 κίνησίς τε καὶ διακόσμησις다. 그리스어는 127열이 아니라 128열 오른쪽에 있다.
[^10]: 같은 글, 그리스어 125A-B의 οὐ φύσεως, ἀλλ’ ἐνεργείας와 128A의 신적 이름 논증. αἰτίαν은 125A의 논증 이유이며 저술 끝의 원인·원인에서 생긴 존재에 관한 문단은 [그레고리오스: 원인과 존재방식](/documents/32764eee4944/)에서 다룬다.
[^11]: [핵심 주장 대조표 C09](/documents/eaff54680acc/) 및 [동일 본질 논증의 공동 예배 단락과 주21](/documents/5a8cbf9f876e/). 영어는 H. A. Wilson 번역, NPNF Second Series 5 (1893), [New Advent 제공 본문](https://www.newadvent.org/fathers/2905.ht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