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가복음 2:1-12: 죄를 용서하는 인자의 권한

예수가 가버나움의 집에 계시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모인다. 그들은 문 앞에도 자리가 없을 만큼 모였고, 예수는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신다. 네 사람이 한 중풍병자를 데리고 그 자리로 온다.

## 막 2:1-4

> 며칠 뒤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셨고 집에 계신다는 소문이 들렸다. 많은 사람이 모여 문 앞에도 더는 자리가 없었다. 그분은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셨다. 사람들이 네 사람에게 들려 오는 중풍병자를 그분께 데려왔다. 무리 때문에 그분께 데려갈 수 없자 그분이 계신 곳의 지붕을 벗기고 뚫어 중풍병자가 누운 자리를 내려놓았다.[^1]

프랑스는 지붕을 벗기고 뚫는 두 동사가 병자를 예수께 데려가려는 사람들의 행동을 생생하게 적는다고 설명한다.[^2] 네 사람이 병자를 들고, 막힌 길 대신 지붕을 통해 누운 자리를 내린다. 예수의 말씀이 전해지는 자리에 그들이 그 사람을 데려간 것이다.

## 막 2:5-7

>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네 죄가 용서된다.” 몇몇 율법학자들이 그곳에 앉아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이 왜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모독을 하는구나. 하나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는가?”

ἰδὼν τὴν πίστιν αὐτῶν은 예수가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는 말이다. 프랑스는 그 믿음을 드러내는 것으로 친구들의 행동을 강조하며, 병자의 믿음까지 그들에 포함될 가능성도 검토한다.[^3] 병자의 말은 아직 적히지 않는다. 본문에서 보이는 믿음의 행동은 그를 예수께 데려오는 행동이다.

예수는 몸을 일으키라는 말보다 죄가 용서된다는 말을 먼저 하신다. ἀφίενται는 수동형이고 용서하는 주어의 이름은 5절에 따로 적히지 않는다. 프랑스는 이 형태 자체가 하나님의 용서를 알리는 말로 사용될 수 있지만, 뒤의 대화에서 예수의 용서 권한이 명시된다고 설명한다.[^4] 5절의 수동형과 10절의 직접적인 권한 진술이 순서대로 이어진다.

율법학자들은 죄 용서를 하나님 한 분의 권한으로 말한다. 프랑스는 εἷς ὁ θεός라는 표현을 하나님의 유일성에 대한 고백과 연결한다.[^5] 마커스도 같은 연결을 읽지만, 고대 유대 자료에서 하나님의 권한을 대리하여 용서를 전하는 사례들이 있다는 점을 함께 검토한다.[^6] 그들의 반응은 예수의 말을 예언자의 일반적인 용서 선포보다 큰 주장으로 들었음을 드러낸다.

## 막 2:8-10

> 예수께서는 그들이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곧 자신의 영으로 알아차리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왜 그런 생각을 마음에 품느냐? 중풍병자에게 ‘네 죄가 용서된다’라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라’라고 말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쉬우냐? 인자가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진 줄 너희가 알도록 하겠다.” 그분이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아직 말로 드러나지 않은 그들의 생각을 예수가 알아차리신다. 마커스는 τῷ πνεύματι αὐτοῦ를 예수 자신의 지각과 의지가 작용하는 표현으로 읽는다.[^7] 이 절의 자신의 영은 말하는 예수의 내적 앎에 붙는 수식이다. 프랑스는 그 알아차림이 이 장면의 특별한 권한을 강화한다고 설명한다.[^5]

더 쉽다는 비교의 대상은 두 일을 행하는 능력만이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행위다. 프랑스는 죄가 용서되었다는 말보다 일어나 걸으라는 말이 눈앞에서 검증될 수 있다는 논리로 읽는다.[^8] 마커스도 관찰자가 즉시 확인할 수 있는 치유가 용서 권한의 증거가 되는 구조라고 설명한다.[^7] 예수는 그 비교를 병자에게 내릴 명령의 근거로 사용한다.

10절은 인자가 땅에서 죄를 용서할 권한을 가진다고 직접 밝힌다. 프랑스는 인자를 예수의 독특한 자기 지시로 읽으며 다니엘 7장의 주어진 권한에 연결한다.[^9] 마커스는 궁극적으로 용서하시는 하늘의 하나님이 그 권한을 인자에게 맡겨 땅에서 시행하게 하셨다는 설명을 강조한다.[^10] 두 주석은 이 지시를 일반적인 모든 사람의 권한보다 예수의 권한에 연결한다.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셨다는 말이 예수의 발화 사이에 들어온다. 마커스는 이를 용서 논쟁을 기존 치유 이야기에 넣은 편집 흔적으로 읽는다.[^11] 프랑스는 청중에서 병자로 말의 대상이 바뀌는 서술 안내로 읽는다.[^12] 현재의 이야기에서 그 전환은 율법학자들에게 밝힌 권한을 병자에게 하는 말로 확인하도록 구성한다.

## 막 2:11-12

> “내가 네게 말한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집으로 가거라.” 그가 일어나 곧 자리를 들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갔다. 모두가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말했다. “우리는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명령과 응답이 대응한다. 예수는 일어나 들고 가라고 말했고, 그는 일어나 들고 나갔다. 프랑스는 모든 사람 앞에서라는 표현이 앞의 대화에 필요한 공개적 확인을 제공한다고 읽는다.[^13] 용서 권한을 말하던 예수의 발화는 사람들이 보는 행동으로 확인된다.

무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마커스는 예수가 행하고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 행하시는 두 관점을 그 반응에서 연결한다.[^14] 예수의 권한을 경험한 무리가 찬양하는 대상은 하나님이다. 율법학자들이 하나님 한 분의 권한이라고 제시했던 용서가, 예수의 말과 행동에서 행사된 것으로 서술된다.

## 크리소스토무스의 동등 권한 논증

크리소스토무스의 특별 강론은 마가복음의 죄 용서 질문과 마태복음 평행 본문의 말을 연결한다. 그는 죄 용서와 마음의 은밀한 생각을 아는 것이 하나님에게 고유한 활동이라고 전제하고, 예수가 두 활동을 하신 사실에서 아버지와의 동등한 지위를 논한다.[^15] 같은 강론은 몸의 치유가 더 잘 보이므로, 보이지 않는 용서의 큰 권한을 입증하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16]

그 교부 논증은 이런 활동을 피조물과 공유하지 않는 하나님의 고유한 권한으로 전제한다. 마커스는 하나님이 인자에게 권한을 맡기시는 관계를, 프랑스는 예수의 독특한 신적 권한 행사를 강조한다. 세 해석은 예수의 용서와 치유를 연결하며, 그 권한이 신적 지위를 설명하는 방식에서 서로 다른 전제를 사용한다. 본문의 직접적인 진술은 인자가 땅에서 죄를 용서할 권한을 가진다는 것이다.

[해석 대조표](/documents/239803505284/) · [문헌과 판본](/documents/1acf17ce3e69/)

[^1]: Michael W. Holmes 편, *The Greek New Testament: SBL Edition* (2010), [고정 Mark 전문](https://raw.githubusercontent.com/Faithlife/SBLGNT/c4d241a9c1c479a55b989ba35a4976c1d0b8052c/data/sblgnt/text/Mark.txt), CC BY 4.0. 필자 번역, 주해 2:1-12, 앞 문맥 1:45.
[^2]: R. T. France, *The Gospel of Mark: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IGTC (Grand Rapids and Cambridge: Eerdmans; Carlisle: Paternoster, 2002), 123쪽.
[^3]: R. T. France, *The Gospel of Mark: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IGTC (Grand Rapids and Cambridge: Eerdmans; Carlisle: Paternoster, 2002), 123-124쪽.
[^4]: R. T. France, *The Gospel of Mark: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IGTC (Grand Rapids and Cambridge: Eerdmans; Carlisle: Paternoster, 2002), 125-126쪽.
[^5]: R. T. France, *The Gospel of Mark: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IGTC (Grand Rapids and Cambridge: Eerdmans; Carlisle: Paternoster, 2002), 126-127쪽.
[^6]: Joel Marcus, *Mark 1-8: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Anchor Yale Bible 27 (Doubleday 원판 2000, 첫 페이퍼백 2005), 217·222쪽. 고대 유대 자료는 이 주석의 인용을 따른다.
[^7]: Joel Marcus, *Mark 1-8: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Anchor Yale Bible 27 (Doubleday 원판 2000, 첫 페이퍼백 2005), 217-218쪽.
[^8]: R. T. France, *The Gospel of Mark: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IGTC (Grand Rapids and Cambridge: Eerdmans; Carlisle: Paternoster, 2002), 127쪽.
[^9]: R. T. France, *The Gospel of Mark: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IGTC (Grand Rapids and Cambridge: Eerdmans; Carlisle: Paternoster, 2002), 127-129쪽.
[^10]: Joel Marcus, *Mark 1-8: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Anchor Yale Bible 27 (Doubleday 원판 2000, 첫 페이퍼백 2005), 222-223쪽의 인자와 위임 설명.
[^11]: Joel Marcus, *Mark 1-8: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Anchor Yale Bible 27 (Doubleday 원판 2000, 첫 페이퍼백 2005), 219쪽.
[^12]: R. T. France, *The Gospel of Mark: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IGTC (Grand Rapids and Cambridge: Eerdmans; Carlisle: Paternoster, 2002), 129쪽.
[^13]: R. T. France, *The Gospel of Mark: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IGTC (Grand Rapids and Cambridge: Eerdmans; Carlisle: Paternoster, 2002), 129쪽.
[^14]: Joel Marcus, *Mark 1-8: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Anchor Yale Bible 27 (Doubleday 원판 2000, 첫 페이퍼백 2005), 224쪽.
[^15]: [크리소스토무스, 『지붕으로 내려온 중풍병자에 관한 강론』](https://www.newadvent.org/fathers/1911.htm), W. R. W. Stephens 번역, NPNF 1/9 (1889), Philip Schaff 편, New Advent 제공 영어, 6문단. 마가의 질문과 마태 평행 본문 및 요한복음의 활동을 연결한다.
[^16]: [크리소스토무스, 『지붕으로 내려온 중풍병자에 관한 강론』](https://www.newadvent.org/fathers/1911.htm), W. R. W. Stephens 번역, NPNF 1/9 (1889), Philip Schaff 편, New Advent 제공 영어, 7문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