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도행전 16:6-10: 예수의 영이 이끄는 길과 하나님의 부르심

사도행전 16:5는 교회들이 믿음 안에서 굳게 서고 날마다 수가 늘었다고 서술한다. 6절은 그 뒤 바울 일행이 이동하는 길과, 그들이 가려고 한 곳에서 말씀 전하는 일이 막힌 상황을 적는다. 독자는 금지의 이유를 먼저 알지 못한 채 그들의 이동을 따라간다.

## 행 16:6

> 그들은 프리기아와 갈라디아 지역을 지나갔다. 성령께서는 그들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다.[^1]

κωλυθέντες는 금지받거나 저지당했다는 분사이고, ὑπὸ τοῦ ἁγίου πνεύματος는 그 행위자를 성령으로 밝힌다. 막힌 일은 λαλῆσαι τὸν λόγον ἐν τῇ Ἀσίᾳ, 곧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는 일이다. 홀러데이는 여기의 아시아를 소아시아 서부의 로마 속주로 설명한다.[^2] 금지는 말씀 전파의 모든 활동에 대한 명령이 아니라, 이 여행에서 특정 지역에 말씀을 전하는 계획에 관계된다.

그 금지가 어떤 방식으로 전달되었는지는 적혀 있지 않다. 퍼보는 이 대목에서 계시의 수단이 설명되지 않고, 성령의 개입이 가려고 한 행동을 막는 방식으로 제시된다고 지적한다.[^3] 서술자는 성령을 일행의 행동을 제한하는 주체로 명시한다.

## 행 16:7

> 그들은 무시아 부근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려고 했다. 그러나 예수의 영께서 그들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ἐπείραζον은 시도하던 행위를 적고, οὐκ εἴασεν은 허락하지 않았다는 행위를 적는다. 이번 목적지는 비두니아다. 홀러데이는 비두니아를 흑해에 면한 지역으로 설명한다.[^2] 일행은 이동하며 또 하나의 계획을 시도하지만, 서술자가 밝힌 결과는 허락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행위자의 이름은 τὸ πνεῦμα Ἰησοῦ, 곧 예수의 영이다. 6절의 성령과 7절의 예수의 영이 인접한 구절에서 두 계획을 막는 역할을 한다. 퍼보는 두 표현이 병렬적으로 배치되어 같은 기능을 수행한다고 읽는다.[^3] 홀러데이도 두 표현을 선교의 이동을 이끄는 신적 활동으로 연결한다.[^4]

예수의 영이라는 소속 표현은 성령의 인도를 예수와 연결한다. 금지하거나 허락하지 않는 주체는 영으로 명시되어 있고, 영의 이름은 예수의 관계를 드러낸다. 일행의 이동에 작용하는 영을 예수에게 속한 영으로 부른다.

## 행 16:8

> 그들은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다.

앞의 두 시도 뒤에 실제로 도착한 곳은 드로아다. 홀러데이는 이 지명을 에게해 연안의 알렉산드리아 드로아로 설명한다.[^5] 이 절에는 드로아로 가라는 새 명령이나 그들이 그곳을 택한 이유가 따로 나오지 않는다. 지나고 내려갔다는 이동을 서술한다.

퍼보는 두 금지 뒤에 이 도착지가 제시되는 순서가 독자의 기대를 높인다고 읽는다.[^3] 아직 그 다음 목적지와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앞의 금지들이 어느 방향을 위한 것이었는지는 다음 장면에서 설명된다.

## 행 16:9

> 밤에 바울에게 환상이 나타났다. 마케도니아 사람 한 명이 서서 그에게 간청했다. “마케도니아로 건너와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환상을 받은 사람은 바울이고, 그 안에서 말하는 인물은 마케도니아 사람이다. 앞 절들에서 성령이 막으신 행위를 적던 서술은 이제 한 사람이 건너오라고 청하는 장면을 적는다. διαβὰς와 βοήθησον은 건너와서 도우라는 요청을 구성한다.

퍼보는 특정 지역의 인물이 지도자에게 나타나 다음 방향을 제시하는 고대의 여러 환상 서술과 이 장면을 비교한다. 그는 이 장면을 누가의 문학적 구성으로 판단한다.[^6] 홀러데이는 이 요청을 앞의 이동과 연결하여, 일행의 계획이 신적 인도 아래 새 방향을 얻는 이야기로 설명한다.[^4]

## 행 16:10

> 그가 그 환상을 본 뒤, 우리는 곧 마케도니아로 떠나려고 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셨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ἐζητήσαμεν과 ἡμᾶς는 우리라는 복수형으로 서술의 시점을 바꾼다. 앞에서는 그들이 이동했고 바울이 환상을 보았다. 여기서는 말하는 이가 일행의 행동과 판단을 우리라고 서술한다.

홀러데이는 이 일인칭 복수의 기원을 저자의 참여, 여행 자료의 사용, 문학적 효과 등 여러 가능성으로 소개한다. 퍼보는 독자들을 바울의 선교 이야기와 가까이 연결하는 서술 효과를 강조한다.[^7] 우리라는 대명사에 저자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다. 두 주석가가 검토한 가능성들은 같은 문법적 변화의 기원과 효과에 대해 서로 다른 설명을 제공한다.

συμβιβάζοντες는 여러 사실을 연결해 판단한다는 분사다. 그 판단의 내용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이고, 그 부르심의 목적은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홀러데이는 10절이 앞의 사건들을 하나님의 활동으로 되돌아 설명한다고 읽는다.[^4] 성령과 예수의 영이 막은 길, 바울이 본 요청은 이제 하나님의 부르심에 관한 판단으로 연결된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이해한 일행은 곧 마케도니아로 떠나려 했다.

## 크리소스토무스의 금지와 판단 해석

크리소스토무스는 성령이 왜 막았는지는 본문이 말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는 복음 전파를 멈추는 일에는 강한 신적 개입이, 전파하도록 움직이는 일에는 환상이 사용되었다고 풀이한다.[^8] 이어 10절의 판단을 바울이 환상을 본 사실, 앞의 성령의 금지, 그들이 있는 위치를 연결한 추론이라고 읽는다.[^9] 그의 설명은 일행의 판단을 새 환상 하나에만 연결하지 않고 앞의 이동까지 연결한다.

크리소스토무스 강해의 NPNF 영어 번역은 7절에 예수의 영 대신 영을, 10절에 하나님 대신 주님을 적는다.[^8][^9] 기준 본문은 두 곳에 각각 예수의 영과 하나님을 명시한다. 크리소스토무스는 그리스도께서 바울의 이동을 재촉하신다고 설명한다.[^8] 이 차이가 크리소스토무스가 읽은 그리스어 본문에서 온 것인지는 영어 번역만으로 알 수 없다.

## 성령의 인도와 하나님의 부르심

6-10절은 일행의 계획, 성령의 금지,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는 행동, 환상의 요청,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일행의 판단을 차례로 적었다. 성령과 예수의 영은 같은 인도 기능을 수행하는 인접 표현이며, 예수라는 이름이 그 영의 활동을 예수와 연결한다. 10절의 하나님은 그 선교를 부르신 주체다.

이 다섯 절에서 아버지라는 호칭과 동일 본질이라는 개념은 직접 나오지 않는다. 이 문맥에서 서술된 신적 관계는 성령의 인도가 예수에게 연결되고, 일행이 그 과정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마케도니아로 떠나려 하는 행동이 그 이해에 대한 응답이다.

[해석 대조표](/documents/3ffa4e205c04/) · [문헌과 판본](/documents/3dde49a4a262/)

[^1]: Michael W. Holmes 편, *The Greek New Testament: SBL Edition* (2010), [고정 Acts 전문](https://raw.githubusercontent.com/Faithlife/SBLGNT/c4d241a9c1c479a55b989ba35a4976c1d0b8052c/data/sblgnt/text/Acts.txt), CC BY 4.0. 필자 번역, 주해 16:6-10와 앞 문맥 16:5. 7절은 τὸ πνεῦμα Ἰησοῦ, 10절은 ὁ θεός를 적는다.
[^2]: Carl R. Holladay, *Acts: A Commentary*, New Testament Library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2016), 316-317쪽.
[^3]: Richard I. Pervo, *Acts: A Commentary*, Harold W. Attridge 편, Hermeneia (Minneapolis: Fortress, 2009), 390쪽.
[^4]: Carl R. Holladay, *Acts: A Commentary*, New Testament Library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2016), 317쪽.
[^5]: Carl R. Holladay, *Acts: A Commentary*, New Testament Library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2016), 316-317쪽, 드로아의 지명.
[^6]: Richard I. Pervo, *Acts: A Commentary*, Harold W. Attridge 편, Hermeneia (Minneapolis: Fortress, 2009), 391-392쪽. 수에토니우스 등의 사례는 이 주석의 인용을 따른다.
[^7]: Carl R. Holladay, *Acts: A Commentary*, New Testament Library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2016), 317-318쪽; Richard I. Pervo, *Acts: A Commentary*, Harold W. Attridge 편, Hermeneia (Minneapolis: Fortress, 2009), 392-396쪽.
[^8]: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34](https://www.newadvent.org/fathers/210134.htm), J. Walker·J. Sheppard·H. Browne 번역, George B. Stevens 개정, NPNF 1/11 (1889), Philip Schaff 편, New Advent 제공 영어, 16:6-10에 대한 첫 해설과 재해설. 인용은 7절에 영, 10절에 주님을 적는다.
[^9]: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34](https://www.newadvent.org/fathers/210134.htm), J. Walker·J. Sheppard·H. Browne 번역, George B. Stevens 개정, NPNF 1/11 (1889), Philip Schaff 편, New Advent 제공 영어, 재해설의 16:9-10, 판단의 세 근거.
